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음악동아리 인연으로 고등학교 1학년인 상민이(가명)를 만났다.

아이는 키가 크고 흰색 마스크 너머 눈이 맑았다. 요즘 점심시간에 나와 함께 학교 밖에서 밥 먹는 상담을 하고 있다. 따뜻한 국밥이 들어가자 마음이 편한지 상민이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공부를 해본 적이 없다고 말하면서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때부터 게임을 했다고 했다. 최근에는 복싱을 배우고 있다고 한다. 복싱을 하면서 자신보다 센 사람과 스파링을 한 뒤 포옹을 하며 끝내면서 예를 배웠다며 무심한 듯 말을 했다.

그렇게 상민이와 8개월간 매일 만났다. 코로나19 시기 동안에는 ‘나를 찾아가는 길’이라는 제목으로 온라인에서 만났다. 내가 카톡으로 좋은 문장 하나와 질문 하나를 보내면, 상민이가 답변을 보내는 방식이었다. 108번의 질문을 던졌고, 108번의 답을 받았다. 세 번 정도 대면 상담도 진행했다.

첫 대면 상담했을 때 먼저 팔씨름을 했다. 기분을 물었다. “재미있다”고 했다. 살면서 가장 재미있었던 적을 물었다. 공부를 안 하다가 했는데 한 과목 80점 받았을 때라고 했다. 또 스파링 할 때 원하던 복싱기술이 성공했을 때가 가장 좋았다고 한다. 재미의 반대를 물었다. 공부 못하는 것, 부모님 잔소리 듣는 것이라고 했다.

108번의 질문을 마무리하고 다시 대면 상담을 했다. 108번의 답을 한 데 대해 먼저 “대단하다”고 칭찬해주면서 “무엇이 도움이 되었는지” 물었다. 상민이는 “내 삶을 돌아볼 수 있어서 좋았고 목표가 생겼다”며 “73번째 꿈에 관련된 질문에서 비롯되어 어린 시절부터 갖고 있던 소방관 꿈을 다시 꾸게 되었다”고 했다. 소방관 꿈은 뉴스를 보다가 목숨이 위험한 걸 알고 있으면서도 사람을 구하러 가는 모습을 보고 반했다고 했다. 요즘 영어와 한국사 공부를 하고 있으며, 도서관에 다니고 있다고 했다. 피시방보다 도서관이 더 조용하고 다른 사람들 공부하는 모습을 보면 동기 부여가 된다고 했다.

상민이는 전에는 남이 간섭할 때 반항을 했다고 한다. 요즘은 엄마 문소리가 들리면 바로 쓰레기통으로 달려가 쓰레기를 치워 전보다 스트레스가 없는 하루를 보내고 있다고 한다. 또 전에는 이런 질문을 받으면 엄청 고민했을 것 같은데 매일 좋은 문장을 읽고, 질문에 답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답이 툭 나온다고 했다.

그동안 왜 공부를 안 했는지도 알게 됐다고 했다. 꿈도 목표도 없고 왜 해야 하는지 몰랐다고 했다. 이젠 목표가 생겼고 진짜 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앞에 무서운 불이 일어나도 사람을 구하고 싶다고 했다. 이제 나도 한번 해보고 싶다면서 상담을 마무리했다. 상담을 마치고 걷다가 단군신화에 곰이 100일간 마늘을 먹고 사람이 된 것처럼, 상민이에겐 108번의 질문과 답변이 꿈을 갖게 하는 영양소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학교가 아이들의 다양한 꿈을 안전하게 부화시키는 장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방승호 모험상담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