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12일 발표한 ‘학교폭력(학폭) 근절 종합대책’은 학폭 가해학생이 대입 불이익을 면하기 위해 택할 수 있는 수능이나 재수, 자퇴와 같은 ‘우회로’를 차단하는 효과를 낼 것으로 보인다. 가해학생의 ‘끝장소송’에 속수무책이었던 피해학생을 보호할 수 있는 법률 지원 정책이 처음 시도되는 점에 대해서는 긍정적 평가가 나오는 반면 지원 범위가 협소해 ‘범부처 종합대책’으로는 무색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학폭 종합대책 가운데 ‘가해학생 엄벌 원칙’과 관련해서는 ‘대입 모든 전형 징계 감점 의무화’와 ‘징계 기록 보존 기간 4년 연장’이라는 두 가지 정책이 결합되어 ‘대입 불이익’이 기존보다 크게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강제전학’(8호)조치의 경우 졸업 후 보존 기간이 4년으로 연장하되 삭제가 불가능하도록 했다. 보존 기간이 4년으로 동일한 ‘출석정지’(6호) ‘학급교체’(7호) 조치는 삭제가 가능하지만 삭제 심의 때 피해학생 동의 및 소송 여부 등을 중요한 심의요건으로 규정해 ‘반성 없는 삭제’가 어렵도록 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서울대 정시모집에서 학폭 감점으로 불합격한 학생들이 좀 있다”며 “조치사항이 심하면 당락을 좌우할 정도로 반영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교육부는 교·사대 등 인성요소를 중요하게 평가하는 전형의 경우 지원 자체를 제한하는 방안도 대학이 자율적으로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입시 불이익’이 더해짐에 따라 가해 학생의 불복 소송 또한 늘어날 것으로 보이지만, 이를 보완할 방안은 역부족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한성준 좋은교사운동 공동대표는 “출석정지(6호) 처분 이상에 대해 보존 기간을 4년으로 늘리면 현장에서는 징계 수위를 5호 아래로 낮추기 위한 분쟁이 시작될 것”이라며 “법적 분쟁을 줄이기 위한 교육적 해결을 지원 대책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학교 폭력 근절 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피해학생에 대한 보호를 강화하기 위해 학교장과 교사의 대응력을 키우겠다는 계획에 대해서는 실효성에 물음표가 찍힌다. 학교장은 앞으로 피해학생과 가해학생을 최대 7일(현행 3일)까지 ‘즉시 분리’할 수 있다. 학교폭력심의위원회(학폭위) 조치 사항이 결정되기 전에 이뤄지는 ‘학교장 긴급조치’에 ‘학급교체’(7호)가 추가되고 ‘출석정지’(6호) 기간도 현행 10일 이내에서 학폭위 조치가 결정될 때까지 최대 7주로 연장된다. 학폭 사건을 주로 다뤄온 노윤호 변호사(법무법인 사월)은 “지금도 즉시분리나 출석정지 조치가 있지만 가해학생의 반발이 심해 내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학교가 학부모들의 민원 부분에서 자유로울 수 있도록 지원하는 대책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학폭 대응 과정에서 중대한 과실이 없는 교원의 민·형사상 책임에 대해 ‘면책권’을 부여한다는 방침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반응이 나온다. 한 공동대표는 “교사 대상 법적 소송은 150쪽에 달하는 학폭 매뉴얼을 조금의 흠도 없이 이행했는가를 놓고 다투게 된다. 어디까지를 중대한 과실로 볼 것이냐가 또 다른 다툼의 여지를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학폭 사건을 다수 대리한 박상수 변호사(법률사무소 선율)는 “면책권이 있더라도 일단 수사해봐야 면책이 되는지 여부를 판단할 수 있지 않냐”며 “결국 선생님들이 피소될 수 있다는 부담감은 여전한 것”이라고 짚었다.
법률 지원의 범위가 협소해 ‘생색내기’에 그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박 변호사는 “소송이든 심판이든 참여 권리가 있는데 그거 자체도 피해자들은 잘 모르기 때문에 불복 사실을 통지해 주고 참가권을 보장해주는 것은 장족의 발전”이고 평가했다. 다만 그는 “이번 대책에 행정심판만 언급되었는데, 정순신도 행정소송까지 갔고 그 부분에 대한 국선변호인 선임 지원 등 법률 및 예산 대책이 빠지는 등 법무부나 기재부와 논의 없이 교육부가 혼자 만든 것 같다”며 “피해학생 법률지원이 생색내기에 그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학폭 관련 ‘끝장소송’으로 처분을 지연시키는 문제와 관련해 소송 기간 단축의 필요성이 제기된 바 있지만, 이번 대책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이날 브리핑 때 기자들이 이와 관련해 질의하자 장상윤 교육부 차관은 “기간을 단축하는 것보다는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피해자 보호 또는 법적 대응에 필요한 지원, 또 심리나 의료 지원 등에 사각지대가 있다는 문제인식을 가지고 포커스를 맞춰서 대책이 나왔다”고 말했다.
김민제 기자
summer@hani.co.kr 박고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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