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ㅣ강원국의 ‘공부하면 뭐 하니’
흔히들 똑소리 난다고 하죠? 나는 살아오면서 그런 소리를 듣지 못했습니다. 말투가 어눌할 뿐 아니라 순발력도 없습니다. 그다지 머리가 좋은 편도 아닙니다. 그런데 도대체 똑똑하다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국어사전을 찾아보니 ‘사리에 밝고 총명하다’고 되어 있네요. 저는 이에 더해 분별력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옳은 것과 그른 것, 아름다운 것과 추한 것, 해야 할 일(말)과 하지 말아야 할 일(말)을 구분하고 판단할 수 있는 힘이 똑똑함 아닐까요? 한자어로는 현명(賢明)하다고 하지요. 지혜가 있다고도 하고요. 교육은 모름지기 이런 사람을 길러내는 과정이어야 하지 않는가. 과연 학교는 이런 사람을 키워내고 있는가. 혹여 아는 것은 많은데 판단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헛똑똑이를 길러내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똑똑하기 위해서는 어떤 역량을 갖춰야 할까요. 우선, 질문할 줄 알아야 합니다. 나이를 먹으면서 새록새록 절감하는 게 질문의 어려움입니다. 상사는, 리더는, 어른은 질문할 줄 알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혹은 놓치고 있는 것을 짚어서 물어야 합니다. 상대가 모르는 것을, 궁금해하는 것을 묻고 답해줘야 합니다. 물어야 상대가 무엇을 모르는지 알 수 있습니다. 물어야 상대가 다른 방향으로 생각할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게 합니다. 그게 윗사람이 할 일이고, 그 사람의 실력입니다. 세상은 자신이 알고 싶어 하는 것을 알려주는 사람을 똑똑하고 지혜롭다고 합니다.
지식과 정보에 어두워서도 안 됩니다. 그러려면 공부해야 합니다. 독서하고 학습해야 합니다. ‘맨땅에 헤딩’은 힘만 들고 머리만 아픕니다. 입력이 있어야 합니다. 책 읽고 강의 듣는 것만이 능사는 아닙니다. 견문을 넓힐 필요가 있습니다. 보고 들은 게 많아야 하지요. 남의 것을 보고 듣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스스로 겪어봐야죠. 경험이 많아야 합니다. 시도하고 도전해야 합니다. 그래야 지식과 정보가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집니다.
돌이켜보면 나는 남의 얘기만 하며 살았습니다. 누가 이렇게 말하더라고, 누구 책에 이렇게 쓰여 있더라고, 내가 누구 안다고. 남 얘기 하는 것을 즐겼습니다. 일이 잘못됐을 때도 남 탓하기에 바빴지요. 내가 나로 살지 않았습니다. 나이 쉰살이 넘어서는 내 얘기를 하자고 마음먹었습니다. 그 후 8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남 얘기의 비중이 높네요. 하지만 조금씩 내 얘기가 늘어가고 있습니다. 내 얘기는 무언가를 시도하고 도전하며 만들어집니다. 내 얘기를 만들기 위해 저는 나름의 원칙을 세웠습니다. 첫째, 해야 하는 일을 피하지 말자. 둘째, 당면한 일, 할 수 있는 일부터 하나씩 쳐내자. 셋째, 너무 잘하려고 하지 말자. 할 수 있는 만큼 하자. 넷째, 결과에 연연하지 말고 다음을 기약하자.
아는 것, 보고 들은 것, 겪은 것을 연결하고 결합하고 융합해서 만들어야 할 게 있습니다. 바로 생각과 의견, 감상과 느낌입니다. 어떤 사안이건 자기만의 생각과 의견, 감상과 느낌이 있어야 합니다. 이게 가능하기 위해서는 사색이 필요합니다. 늘 사유하고 성찰해야 합니다. 누군가 ‘이것에 관한 당신 생각이 무엇이오’ 물으면 어떻게 대답할 것인지 준비하고, 또 남들은 그것에 관해 어떤 생각과 느낌을 갖고 있는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어려운 시험을 통과하고 높은 자리에 오른 사람, 돈을 많이 벌어 능력자라는 소리를 듣는 분 가운데 사리에 맞지 않게 행동하고 비상식적인 말을 내뱉는 것을 종종 봅니다. 사색이 부족한 탓입니다. 사고방식이라고 하죠? 어떤 문제에 대하여 생각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는 것이고, 자신을 향한 사색, 즉 성찰이 없는 것이고, 세상을 향한 사유의 창을 닫고 사는 것입니다. 똑똑한 사람이라고 할 수 없지요.
이쯤에서 한 가지 의문이 듭니다. 굳이 똑똑해야 할까? 똑똑한 사람으로 가득 차면 우리 사회가 더 나아질까. 사람들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똑똑한 사람보다 좋은 사람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좋은 사람일까. 똑똑하진 않지만 친절하고 착한 사람입니다. 어렵고 힘든 사람을 보면 측은지심이 발동하는 사람, 공동체의 지속과 발전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 불의를 보면 분노하는 사람. 불합리한 것을 개선하는 일에 앞장서 나서는 사람.
무슨 일인지 세상은 좋은 사람보다 똑똑한 사람을 더 인정해줍니다. 출세하기 위해서는 좋은 사람일 필요는 없는 것이죠. 좋은 사람이어서 도리어 출세에 지장을 받는 경우까지 있습니다. 그런 사람에게 우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만 좋아가지고…. 쯧쯧’ ‘사람이 좀 약게 살아도 될 텐데…’ 하고요. 지금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많은 문제는 바로 좋은 사람을 인정하고 대접하지 않는 데서 비롯되지 않았을까요? 그래서 묻지 않을 수 없네요. 과연 지금 우리 교육은 좋은 사람을 길러내고 있나요?
강원국 ㅣ <대통령의 글쓰기> 저자
똑똑하기 위해서는 어떤 역량을 갖춰야 할까. 우선, 질문할 줄 알아야 한다. 다른 사람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혹은 놓치고 있는 것을 짚어서 물어야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강원국 <대통령의 글쓰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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