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2월17일 오후 서울 성동구청에서 열린 2022학년도 대입 정시 설명회에 참석한 학부모가 자료를 보며 설명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2022학년도 대입 정시모집에서 서울 주요 대학 인문계열 학과에 이과생이 대거 교차지원한 것으로 확인돼, ‘창의융합형 인재’를 길러낸다는 2015 개정 교육과정의 취지를 반영한 문·이과 통합형 수능이 수학을 잘하는 이과생에게 유리한 제도로 변질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바뀐 제도에서 이과생의 ‘무기’는 수학 점수였다. 21학년도 수능까지는 이과생은 수학 가형, 문과생은 수학 나형을 나눠 치고 성적도 별도로 산출했다. 하지만 22학년도부터는 문·이과 통합형 수능이 도입되면서 수학이 ‘공통과목+선택과목’ 형태로 출제되고 시험도 같이 치고 성적도 함께 산출했다. 수학에 적성과 재능이 있어서 이과를 선택한 학생들이 절대적으로 유리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수능 체제의 변화를 체감한 재수생 강미나(가명·20)씨는 16일 <한겨레>에 “공통과목 난이도가 문과한테는 어렵고 이과한테는 상대적으로 쉬웠던 것이 가장 불리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강씨는 21학년 대입에서 수시 학생부종합전형으로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에 합격했지만 재수를 택했다. 통합형 수능 도입이 예고된 상태였기 때문에 스스로 ‘수학에 강점이 있는 문과생’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재수기간 수학 공부에 시간을 더 들였다고 했다. 강씨는 “공통과목이 21학년도 수학 나형보다 많이 어려웠다”며 “1년을 더 노력했음에도 수학 영역 백분위(나보다 점수가 낮은 학생 수의 비율)가 96에서 95로 떨어져 등급도 1등급에서 2등급으로 내려앉았다”고 말했다.
수학 1등급 가운데 강씨처럼 확률과통계를 선택한 문과생은 겨우 5.8%에 불과한 것으로 추정된다. 서울중등진학지도연구회가 지난해 12월 서울 학생 2만명의 수능 실채점 결과를 분석한 결과다. 2등급에서도 미적분 또는 기하를 선택한 학생(이과)이 86.6%에 이르고, 확률과통계를 선택한 학생(문과)은 13.4%에 그쳤다. 이처럼 수학 1~2등급에 이과생이 대거 포진한 가운데, 국어·수학·탐구영역 표준점수 합산 점수를 봐도 최상위권인 420~429점대와 410~419점대, 400~409점대에 확률과통계를 선택한 학생은 각 2.1%, 7.3%, 13.5%에 불과했다. 특히 서울대나 서강대 등 인문계열임에도 국어보다 수학영역의 반영 비율이 높다면 이과생들이 교차지원하는 경우 더욱 유리할 수밖에 없다.
모의지원 단계에서부터 이과생들의 교차지원을 확인하고 문과생들이 원서접수 자체를 포기한 사례도 나왔다. 지방의 한 교대에 합격한 문과생 이지영(가명·19)씨는 “입시업체를 통해 수도권 교대에 모의지원해본 뒤에 일부러 수학과 과학탐구에 가산점을 주지 않는 교대를 찾아 지원하기로 마음을 먹었다”고 말했다. 수도권 교대 합격권 안에 미적분이나 기하, 과학탐구를 선택한 학생들이 많이 보인데다 수도권 교대 중에는 과학탐구를 선택하면 과목당 3%씩 가산점까지 부여하는 곳도 있다보니 나란히 경쟁하기가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대학들이 대입 전형에 유독 이과계열 전공에만 진입 장벽을 세워 문과생들의 불만도 커지고 있다. 대부분 상위권 대학에서 이과생들이 인문계열에 교차지원하기 위해 꼭 선택해야 하는 필수 응시영역(사회탐구)이 없지만 문과생들이 이과계열에 지원하려면 수학 선택과목은 미적분이나 기하를, 탐구영역은 과학탐구를 반드시 응시해야 한다.
진학지도 경험이 20년이 넘는 서울의 한 고교 ㄱ교사는 “대학들은 학생들이 미적분을 공부하지 않고 오면 교수들이 가르치기 어렵다는 이유를 들지만 대학에서 예비과정으로 학점 이수를 하게 하는 방법도 있다”며 “진입 단계에서부터 문과생에게 벽을 세우는 것은 대학이 선발의 자율권이라는 미명 아래 횡포를 부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문과생도 이과 계열에 지원할 수 있게 벽을 허물거나 그게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적어도 문사철 학과 만큼은 사회탐구를 필수 응시 영역으로 지정해 이과생의 교차지원 규모를 줄이는 최소한의 장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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