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여름입니다. 그녀 얼굴만 봐도 가슴이 뛰고 얼굴이 화끈거릴 때입니다. 용인에 있는 놀이공원에 함께 놀러갔습니다. 나는 과민성대장증세가 심했습니다. 배가 아픈데도 화장실 가야겠다는 소리를 못 했습니다. 집에 돌아가는 버스 편을 알아보겠다며 화장실로 달려갔습니다. 그녀가 그 자리에 있지 않고 나를 찾으러 정류장 쪽으로 이동한 게 화근이었습니다. 길이 엇갈려 한시간 이상 헤매다 각자 집에 돌아갔습니다. 당시는 휴대전화가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녀와 결혼하게 될 줄 그땐 미처 몰랐습니다.
1991년 결혼 3년차 추석 귀향길이었지요. 고속버스에 탔습니다. 차가 휴게소에 들어가고 나는 화장실에 갔습니다. 도중에 차를 세우면 안 된다는 부담 때문에 용변을 보고 일어섰다, 앉기를 반복했습니다. 시간이 그렇게 흐른 줄 몰랐습니다.
화장실에서 돌아왔는데 차가 온데간데 없었습니다. 아내가 아들을 둘러업고 휴게소 한 모퉁이에 덩그러니 서 있습니다. 아내의 눈빛이 지금도 잊히지 않습니다. 나를 향한 분노와 고속버스 승객들에 대한 원망이 뒤엉킨 망연자실. 자초지종은 이렇습니다. 내가 돌아오지 않자 운전기사가 아내를 채근하기 시작했고, 승객들까지 수군거리는 사태에 이르렀습니다. 빨리 남편 찾아 오라는 성화를 못 이기고 차에서 내린 것입니다. 당시만 해도 명절엔 서울에서 전주까지 15시간 가까이 걸렸으니 승객들 짜증이 이만저만 아니었겠지요. 나도 아내에게 그냥 버티고 있어야지 내리면 어떡하느냐고 했지만, 버스는 떠난 뒤였습니다.
2021년 33년차 부부가 됐습니다. 나는 외출할 때마다 화장실을 서너번 들락거립니다. 그래도 아내는 재촉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아이고 똥도 잘 싸지. 도대체 못하는 게 뭐야? 어디서 저런 사람이 났을꼬.”
아주 오래전에 듣던 말입니다.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어렸을 적 엄마가 그랬습니다. 똥만 잘 눠도 칭찬해주셨지요. 돌아가시기 몇개월 전, 그러니까 내가 초등학교 2학년 여름. 집에 오다가 나는 옷에 똥을 싸고 말았습니다. 반바지 밖으로 똥이 흘러나와 다리가 온통 똥 범벅이었지요. 엄마는 마당 평상에 앉아 계셨습니다. 나는 부끄럽기도 하고, 엄마에게 혼날 일이 걱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엄마가 그랬습니다. “원국아, 어디서 그렇게 흙을 묻히고 왔어. 어서 가 씻어.” 그때만 해도 나는 엄마가 정말 모르는 줄 알았습니다. 모른 체해줬다는 걸 모르고요.
아내가 엄마와 같이 나를 받아주기까지 30년 넘는 세월이 걸린 셈입니다. 지금은 아내와 함께하는 게 그렇게 편안합니다. 글을 쓰면 아내에게 가장 먼저 보여줍니다. 늘 아내가 나의 첫 독자입니다. 글뿐 아니라 말도 그렇습니다. 나는 방송에 나가기 전 아내에게 먼저 말해봅니다.
직장 다닐 적엔 내 글을 쓰거나 내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직장에서 요구하는 말을 하고 글을 썼지요. 직장을 나와 비로소 내 말을 하고 내 글을 씁니다. 그러기 위해 수시로 메모합니다. 메모 내용은 크게 다섯가지입니다. 첫째, 지식과 정보, 둘째, 의견, 셋째, 감상, 넷째, 일화, 다섯째, 본 것과 들은 것입니다.
지식과 정보는 독서와 학습을 통해 얻습니다. 새롭게 알게 된 게 있으면 가장 먼저 아내에게 말해봅니다. “책 읽다 보니 이런 게 있던데, 당신 알아?” 아내에게 아는 체하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이런 재미가 없다면 왜 책을 읽고 공부하겠는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의견은 주로 아내와 산책하며 만들어집니다. 이런저런 생각을 말하다 보면 새로운 생각이 나기도 하고 생각이 정리됩니다. 그러면 멈춰 서서 메모합니다. 차에서는 운전하는 나 대신 아내가 ‘그것 메모해줄까?’ 하고 묻습니다.
감상을 말해야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함께 외식하고 나면 아내가 묻습니다. “식사 어땠어?” 이때 나는 셋 중 하나로 답합니다. ‘좋다, 나쁘다’ 등 느낌과 기분을 말하거나 ‘맛있다, 없다’ 등 소감을 말합니다.
일화야말로 말과 글을 재밌게 만드는 주요 소재입니다. 어릴 적 기억이나 학창, 직장 시절 겪은 일이 떠오르면 아내에게 이런 일이 있었고, 그 일을 겪으면서 무엇을 배웠고, 그 일이 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말합니다. 말해보면 기억에 살이 붙고 아내 반응을 통해 경험의 옥석을 가려낼 수 있습니다.
본 것과 들은 것도 말과 글의 단골 메뉴입니다. 나는 언제부턴가 아내에게 말하기 위해 유심히 봅니다. 세심하게 듣습니다. 무언가를 보다가, 누군가의 얘기를 듣다가, 이것은 아내에게 얘기해야지 하며 머릿속으로 메모합니다. 어쩌다 신기한 광경을 보거나 재밌는 얘기를 들으면 아내를 만나는 시간이 기다려집니다.
말 잘하고 글 잘 쓰는 사람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말해볼 기회가 상대적으로 많고, 자주 글을 씁니다. 그러기 위해 들어주고 읽어줄 사람이 필요합니다. 아내와도 처음엔 쉽지 않았습니다. 서먹하고 낯설기까지 했지요. 그렇게 부딪치고 갈등하다 이젠 돌아와 엄마와 같은 말동무, 글동무가 됐습니다. 당신 곁에 그런 사람이 있나요?
강원국 <대통령의 글쓰기>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