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고려대 다양성 사진전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한 양재호씨의 작품 ‘우리의 생각’. 고려대 제공
지난해 국내 체류 외국인이 100만명을 넘어서면서 한국이 다문화·다인종 국가로 빠르게 변하고 있다. 현재 인구 100명당 2명이 외국인이다. 지난해 출생아 100명 중 6명은 다문화 가정 자녀로 전체 출생에서 다문화 출생이 차지하는 비중이 역대 최대치를 기록한 바 있다.
외국에서는 다양성 실천을 향한 잰걸음이 한창이다. 할리우드 아카데미 시상식(오스카)은 지난해 9월 작품상 수상 자격에 다양성 조항을 추가했다. ‘포천 500’ 기업 중 39%가 회사 내 다양성 업무 전담 임원을 두고 있다. 하버드, 스탠퍼드 등 유수 대학은 오래전부터 다양성 전담 기구를 설치해 학내 다양성을 살피고 있다.
국내에서도 ‘다양성’이 시민사회의 화두로 떠오른 가운데, 고려대학교가 국내 사립대학 최초로 총장 직속 자문기구로 다양성위원회를 출범시킨 지 올해로 3년째를 맞이해 그간의 성과가 눈길을 끌고 있다.
고려대 다양성위원회가 2019년 출범하고 가장 먼저 착수한 일은 고려대 안의 다양성을 진단하는 일이었다. 고려대의 인적 구성과 제도·문화적 환경, 전체 구성원의 다양성에 대한 의식조사를 바탕으로 ‘고려대 다양성 지수’를 개발했다. 고려대 다양성 지수는 고려대의 인적 구성이 얼마나 생태학적으로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는지와 구성원들이 고려대라는 조직 안에서 다양성을 얼마나 체감하는지를 보여주는 숫자다. 2019년 조사에서는 생태학적 다양성은 교수 집단이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났고, 다양성 체감지수는 직원 집단이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다양성 지수 개발은 국내외 대학에서 선례를 찾기 어려운 일로, 고려대는 격년마다 조사를 벌여 다양성의 증감 추세를 추적 조사할 계획이다.
고려대는 ‘2019년 다양성 의식 조사’에서 다양성 강의와 프로그램이 부족하다는 학부생들의 평가를 반영해 ‘다양성과 미래사회’라는 과목을 개설했다. 이 교양과목은 내용과 형식 면에서 모두 다양성을 실현시키기 위해 정교하게 고안된 프로그램이다. 강의는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성을 이야기해줄 수 있는 전문가들이 릴레이 특강을 벌인다. 과학자, 사회심리학자, 디자이너, 광고 크리에이터 등이 자신의 분야에서의 다양성에 대한 고민을 들려준다. 수강생들은 4~5명씩 조별 활동과 토론 활동을 통해 주변의 다양성 문제를 분석하고, 해결책을 찾고, 나아가 실천까지 하도록 하는 과제를 수행한다. 외국인 학생들에 대한 처우부터 장애학생, 채식주의, 동성애, 환경 문제 등이 두루 다루어졌다.
김채연 다양성위원회 위원장은 “2020년에 첫 강좌를 연 뒤 수강생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벌였는데, 수강생들의 대부분이 수강 전후로 자신의 다양성 수용도가 높아졌다고 답했을 뿐만 아니라 수강생의 90% 이상이 다른 학생들에게도 이 수업을 추천하겠다고 답변을 했다”며 “학생들의 좋은 반응에 힘입어 올해부터는 매 학기 2강좌씩 개설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비교과 활동으로는 ‘체인지메이커’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이는 고려대 안에 다양성을 증진시키기 위한 아이디어를 내고 실천까지 이어내는 학생들의 자발적인 참여 프로그램이다. 지난해에는 고려대생 설문조사에서 70~80%의 학생이 비슷한 꿈(진로계획)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착안해 학생들의 다양한 꿈을 존중하고 응원한다는 의미를 담은 옷 ‘드림웨어’를 제작·배포·판매하는 활동을 벌였다. 올해는 다양성을 고민해볼 수 있는 ‘보드게임’과 영상을 제작하고 다양성에 대한 인터뷰와 설문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매주 1~2회 만나는 체인지메이커 활동에 적극 참여하고 있는 김경민(경영학과 4학년)씨는 “학내 장애학생지원센터와 의료봉사 등을 하면서 우리 사회에 만연한 차별을 개선하고 다양성이라는 가치를 사회 전체에 구현하는 데 힘을 보태고 싶어서 이 활동에 지원하게 됐다”며 “활동을 통해서 다양성이라는 가치와 관련해 내가 어떤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는지 고민해볼 수 있었고, 또 다른 학우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도 알 수 있었고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을 어떻게 돌파구를 찾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고민해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허동연(정부행정학부 1학년)씨는 “내 주변을 바꾸는 일이다 보니 굉장히 큰 의미와 자부심을 느끼고, 활동이 끝나고 나면 많이 성장했다는 느낌을 갖게 될 것 같다”며 “미래에 법조인이 되고 싶은 꿈이 있는데, 나중에 법조인이 됐을 때 이 활동이 중요한 바탕이 되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체인지메이커가 지난해 벌인 ‘드림웨어’ 캠페인. 고려대 제공
다양성위원회는 매년 다양성과 관련된 교육적·정책적 제언을 담은 ‘다양성보고서’를 발간할 뿐만 아니라 매달 <디베르시타스>라는 소책자도 발간한다. ‘다양성’을 뜻하는 라틴어인 <디베르시타스>에는 기업, 역사, 과학기술, 미디어 등 각계의 전문가들이 다양성을 주제로 글을 쓴다. 주로 교내 구성원들에게 인쇄본과 전자본으로 배포되어온 <디베르시타스>의 글들을 일반 시민들도 접할 수 있도록 <다름과 어울림>(동아시아 펴냄)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엮어 이달 초에 출간하기도 했다. 최재천 교수 등이 추천하는 이 책은 다름이 어울림이 될 때 우리의 일상이 좀 더 행복해질 수 있다고 말한다.
올해를 분기점으로 다양성위원회는 대학을 넘어 한국 사회 전체로 다양성 가치를 확산시킨다는 계획이다. ‘대한민국 다양성 고등교육의 표준’이 될 수 있도록 선도적으로 다양성 교육의 방향을 제시하고 다양성 교육 체계를 마련하고자 한다. 예를 들어, ‘다양성과 미래 사회’의 강의 교안 등 매뉴얼 작성을 통해 다른 교육기관에서도 활용할 수 있도록 준비 중이다. 또 다양성위원회의 여러 활동과 성과를 유튜브의 ‘다양성위원회’ 공식 채널을 통해 공유함으로써 누구나 활용할 수 있게 하고 있다.
김아리 객원기자
ar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