드라마 기획자 배종명씨
직업인에게 듣는 나의 전공
그룹에이트 배종명(31) 기획프로듀서는 요즘 드라마 <궁 2> 제작 준비로 밤샘이 잦다. 지난 1~3월에 방영된 드라마 <궁>의 후속작인 <궁 2>는, 전작과 마찬가지로 ‘사전 기획’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드라마다. 탄탄한 필력을 자랑하는 ‘작가’나 연출력 뛰어난 ‘감독’으로부터 한 편의 드라마가 시작되는 것이 보통이지만, <궁>은 경우가 좀 달랐다. 애초 인기 만화를 드라마로 만들자는 것은 그룹에이트 기획팀에서 나온 의견이었고, 어떤 콘셉트의 드라마를 만들 것인지, 이를 위해서는 어떤 작가와 감독, 배우들이 필요할지, 국내외 마케팅을 어떤 방식으로 진행할 것인지도 모두 기획 단계에서 결정됐다. <궁>은 드라마 제작 과정에서 ‘기획’이 별도 영역으로 전문성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면서, ‘드라마 기획자(기획 프로듀서)’라는 새로운 직업군의 탄생을 알린 드라마다.
“시청자들의 요구나 국내외 대중문화의 흐름을 살펴보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드라마를 떠올려야 해요. 활동 중인 작가나 감독들이 현재 구상 중인 작품이 무언지도 알고 있어야 하니까 인맥 관리도 꼼꼼히 해야 하고요. 이야기가 되겠다 싶으면 적극적으로 그분들을 접촉해서 본격적인 제작에 들어가야 하니까요.”
기획 단계를 넘어 일단 촬영이 시작되면, 기획자는 재빨리 ‘도우미’로 변신한다. 현장에 찾아가 감독, 배우, 스태프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촬영이 원활하게 진행되도록 돕고, 작가가 필요로 하는 자료를 구해다 주기도 한다. 방송이 끝나면 제작 전 과정을 총망라해 방대한 ‘보고서’를 만들고, 다음 작품 기획과 제작의 토대로 삼는다.
배 씨는 대학에서 영화학을 전공하고 드라마 작가로 촬동하다 지난해 그룹에이트에 입사하면서 기획 일에 뛰어들었다. 그가 이끄는 기획팀에는 산업디자인, 인류학 전공자들이 함께 일하고 있다. “전공은 중요하지 않아요. 특정한 이력을 필요로 하기 보다는 드라마를 무척 좋아해야 하고,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돕는 일에 자부심을 느껴야 하고, 관심사가 다양하고 적극적인 성품을 가진 사람에게 적합하지요.” 현재 국내에서 방송 콘텐츠를 제작하는 프로덕션들은 200여 곳에 이른다. 배 씨는 “기획 프로듀서를 별도로 두고 있는 회사가 아직 많지 않지만, 업계에서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어 그 수가 빠르게 늘어날 것으로 본다”며 “치열한 경쟁 속에서도 자신만의 ‘색깔’을 갖고 좋은 드라마를 만들겠다는 생각을 가진 후배들과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미경 기자 friend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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