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어떤 사람과 만나고 있나요. 만남의 깊이에서 서로 이해하고 지지해주는 사람은 얼마나 되나요. 게티이미지뱅크
강원국 l <대통령의 글쓰기> 저자
선생님이 우셨습니다. 1980년 5월28일 전두환 퇴진 시위를 위해 교실 문을 나가려던 고3 우리 반 친구들을 담임 선생님이 가로막았습니다. 친구들이 선생님을 밀쳐내고 운동장으로 나갔지요. 선생님은 텅 빈 교실 책상에 엎드려 우셨습니다. 제자들에게 내동댕이쳐진 처지를 한탄하는 울음이라고 추측했죠.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제자들이 자랑스러워 우신 것이었습니다.
지금은 유명을 달리하신 강규원 선생님. 새벽같이 자전거를 타고 제자들을 깨우러 다니셨습니다. 특히 말썽만 부리던 내게 각별한 관심을 보여주셨지요. 징계를 받은 내가 다음해 복학할 수 있게 도와준 분도 그분이었습니다. 그분과의 만남이 없었다면 십중팔구 나는 대학에 진학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돌아보면 모든 건 만남을 통해 이뤄졌습니다. 가족과의 만남을 시작으로 친구와 만나고 직장 동료와 만났습니다. 직장을 그만둔 후에도 여러 모양으로 사람과 만납니다. 첫 직장 대우증권에서 회장 비서실로 옮겨갈 때, 대우에서 청와대에 들어갈 때, 국민의 정부에서 참여정부로 넘어갈 때, 청와대에서 나와 이곳저곳을 전전할 때 모두, 누군가 나를 소개하고 추천하고 이끌어줬습니다. 책을 냈을 때도 온라인으로 만난 분들이 책을 사주고 홍보해줬고요. 만남이 없었더라면 그 어느 것도 이뤄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코로나 때문에 만남이 줄어들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대화도 줄었습니다. 우리는 대화하기 위해 만납니다. 밥 먹고 커피 마시기 위해 만나는 건 아니지요. 가뜩이나 우리나라는 대화가 부족했습니다. 내 또래들은 가정에서 부모와 대화가 거의 없었습니다. 학교에 가선 친구들과 얘기하면 칠판 한쪽에 ‘떠든 사람’으로 이름이 적혔습니다. 사회에 나와서도 마찬가지였지요. 대화보다는 지시와 명령, 상명하복이 더 효율적이라고 받아들여졌습니다. 상하 구분이 엄격해 수평적 대화가 이뤄지지 못했습니다.
대화 부족은 우리 세대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젊은 세대의 만남 기피 경향은 더 심각합니다. 만나지 않고 메신저로 소통합니다. 사람에게 묻지 않고 인터넷이나 유튜브에 묻습니다. 1990년생 아들은 어릴 적 꿈이 회사원이었습니다. 왜냐고 물으면 ‘회식’하기 위해서라고 답했습니다. 어린아이 눈에 회식하고 들어온 아빠가 행복해 보였나 봅니다. 그런데 설문조사 결과를 보니까 이른바 ‘엠제트(MZ)세대’가 가장 싫어하는 것 중 하나가 회의와 회식이라고 하더군요.
만남의 대상은 세 부류가 있습니다. 첫번째는 늘 만나는 사람입니다. 집에서는 가족과 만나고 직장인은 회사 동료와 만납니다. 싫으나 좋으나 이들과 대부분의 일상을 보냅니다. 만남이라기보다는 삶의 일부라고 할 수 있지요.
두번째는 약속해서 만나는 사람입니다. 학창 시절 친구일 수도 있고, 사회에서 만난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이들과 만나는 것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만나도 그만 안 만나도 그만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만남은 그것을 대하는 태도에 따라 다시 세 유형으로 나뉩니다. 우선, 만남 자체를 즐기거나, 만남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게 분명한 사람들입니다. 어느 선배가 내게 말했습니다. “평생 점심값은 내가 낸다고 작정하고 살면 성공할 수 있다”고요. 이 선배는 한 달 내내 약속이 빼곡합니다. 나는 이런 유형은 아닙니다. 누군가 만나자고 연락해오면 마지못해 만납니다. 때로는 의무감에 만나기도 합니다. 나보다 더 심한 유형도 있지요. 은둔형입니다. 먹고사는 일로 만나야 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람을 만나지 않습니다.
만남의 대상이 되는 세번째 부류는 새롭게 만나는 사람입니다. 소개를 받거나 새로운 모임에 나가 모르던 사람과 만나는 경우입니다. 이 만남이 없으면 관계가 확장되지 않지요. 나이를 먹을수록 이런 만남은 줄게 됩니다. 상급 학교에 진학하면서, 또 직장에 들어가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데, 나이가 들어 직장을 그만두게 되면 새로운 사람을 만날 일이 거의 없어집니다. 그동안 알았던 사람이나 잘 관리하며, 그들과 함께 늙어가자고 마음먹는 사람이 대부분이지요.
여러분은 어떤 사람과 만나고 있나요. 만남의 빈도에서 늘 만나는 사람과 약속해서 만나는 사람, 그리고 새로 만나는 사람의 비율은 어느 정도인가요. 만남의 깊이에서 서로 이해하고 지지해주는 사람은 얼마나 되나요.
우리는 학교에서 이런 만남을 얼마나 준비하고 있나요? 만남에도 기술이 필요하다면, 학교는 그런 역량을 얼마나 키워주고 있나요? 혹시 ‘네가 잘되면 사람은 얼마든지 붙기 마련이니 친구들과 어울리지 말고 네 앞가림부터 잘하라’고 가르치진 않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