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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응징’에서 ‘회복’으로…학폭의 교육적 해법 고민해야

등록 2023-04-03 17:18수정 2023-04-05 10:30

학폭 대안 ‘관계회복 프로그램’

피해자들은 진심어린 사과 원하는데
처벌받은 가해자들 ‘죄값 치렀다’ 당당
경미한 학폭의 경우 피해자 원한다면
공감 중심 ‘관계회복 프로그램’ 주목
정순신 변호사 아들의 학교폭력(학폭) 사태를 계기로 교육부가 관련 대책을 이달 초 발표할 계획이다. 학폭 대책을 두고 ‘가해자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 ‘엄벌주의가 능사는 아니다’ 등의 다양한 의견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학폭 전문가들이 이야기하는 대안에 대해 알아본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에서 학교 봉사 5시간 처분을 받은 학폭 가해 학생이 있었습니다. 사실 이런 경우는 심각한 사안은 아닙니다. 그런데 가해 학생이 어떻게 나오느냐면요. ‘자, 나 죗값 치렀지. 이제 나한테 뭐라고 하지마’ 이런 식으로 나오는 겁니다. 그리고 학원에서 피해 학생을 계속 째려보는 거예요. 이런 경우는 증거가 없고, 째려보는 친구 때문에 피해 학생의 상처는 더 커질 수 있지요. 학폭 가해 학생이 전학 가는 경우는 5%도 안 됩니다. 가해자 처벌을 강화한다고 피해 학생 상처가 회복될까요? 이럴 때 시도할 수 있는 것이 관계회복 프로그램입니다.”

경남교육청에서 학폭 사건을 담당하는 진희정 변호사의 말이다. 이것이 단순히 가해 학생 처벌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가해 학생이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 알아차리고 피해 학생과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관계회복 프로그램’이 주목받고 있는 이유다.

관계회복 프로그램이란?

관계회복 프로그램은 학교폭력으로 인한 대상자 간 갈등 발생했을 때 이해, 공감, 소통, 치유를 기반으로 한 맞춤형 프로그램을 말한다. 각 시도교육청은 ‘관계회복’ ‘갈등조정’ ‘화해조정’과 같은 용어가 들어간 프로그램이나 지원단을 운영하거나 관련 전문 기관에 위탁해 이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있다.

관계회복 프로그램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응보적 정의’와 ‘회복적 정의’라는 개념을 알아야 한다. 평화활동가이자 회복적 모임 활동가인 김복기 춘천평화시민센터장은 “가해자를 처벌하고 처벌 권한을 가진 사람이나 기관의 권한이 강화되는 것이 응보적 정의라면, 가해자 처벌을 넘어 피해자의 회복에 중점을 두고, 피해자의 참여와 가해자의 자발적 책임을 통해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것이 회복적 정의”라며 “관계회복은 이런 회복적 정의 패러다임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기존 처벌 중심 대책은 ‘응보적 정의’에 기반을 둔 것으로, 이러한 ‘응보적 처벌’을 받은 가해 학생들은 진 변호사가 말한 사례처럼 ‘나는 죗값을 치렀다’는 생각으로 당당하게 되고 피해자에게 진정한 사과를 하지 않는 등의 문제가 있어왔다. 관계회복 프로그램은 이같은 ‘응보주의’가 갖는 한계를 인식하고, 가해자의 진정한 사과와 자발적인 책임을 중요한 목표로 한다. 대부분의 피해 학생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진심 어린 사과이기도 하고, 피해자의 심리적 회복에는 진정한 사과가 결정적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관계회복 지원의 실제 사례

경기도의 한 초등학교에 4학년에 다니는 재석(가명)과 진우(가명)는 학교 후문의 한 행사장에서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줄을 서던 중 욕설을 하며 다퉜다. 진우 부모는 “재석이가 줄을 선 진우를 밀었고 욕을 했다”며 학폭으로 재석이를 신고했다. 재석이는 “진우를 밀려고 한 것이 아니라 새치기를 하는 형을 밀다가 나도 모르게 진우 어깨에 손이 닿은 것”이라며 “진우도 내게 욕을 했다”고 억울해했다. 재석이와 진우의 이야기를 들은 학교 선생님은 두 아이를 위해 관계회복 프로그램을 신청했다.

조정가는 재석이와 진우를 각각 만나 그날 있었던 일뿐만 아니라 이전에 두 사람 사이에 있었던 일까지 탐색했다. 사전 만남을 통해 조정가는 재석이와 진우는 3학년까지 친한 사이였는데 ‘모래놀이’ 사건을 통해 사이가 벌어졌음을 확인했다. 3학년 어느 날, 재석이가 모래를 뿌리며 놀다가 진우의 눈에 들어갔다. 진우는 눈이 아파 양호실에 갔다. 진우는 “재석이가 미안하다는 말로 퉁치고 내 걱정을 안 해서 섭섭했다”고 말했다. 재석이는 “미안하다고 사과했는데도 진우가 계속 화를 내니 그 이후 진우에게 말을 걸지 않게 됐다”고 말했다. 재석과 진우, 양쪽 어머니가 모두 참여한 본모임에서 둘 사이에 있었던 문제들이 더 언급됐다. 진우는 ‘빡테리아’라는 말을 제일 듣기 싫어하는데 재석이가 장난을 치며 그 말을 많이 사용해 화가 나 있었다. 재석이는 “진우가 그 말을 싫어하는지 몰랐다”고 말했고 “앞으로 그 말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재석이와 진우는 관계회복 프로그램을 통해 갈등 요인이 무엇인지 파악한 뒤, 이제는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다.

