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23일 서울 마포구 중소기업 DMC타워에서 '직업계고 현장실습 추가 개선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직업계고 현장실습생의 안전을 위해 현장실습 업체를 선정하는 절차를 강화했다.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완화했던 규제를 직업계고 학생이 현장실습을 하다 숨지는 사고가 발생하자 뒤늦게 다시 강화한 것인데, 섣부른 규제 완화로 사고를 막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앞서 23일 교육부와 고용노동부, 중소벤처기업부, 산업통상자원부 등은 ‘안전·권익 확보를 위한 직업계고 현장실습 추가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교육부 등은 “산업안전·권익 보호에 대한 높은 국민적 요구와 정책환경의 변화에 맞춰 현장실습의 준비-점검-관리 전반에 걸쳐 협업을 강화한다”며 “현장실습 선도·참여기업 모두에 대해 사전 현장실사를 실시하도록 하고 특히 건설·기계·화공·전기 등 유해·위험 업종에 대해선 고용부의 참여를 확대한다”고 밝혔다. 참여기업의 경우 그동안 현장실습이 적합한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현장실사를 교사 혼자 나갔는데 앞으로는 교사는 물론 노무사도 반드시 함께 사전 현장실사에 참여하도록 한 것이다.
지난 10월6일 고 홍정운(18)군은 전남 여수의 한 요트업체에서 현장실습을 하다 숨졌는데, 당시 제도상의 문제로 지적됐던 것 중 하나가 현장실습 업체 선정 기준 및 절차 완화였다. 교육부는 2017년 제주도에서 직업계고 현장실습생 이민호군이 숨지자, 노무사가 동행한 사전 현장 실사 뒤 선도기업협의체의 승인을 받고 교육부 또는 시도교육청에서 최종 인정을 받은 ‘선도기업’ 중심으로만 현장실습을 허용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 규제는 1년만인 2019년 1월 다시 완화됐는데, 선도기업에 선정되지 않은 기업들도 ‘참여기업’으로서 현장실습생을 폭넓게 받게 된 것이다. 참여기업은 노무사의 현장 실사 없이 학교현장실습운영위원회(실습운영위)의 심의만으로 선정이 가능했다. 심지어 교육부는 지난해 3월 이 실습운영위마저 노무사 등이 참여하지 않아도 되는 소위원회를 통해 약식으로 가능하도록 지침을 한 번 더 완화했다. 참여기업은 기업 규모 제한도 없어서 홍군이 다닌 업체처럼 영세한 1인 업체도 선정될 수 있었다. 지난해 현장실습생 3명 가운데 1명은 이런 참여기업에서 현장실습을 했다.
이런 규제 완화 뒤 홍군 사고가 발생하자 교육부는 다시 부랴부랴 규제를 강화했다. 이번 개선안에 와서야 선도기업뿐 아니라 참여기업까지 현장실습 전에 노무사가 참여한 가운데 현장실사를 거치도록 한 것이다. 또 소위원회 역시 노무사를 반드시 포함해야 하며 최소 5인 이상으로 구성되야 한다고 덧붙였다. 지난 6월 권익위가 교육부에 기존의 지침 완화에 대한 개선을 이미 권고했음에도 바로잡지 않다가, 홍 군의 사고 이후에야 슬그머니 고쳐놓은 모양새다.
학생들의 일터를 미리 점검하는 현장실사 시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2019년 1월 교육부는 사전에만 가능하도록 한 현장실사를 현장실습이 시작된 이후이거나 중간에 하는 것도 가능하도록 완화했는데, 이 또한 이번에 사전 점검으로 돌려놓았다. 학생들이 점검 없이 현장에 나갔을 때 닥칠 수 있는 위험성을 뒤늦게 인지한 셈이다.
교유부는 이날 브리핑에서 “실습기업의 기준이 낮아짐에 따라 홍 군이 1인 기업에서 현장실습을 하게 되며 사고가 발생했고, 이 부분에 대해 저희들도 책임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며 “그래서 앞으로는 참여기업도 사전 점검하는 과정을 엄밀히 하자는 내용을 개선안에 포함시킨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홍 군의 유족을 포함한 직업계고 현장실습 피해자 가족모임과 현장실습 폐지·직업계고 교육정상화 추진위원회 소속 단체 90곳은 24일 성명서를 내고 “현장실습 도중 학생들이 목숨을 잃는 비극이 숱하게 반복되고 그때마다 정부가 개선안을 내놓았지만 ‘사고 발생→제도 강화→제도 완화→사고 발생’이 무반 반복되고 있다”고 규탄했다. 이날 오후 특성화고등학생권리연합회와 전국특성화고노동조합도 전태일 기념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기업 현장 실사에 노동부가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등 노동부의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는 요구가 반영된 것은 긍정적”이라면서도 “사후 대처 중심의 관리가 아니라 사전 예방이 될 수 있는 구체적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김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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