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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잘 들으면 얻을 수 있는 것들

등록 2021-08-02 17:49수정 2021-08-03 02:34

연재ㅣ강원국의 ‘공부하면 뭐 하니’

나는 말을 잘 듣는 사람입니다. 잘 듣는다는 의미는 두 가지입니다. 말귀가 밝다는 것이 그 하나입니다. 남의 말을 귀담아듣고 그 의미를 잘 이해합니다. 다른 하나는 시키는 일을 잘한다는 뜻입니다. 혼나지 않으려고, 인정받기 위해 열심히 합니다.

말을 잘 들으면 얻는 게 많습니다. 무엇보다 세상살이가 편합니다. 세상은 순응하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말을 잘 알아듣고 어떻게든 거기에 맞추려고 노력하는 사람을 싫어할 이유가 없지요. 부모님이 학교 가는 아이에게 습관적으로 하는 말이 있습니다.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여기에도 두 가지 의미가 담겨 있지요. 수업시간에 공부 열심히 하란 뜻도 있고, 말썽 피우지 말라는 의미도 있지요. 어쩌면 학교는 말 잘 듣는 사람을 길러내는 곳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말을 잘 들으면 얻는 게 많다. 무엇보다 세상살이가 편하다. 지식과 정보를 얻을 수 있고 평가 능력도 생긴다. 남의 말은 내 생각을 만들어내고 ‘잘 들을수록’ 요약 능력도 키울 수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말을 잘 들으면 얻는 게 많다. 무엇보다 세상살이가 편하다. 지식과 정보를 얻을 수 있고 평가 능력도 생긴다. 남의 말은 내 생각을 만들어내고 ‘잘 들을수록’ 요약 능력도 키울 수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말을 잘 들으면 지식과 정보도 얻습니다. 선생님 말씀을 들으면서, 친구나 가족과 대화하면서 많은 것을 알게 됩니다. 이 같은 사실은 직장생활 하면서 더 분명히 깨닫게 됐습니다. 상사가 잘 알려주는 사람이 일을 잘한다는 사실을요. 누군가 잘 알려주는 사람이 있고, 알 수 있는 위치에 있어야 일을 잘할 수 있습니다. 아는 만큼 잘합니다. 잘 알려주면 일도 잘할 뿐 아니라 자신이 인정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알려주는 사람이나 조직이 고맙습니다. 조직에 충성(?)하는, 말을 잘 듣는 사람이 됩니다. 그런 사람에게 조직은 더 많이 알려줍니다.

남의 말을 잘 들으면 평가 능력도 생깁니다. 우리는 누군가의 말을 그냥 듣지 않습니다. 비판적으로 듣지요. 학교 다닐 적 우리 모두 그랬습니다. ‘저 선생님은 실력이 있어’ ‘담임선생님은 우리들에게 별 관심이 없어’ 이렇게 평가하며 들었지요. 친구들끼리 모여 이런 판단을 맞춰보면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직장생활을 해보니 남의 말을 평가하는 역량은 중요합니다. 남의 말을 들을 때 네 단계를 거칩니다. 그리고 네 가지 역량이 필요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이해력), ‘결론이 이것이지?’(분석력), ‘왜 그렇게 생각해?’(비판력), ‘내 생각은 이래’(창의력). 이런 이해력, 분석력, 비판력, 창의력을 아울러 평가 역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역량은 사회생활하는 데, 남과 더불어 살아가는 데 필수적입니다. 보고를 받고, 누군가와 대화하고, 함께 논의할 때 반드시 필요합니다.

남의 말은 내 생각도 만들어냅니다. 나는 강의 듣는 것을 즐깁니다. 다른 사람의 강의를 듣다 보면 내 생각이 나고 기억도 떠오릅니다. 내 의견이 만들어집니다. 학교 다닐 적에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선생님 말씀을 들으면서 ‘저건 아닌 것 같은데?’ ‘저렇게 말씀하셔도 되나?’ 이러면서 내 생각을 길어 올렸습니다. 친구 얘기를 들을 때도 내 생각이 자꾸 나서 도중에 끼어드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끝으로, 잘 들으면 요약 능력을 키울 수 있습니다. 나는 요약 능력으로 회장의 연설문을 쓰고, 대통령 연설문을 쓸 수 있었습니다. 요약 능력에도 수준이 있습니다. 영화에 빗대어 얘기하면 이렇습니다. 영화를 보고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말하는 것은 중요한 것에 밑줄을 긋는 발췌 요약입니다. 1시간 반짜리 영화를 1분 동안 말하는 것은 줄거리 요약입니다. 이 영화는 ‘한마디로 이런 영화다’라고 규정하는 요약도 있지요. 나아가 영화감독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말할 수도 있습니다. 이 모두가 요약입니다.

글을 본격적으로 쓰면서 신문 칼럼으로 요약 훈련을 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칼럼니스트의 칼럼을 서른 편 출력해서 세 번씩 읽었습니다. 처음 읽을 때는 각 칼럼의 가장 핵심적인 한 문장에 밑줄을 그었습니다. 두 번째는 칼럼을 세 줄 이내로 압축했습니다. 줄거리 요약이지요. 세 번째 읽고 나선 칼럼니스트가 얘기하고자 하는 주제문을 써봤습니다. 주제문은 셋 중 하나였습니다. ‘사실이 이렇다’ 아니면 ‘내 의견이 이렇다’ 그리고 ‘이런 걸 하자’였습니다.

요약 능력에도 수준이 있습니다. 가장 낮은 수준은 압축하는 것이고, 그다음은 맥락을 읽는 것이고, 끝으로 배경을 파악하는 것입니다. 대통령의 말을 한 시간 듣고, 들은 내용을 15분짜리 연설문으로 쓰는 게 압축이고, 대통령 말의 빈칸을 채우는 게 맥락 읽기이며, 대통령이 그 말을 하고 싶은 이유나 취지, 의도를 손에 쥐는 게 배경 파악입니다. 여기까지 들을 수 있어야 온전히 들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듣기로 얻을 수 있는 게 많지요? 하지만 여기서 그치면 안 됩니다. 잘 듣는 것은 잘 말하기 위해서입니다. 입력은 출력을 위한 것이고, 먹으면 싸야 하지요. 그래야 신진대사가 원활하게 이루어집니다. 잘 들었으면 자기 말을 합시다. 저도 쉰 살 넘어서는 말하며 삽니다.

강원국 <대통령의 글쓰기> 저자

강원국 <대통령의 글쓰기> 저자.
강원국 <대통령의 글쓰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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