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비꽃 귀걸이를 하고 있는 나무와 단
붉나무와 떠나는 생태기행
얘들아, 봄 단풍이란 말을 알고 있니? 이 나무 저 나무에서 연한 연두 빛 새순이 싱싱하게 올라오고, 개나리, 진달래, 벚꽃 따위 분홍, 노란, 하얀 꽃빛깔이 연두 빛과 어울려 정말 눈부시게 아름다운 그림 같은 봄 풍경을 펼쳐 보이지. 나뭇잎들이 모두 자라 숲을 온통 빼곡한 초록으로 채우기 전 잠깐 보이는 그 산 빛깔을 봄 단풍이라 부르지. 봄 단풍은 아주 잠깐이야. 어서 서둘러 봄 단풍도 구경할 겸 봄놀이 꽃놀이 봄 구경 가자꾸나.
집 앞 화단에 서양민들레와 종지나물(미국제비꽃) 꽃이 피었어. 민들레는 탐스런 노란 꽃이 꼭 꽃 한 송이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백 개도 넘는 작은 꽃들이 모여 꽃송이를 만든 거야. 조그만 꽃 한 개를 떼내 보았더니 한 개 한 개에 모두 하얀 솜털이 달려 있어. 무슨 맛일까? 너무 조그매서 갸우뚱 무슨 맛인지 잘 모르겠어. 종지나물은 제비꽃이라 꽃 뒤에 꿀주머니를 달고 있어. 꿀이 얼마나 들어 있을까? 야금야금 맛을 보았더니 약간 단 듯도 하네. 골목골목 피어 있는 목련은 꽃들이 지고 있어. 누렇게 꽃잎이 하나둘 떨어지는 하얀 목련에서 꽃잎을 떼내 맛을 보았더니, 설마 이런 맛일 줄이야. 맛이 아주 강해. 입 안에 치약처럼 화한 맛이 돌기도 하고 암튼 꼭 소나무 맛 같아. 숲으로 들어가는 길에는 배초향이 소복소복 올라왔어. 배초향 이파리는 향기가 독특해. 흔히 맡을 수 없는 낯선 냄새야. 맛은 달달하기도 하면서 약간 쌉쏘름해. 우리 외할머니는 배초향 이파리로 버물버물 밀가루 버무리를 해 주시기도 하지.
텃밭이 있는 숲 가장자리에는 보랏빛 제비꽃 천지야. 여기저기 돌담 틈에서 제비꽃들이 삐죽삐죽, 어디는 아예 제비꽃 밭이야. 제비꽃을 엇갈려 걸어 제비꽃 씨름도 한판, 형이 이기나 아우가 이기나? 예쁜 제비꽃을 골라 엇갈려 걸어 팔찌를 만들었어. 서로서로 팔찌를 차고는 제 손이 멋지다고 팔을 내밀어. 귀에다 걸어보니 아주 멋진 귀고리도 돼. 봄꽃놀이 하는 내내 나무는 제비꽃 귀고리를 귀에 걸고 노닐었지.
산 아래 진달래꽃은 대부분 졌는데 산 속으로 들어가니 아직 진달래꽃이 많이 남아 있어. 하지만 산 속 진달래꽃도 이제 막 지려 하고, 진달래 바로 옆에서 철쭉이 기다리기라도 한 듯 잎과 더불어 볼록한 꽃봉오리를 탐스레 달고 있어. 진달래꽃이 지면 철쭉이 연이어 산을 분홍빛으로 물들일 거야. 진달래꽃은 먹을 수 있지만 철쭉꽃은 먹을 수 없어. 그래서 진달래꽃을 ‘참꽃’, 철쭉꽃을 ‘개꽃’이라 부르기도 해. 사람들이 진달래랑 철쭉을 많이 헷갈려 하는데, 잎이 나기 전 붉은빛이 도는 분홍빛 꽃을 먼저 피우는 게 진달래고, 진달래가 지고 연한 분홍빛 꽃을 잎이랑 함께 피우는 게 철쭉이야. 철쭉은 줄기랑 꽃을 만지면 점액이 있어 끈적끈적거려. 진달래 꽃그늘 아래서 꽃도 따고 꽃도 먹고. 진달래꽃 맛은 막 먹으면 달달한데 뒷맛은 시큼하고 약간 쌉쌀하기도 해. 진달래꽃 꽃잎을 다 떼고 암술만 남겨 술을 걸어 당기기 씨름을 했어. 그리고는 진달래 화전을 해 먹으려고 통에다 진달래꽃을 열심히 따 담았지.
