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 무심하게 사용하는 차별·혐오 표현에 대해 알아보고 대안 언어를 제시함으로써 각종 미디어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혐오 표현에 일상적으로 노출된 청소년들에게 언어감수성을 높여주는 기획기사를 마련했습니다. 8월17일자 기준으로 4주에 한 번 연재합니다.
우리가 친근한 표현이라고 생각하는 게 누군가에겐 차별적 표현으로 들리기도 한다. 모델 한현민씨는 ‘흑형’을 듣기 거북한 말로 꼽았다. <한겨레> 자료사진
1955년 미국 앨라배마주 몽고메리. 버스 안에 ‘흑인석’과 ‘백인석’이 분리되어 있던 시절, 백인석이 꽉 차면 흑인석은 백인에게 내주는 게 당연한 법이었다. 한데 이에 저항하는 이가 등장한다. 그의 이름은 로자 파크스. 그의 행동이 도화선이 되어 그해 몽고메리 지역에선 인종분리법에 항의하는 ‘몽고메리 버스 안 타기 운동’이 일어난다.
인종에 따라 버스에 누군가 앉을 수 있는 자리와 그렇지 않은 자리가 나뉘어 있었다니, 지금 생각하면 기가 막혀 혀를 끌끌 찰 일이다. 그렇긴 한데 지금 시대에도 인종차별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다. 때론 우리도 모르는 새 인종차별의 가해자가 되기도 한다.
많은 이들이 중국 음식을 주문할 때 ‘짱깨’라는 말을 쓴다. “일상에서 많이 쓰니까 우스갯소리인 줄 알았어요.” 이렇게 말하는 이들도 있지만, 이는 ‘짜장면’을 속되게 이르는 중국인 비하 표현이다. 비슷한 방식으로 일본인을 비하하는 의미의 표현도 많이 쓴다. ‘쪽발이’가 대표적이다. ‘한 발만 달린 물건’이란 뜻을 가진 이 말은 일본 사람들이 엄지발가락과 나머지 발가락을 가르는 ‘게다’를 신는 데서 연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엔 베트남 이주노동자를 향해 ‘똥남아’라고 부르는 이들도 있다.
내 입장에선 친근함을 드러내려 쓴 것이지만 상대에겐 불편함을 줄 수 있는 인종차별 표현도 있다. ‘흑형’이 그 경우다. 이는 ‘흑인 형’의 줄임말로, 흑인이 운동을 잘하고 음악적 재능도 뛰어나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친근함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데 왜 문제가 되냐고 할 수 있지만, 듣는 편에서 불편하다면 차별이다. 한 예로 모델 한현민씨는 한국에서 살아가며 듣기 거북한 말로 ‘흑형’을 꼽은 바 있다. 생각해보면 ‘백형’ ‘황형’이라는 말은 쓰지 않으면서 왜 흑인의 피부색만을 강조해 ‘흑형’이란 말을 쓰는지도 의문이다.
누군가의 피부색이나 인종, 혈통 등에 대한 정보를 꼭 밝힐 필요가 없음에도 굳이 언급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혼혈’은 인종이 서로 다른 혈통이 섞였다는 뜻이지만 상대적으로 다른 계통과 섞이지 않은, 유전적으로 순수한 계통이나 품종, 또는 타 집단 출신이 아닌 사람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른바 ‘순종주의’적 표현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공공영역의 차별 표현 및 대체어 목록’을 통해 “특히 아이가 아닌 성인임에도 ‘혼혈’에 ‘아이’를 뜻하는 ‘아’(兒) 자를 붙여 ‘혼혈아’로 부르는 것은 이중적 비하의 의미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불가피하게 인종, 혈통 정보를 드러내야 한다면 ‘한국인 아버지와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등으로 쓰면 될 일이다. ‘유색인종’ 역시 피부색을 기준으로 삼아 백인 이외 인종을 비하하는 표현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사용을 자제하는 것이 좋다.
과거 황인종의 피부색을 뜻하는 의미로 써왔던 ‘살색’을 요즘 ‘살구색’으로 바꿔 쓰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살갗의 색깔’이란 의미로 쓰일 경우에는 차별적 표현이 아니지만 황인종의 피부색을 말할 때 ‘살색’이라고 하면 다른 인종의 피부색은 인정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차별이 될 수 있다. 이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일면서 한국기술표준원은 ‘살색’이라는 표준 관용색 이름을 ‘살구색’으로 바꾸기도 했다.
‘그런 말이 뭐 그렇게까지 기분이 나쁘지?’ 이런 생각이 든다면, 외국의 스포츠 경기 등에서 이른바 ‘눈 찢기’ 제스처로 동양인을 비하하는 외국 선수들의 모습과 코로나19 이후 더욱 극심해진 아시아인 혐오 관련 뉴스를 떠올려보자. ‘짱깨’ ‘흑형’ 등이 왜 불편한 표현인지 고개가 끄덕여질 것이다.
김청연 기자
carax3@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