관계회복 프로그램은 이처럼 사전모임-본모임-사후모임 순으로 이뤄진다. 사전모임에서는 잘 훈련된 조정가가 피해 학생과 가해 학생을 개별적으로 만나 어떤 일이 있었는지, 각자의 입장은 무엇인지 충분히 이야기를 듣는다. 조정가는 양쪽의 욕구 등을 파악하고 양쪽의 동의로 본모임을 연다. 이때 양육자나 교사가 참여해도 된다. 본모임에서는 피해 학생이 바라고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야기할 기회를 준다. 가해 학생도 자신의 입장을 이야기하고 피해자와 소통하는 시간을 갖는다. 서로 공감과 소통을 통해 갈등이 해소되면, 사후모임을 통해 관계회복 상황을 점검한다.

관계회복 프로그램에 대한 오해와 진실

‘관계회복 지원’을 활용하는 사례는 아직은 많지 않다. 경남교육청의 경우, 학교폭력 관계회복지원단을 구성해 지난 5개월간 137건 430명의 피해 학생 회복을 도왔고, 서울시교육청은 지난해 43건의 관계회복을 지원했다. 서동용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교육부로부터 받은 ‘17개 교육청별 화해·분쟁 조정 및 회복증진 지원 사업비 현황’(2022년 기준)을 살펴보면, 서울시교육청은 관련 프로그램에 9200만원을, 경기도교육청은 7600만원의 사업비를 받았다. 전북은 2300만원, 경남 2000만원, 대구는 1800만원을 받는 등 아직은 미미한 수준이다. 이는 지난 2년간 코로나19 사태로 대면 접촉이 어려웠을 뿐 아니라, 이 프로그램에 대해 잘 모르거나 오해하는 사람들도 많기 때문이다.

서울시교육청 민주시민생활교육과 담당자는 “학폭 초기에 관계회복 프로그램을 소개하면 무조건 화해시키려 하는 것 아닌가 하고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관계회복 프로그램’ 전문가인 박숙영 좋은교사운동 회복적생활교육연구회 대표는 “피해 학생에게 어떤 고통이 있었는지 충분히 당사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가해 학생에게는 자신의 행위에 대해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고 스스로 책임지도록 하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핵심”이라며 “무조건 문제를 덮고 화해시키지 않는다”고 말했다.

관계회복 프로그램에 참여하면 ‘가해 학생을 처벌 못 한다’고 오해하거나 ‘처분이 경감될 수 있다’는 기대를 하는 경우도 있다. 김석민 푸른나무재단 상담본부 팀장은 “이 프로그램은 학폭위 전이나 후, 심의하는 중에도 양쪽이 원하면 언제든 참여가 가능하고, 이 프로그램에 참여했다고 해서 처벌을 안 하거나 처분이 경감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인식 전환과 인프라 구축 필요

지난해 3월1일부터 8월31일까지 발생한 전체 학교폭력 사건(3만457건) 가운데 학교장 자체해결은 총 2만661건이었다. 이는 전체 사건의 68%에 해당한다. 같은 기간 학폭위에서 퇴학 처분을 받은 건수는 18건, 전학 조치는 438건이었다. 그만큼 학폭 사건의 상당 부분은 경미한 다툼인 경우가 많다는 방증이다. 전문가들은 경미한 학폭 사안을 ‘응보주의’로만 처리하면 학폭 문제를 제대로 해결할 수 없다고 말한다. 송호찬 경남교육청 민주시민교육과 과장은 “학폭 현장에서 보면 가해 학생은 대부분 피해 경험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며 “갈등의 본질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고 서로 이해하고 상호 합의로 약속을 만드는 관계회복 프로그램이 또 다른 학폭을 예방할 수 있는 지름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관계회복 프로그램이 활성화되려면 제대로 된 관계회복 전문가 양성과 인프라 구축이 필요하고, 학폭 문제를 대하는 교사나 양육자의 인식이 먼저 전환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각 시도교육청 차원에서 관계회복 프로그램을 활성화하기 위한 잰걸음을 하고 있다. 경남교육청은 최근 교육부에 ‘관계회복 (프로그램) 지원’의 법제화를 제안하고 내부 규정을 개정하기로 했고, 서울시교육청은 학폭 발생 시 학교가 양육자에게 받는 ‘확인서’에 ‘관계회복 프로그램 큐아르(QR) 코드’를 만들어 넣는 등 관련 프로그램 홍보를 강화할 계획이다. 다른 시도교육청 학폭 담당자들도 ‘관계회복 지원’을 활성화하기 위한 방안을 찾고 있다.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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