바람이 살짝 부니까 벚꽃 잎이 눈처럼 휘날려. ‘우아, 봄에 내리는 눈이다, 눈!’ 하니까 단이가 그래. ‘아니야, 이 눈은 달라 꽃눈이야.’ 벚꽃 잎을 하나 입에 넣으니 무슨 맛인지 모르겠어. 그래서 통째로 먹었더니, 맛이 있었느냐고? 그냥 별로 즐겨 먹을 만한 맛은 아니었어. 가다 보니 콩제비꽃이 드문드문 피어난 곳이 있어. 하얀 콩제비꽃은 다른 제비꽃들보다 꽃이 작아. 꿀주머니가 있는 곳을 핥았더니 맛이 달아. 나무더러 콩제비꽃 먹으라고 했더니, ‘오늘은 그런 게 점심이야?’ 하고 물어. ‘그래, 오늘 점심이니까 배 안 고프게 많이 먹어 둬!’ 잎이 고깔모자처럼 말린 고깔제비꽃도 피었어. 고깔제비꽃 분홍 꽃은 색깔이 참 고와. 이파리가 갈기갈기 갈라진 남산제비꽃 하얀 꽃도 돌계단 틈에서 피었어.
노란 양지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난 곳에 벌처럼 생긴 벌레들이 부산스레 붕붕거려. 벌은 아니고 빌로도재니등에야. 빌로도재니등에는 요맘때 볼 수 있는 곤충이야. 진달래꽃이랑 양지꽃을 좋아하고, 꼭 벌처럼 생겼지만 파리 무리야. 날개가 한 쌍이고 까만색 주둥이가 아주 길어. 몸에 난 털이 빌로도(벨벳) 같다고 이름도 빌로도재니등에야. 빌로도재니등에 떼가 양지꽃 밭에서 우리보다 먼저 봄 잔치 꽃 잔치 꿀 잔치를 벌였어. 양지꽃 잎을 따 먹고 있으려니 텃밭으로 가던 할머니 한 분이 그래. ‘그거 먹으면 안 되는 꽃이야. 우리는 강아지꽃이라 하고는 안 먹어.’ 아무래도 할머니는 양지꽃을 애기똥풀로 잘못 알고 말씀하신 것 같아. 애기똥풀은 줄기를 끊으면 노란 애기똥 같은 즙이 나와 이름이 애기똥풀인 풀인데 독이 있으니까 절대 먹으면 안 돼.
봄놀이 꽃놀이 봄 구경 신나게 하고 돌아와 화전을 만들었어. 진달래꽃 화전, 민들레꽃 화전, 제비꽃 화전, 예쁜 화전들 먹기도 아까워. 달짝한 아까시꿀을 듬뿍 발라 한 입 먹으니, 히히 이게 바로 진짜 점심이야. 먹어도 먹어도 또 먹고 싶고. 남은 진달래꽃을 통에 담아 냉장고에 넣어두고 다음에 또 해먹야지. na-tree@hanmail.net
붉나무는 그림을 그리는 아빠(강우근), 글을 쓰는 엄마(나은희), 그리고 나무랑 단이, 한가족이다. 펴낸책으로 <사계절 생태놀이>가 있다.
봄놀이 꽃놀이 봄 구경 신나게 하고 돌아와 화전을 만들었어. 진달래꽃 화전, 민들레꽃 화전, 제비꽃 화전, 예쁜 화전들 먹기도 아까워. 달짝한 아까시꿀을 듬뿍 발라 한 입 먹으니, 히히 이게 바로 진짜 점심이야. 먹어도 먹어도 또 먹고 싶고. 남은 진달래꽃을 통에 담아 냉장고에 넣어두고 다음에 또 해먹야지. na-tree@hanmail.net
붉나무는 그림을 그리는 아빠(강우근), 글을 쓰는 엄마(나은희), 그리고 나무랑 단이, 한가족이다. 펴낸책으로 <사계절 생태놀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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