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학교에 다니는 고등학교 1학년 민기(가명)와 상담을 했다. 담임 선생님이 민기가 친구가 없다며 상담을 의뢰해 왔다. 민기와 모험놀이상담 3단계인 ‘나를 찾아가는 108질문’을 시작했다. 이는 내가 민기에게 카톡으로 질문을 보내고 민기가 답을 보내 오면 내가 다음 질문을 보내는 방식으로, 질문이 108개가 될 때까지 질문과 답을 이어나가면서 자신을 찾아가는 상담법이다. 민기는 짧게 매일 답변을 보내오고 있다. 108질문을 시작한 지 한달이 되었을 때 전화 상담으로 만났다.
목소리가 긴장해 있는 듯한 민기에게 지금 기분을 물었다. 마음이 싱숭생숭하다고 했다. 통화한 지 10분 정도 지났을 때도 여전히 목소리가 어색하게 들렸다. 민기에게 그동안 답변을 너무 잘했다고 칭찬을 해주었다. 질문한 것 중 몇가지를 다시 물어볼 테니 좀 더 구체적으로 답해보자고 제안했다. 살면서 도움받은 사람에 대해서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어머니와 화목한 분위기에서 장난을 칠 때 그 장난이 즐겁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말을 적게 하시지만 적은 말 속에서도 깊은 뜻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통화 시간이 20분 정도 지나갔다. 민기가 지루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목소리가 점점 밝아졌다. 자신만의 하루 활동에 대해 물어보자 민기는 매일 학교를 마치거나 오후가 되면 웹소설을 읽는다고 답했다. 어떤 소설은 어두운 분위기라서 슬프고, 어떤 소설은 밝은 분위기라서 재미있고 어떤 소설은 사랑을 이야기하기도 한다고 했다.
통화 시간이 35분 지나가고 있었다. 민기를 긍정적으로 대하는 친구 세명을 묻는 질문에 친구가 없다고 답했다. 친구가 없는 이유는 사람들하고 같이 있으면 에너지가 빠지는 느낌이라서 친구를 잘 사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가족과 함께 있으면 즐거워서 외로움을 잊어버린다고 덧붙였다.
40분이 지났을 때 10분만 더 통화하고 마무리하자고 하면서 마지막으로 민기의 꿈을 물었다. 민기는 자신은 꿈이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만족할 수 있는 글을 쓰고 싶다고 말했다. 쓰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해야 할 것이 무엇일지 물어보자, 많은 곳을 돌아다니고 본 모든 것을 쓸 수 있어야 할 것 같다고 답했다. 그걸 구체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지 묻자, 민기는 “일기”라고 답하면서 큰소리로 “아하” 하는 감탄사도 내뱉었다. 그러면서 흥분된 목소리로 “선생님 덕분에 이런 생각을 했다”며 “감사하다”는 말을 여러 번 반복했다. 이어서 스스로 노트북에 하루 500자씩 일기를 쓰겠다는 다짐도 밝혔다.
민기의 “아하” 소리를 들으니, 그간 민기와 진행했던 상담 과정이 스쳐지나갔다. 108질문, 전화 상담 여부, 시간, 통화 방법 등 모든 것을 민기가 선택하게 했다. 사람은 선택하는 순간 정서적 방해물이 치워지고 그 자리에 자신이 가진 것을 도구 삼아 무엇을 할 것인지 연결해주는 힘이 생기는 것 같다. 민기와의 다음 전화 상담이 기대된다.
방승호 모험상담연구소 소장(hoho6173@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