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후문에서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이 연 ‘교육공무직 악성 민원 욕받이로 내모는 교육부 규탄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담임과 연락이 안 된다며 다짜고짜 욕설했어요. ‘당신 같은 교직원 말고 교양 갖춘 교사랑 얘기해야겠다’며 소리 지르는 걸 15분 동안 들어야 했습니다.” (교육공무직 ㄱ씨)
“학부모의 질문에 잘 모른다고 답했다가 ‘교무실에 딱 있어라. 칼 들고 간다’는 협박을 들었습니다. 교육청에 문의하니 아직 무슨 일이 벌어진 게 아니니 과잉 대응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교육공무직 ㄴ씨)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학비노조)이 16일 공개한 교육공무직 당사자들의 악성 민원 경험 사례다. 학비노조는 이날 정부서울청사 후문 앞에서 교권확립종합대책 방안 중 하나로 교육공무직을 포함한 교장 직속 민원대응팀을 만들기로 한 교육부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지금도 교육공무직은 교무실, 행정실에서 민원 응대를 하고 있고, 많은 이들이 악성 민원으로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며 “민원대응팀을 만들겠다는 정부 대책은 악성 민원 폭탄 떠넘기기, 눈 가리기 대책일 뿐이다. 학교에서 근무하는 모든 노동자를 보호하는 근본적인 해결책 마련 없이 교육공무직을 민원 ‘욕받이’로 앞세우는 것은 정부와 교육 당국이 교육공무직을 사지로 내모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밝혔다.
학비노조는 학부모의 악성 민원으로 힘든 것은 교사만이 아니라고 했다. 특히 문제가 발생해도 교육공무직을 구제해 줄 아무런 법적 근거가 없고 상담이나 의료 지원 체계도 없다고 지적했다. 실제 학비노조가 지난달 28일부터 이달 4일까지 노조원 521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응답자의 28.2%가 학부모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은 적 있다고 답했다. 학교 내에서 경험하는 고충을 어떤 방식으로 해결하느냐에 대한 질문에는 노조나 동료에게 상담하거나 그냥 참는다는 응답이 52%에 달했다. 학교장 및 중간 관리자에게 의논한다는 응답은 27.4%에 불과했다.
교육공무직이라고 밝혔더니 학부모가 무시하거나, 본인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여서 담임교사나 관리자를 바꿔준다고 했더니 아이에게 피해 갈까 봐 “싫다”고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사실상 학부모 화가 가라앉을 때까지 ‘욕받이’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게 교육공무직 당사자들의 말이다.
교실 안에서 일어나는 일 관련 민원 해결을 교육공무직에 맡기는 게 실효성 없다는 주장도 나왔다. 경기도 쪽 학교에서 근무하는 나윤아 행정실무사는 “수업, 학생지도, 학교폭력 등 교수 학습과 직접 관련된 민원을 교육공무직을 포함해 민원전담팀이 맡아서 해결할 수 있다고 보느냐”며 “교육부의 예고는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갑질 횡포”라고 말했다. 이번 설문조사에서 악성 민원 경험 사례를 적은 한 교육공무직 노동자도 “지난 4월 학부모가 전화해 ‘왜 담임교사 연락처를 안 알려주느냐’ ‘지금 너랑 얘기하자는 게 아니다’라며 폭언을 쏟아냈고, 그 이후로도 3번이나 동일한 통화를 해야 했다. 재학생의 학부모 민원을 우리가 어떻게 해결할 수 있다는 건지 의문이다”라고 밝혔다.
학비노조는 전문적인 응대를 할 수 있도록 학교마다 전문인력을 배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울 학교에서 근무하는 최은정 교무행정지원사는 “학부모의 민원을 받고 상담하는 것은 전문인력이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또 악성 민원으로부터 교사뿐만이 아닌 모든 교직원을 보호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곽소연 학비노조 교무분과 전국분과장은 “교사한텐 교육활동 보호 및 침해에 대한 법률·상담·의료를 통합 지원하는 ‘교권보호 및 교원치유지원센터’라도 있지만 교육공무직한텐 업무나 민원인들로부터 고통받아도 호소할 곳이 하나 없다. 악성 민원 등으로부터 교육공무직을 보호할 수 있는 법 제도 마련을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박고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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