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4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학원 앞에 방학특강 관련 홍보물이 세워져 있다. 연합뉴스
“대학 간판이 확실히 달라지잖아요. 간판 올리기용이죠.”
가입자가 3백만명에 가까운 온라인 수험생 커뮤니티에 ‘이과생이 인문 계열에 교차지원하는 이유가 뭐냐’는 질문에 달린 댓글 내용이다. 익명에 기대 솔직한 속내를 드러낸 셈이다. 서울중등진학지도연구회 소속 이재영 교사(서울 면목고)는 16일 <한겨레>에 “자신의 적성보다 대학의 이름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게 만든 대학 서열 위주의 사회 현실이 학생들에게 반영된 결과”라며 “학생들이 무슨 잘못이 있나. 교차지원을 부추기는 판이 깔리면 학생들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예비 고3 가운데는 학교 진로교사에게 교차지원하면 대학 ‘급’을 얼마나 올릴 수 있는지 물어보는 학생들도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일선 교사들은 새 입시 경향이 대학 교육에 가져올 부작용을 우려한다. 같은 연구회 소속 장지환 교사(서울 배재고)는 “기본적으로 수능으로 대학을 간 학생들은 (수시로 간 학생들에 견줘) 반수 비율이 높다. 한 문제만 더 맞히면 대학과 학과가 바뀐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며 “더군다나 교차지원까지 했다면 반수 가능성은 더 높아진다고 추정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진학지도 경험이 20년이 넘는 서울의 한 고교 ㄱ교사 역시 “이과생의 대규모 교차지원은 대학에 재정적 손실을 안기고 사회적 문제까지 야기할 수 있는 문제”라고 우려했다. ㄱ교사는 “생각보다 복수전공이나 전과가 용이하지가 않다. 이 때문에 학생들이 휴학을 한 채로 반수나 재수를 하게 되면 대학 정원으로 계속 잡혀 이들이 자퇴를 할 때까지 대학은 편입생을 뽑지 못하고 등록금 손실을 떠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자퇴 대신 전과를 한다고 해도 문제다. 특히 모집 인원이 적은 이른바 문사철 학과에서 한꺼번에 학생이 빠져나가 빈자리가 생긴다면 타격이 더 클 수밖에 없다.
문·이과 통합형 수능 첫해 빚어진 큰 혼란은 대입 정책의 ‘엇박자’에서 비롯된 측면도 크다. 국어와 수학이 ‘공통과목+선택과목’ 형태로 출제되면서 필연적으로 과목 선택에 따른 유불리가 나타나게 되는데, 이를 최소화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는 절대평가화 등으로 수능의 영향력을 줄이는 것이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문·이과 통합의 전제조건은 학생을 학생부종합전형으로 대부분 뽑고 수능은 절대평가제로 바꾼다는 것이었다. 이런 전제가 깔린 상황에서 문·이과 통합형 수능이 도입됐어야 하는데 (정시가 다시 확대되고 수능 절대평가제 도입은 좌절되는 등) 전부 따로 노는 모양새라 입시가 꼬여버렸다”고 지적했다. 서울의 한 대학 입학처 관계자는 “올해 정시 전형은 이미 2년 전에 설계가 됐는데 이과생들이 문·이과 통합형 수능에서 얼마나 유리한지는 지난해 3월 모의평가 이후에야 알 수 있었던 부분”이라며 “대학 입장에서도 연습 아닌 연습을 하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이번 논란을 계기로 점수에 집중해 단편적으로 학생을 선발하는 것을 넘어서자는 목소리에 다시 힘이 실릴 것이라는 기대도 나온다. 서울대는 수능 성적 100%로 뽑던 정시 모집 전형을 바꿔 2023년도 대입부터는 교과평가도 반영하기로 했다. 진로·적성에 따른 선택과목 이수 내용과 모집단위 관련 교과 성취도 등을 보겠다는 것인데, 이과생 입장에서는 교차지원에 신중해지는 지점이 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정시에도 수시 전형의 요소를 넣어 해당 학과에 실제로 열의를 가진 학생을 뽑고자 하는 대학들이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다만 당장의 지원자수, 입시 경쟁률에 연연하는 대학들이 당분간 교차지원 현상을 이대로 방치할 수 있다는 우려도 만만치 않다.
이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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