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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타인을 지나치게 의식할 때 ‘타인은 지옥’

등록 2021-07-05 18:17수정 2021-07-06 02:33

연재ㅣ강원국의 ‘공부하면 뭐 하니’
사회생활을 하면서 세가지 때문에 힘들었습니다. 바로 글쓰기, 말하기, 관계 맺기입니다. 이 세가지가 직장생활의 전부였습니다. 우리의 삶 전체가 그렇지 않은가 싶기도 합니다. 하루 종일 무언가를 읽고 쓰고 말하고 들으면서 관계를 맺어가지요.

내가 학교 다닐 적만 해도 글쓰기, 말하기, 관계 맺기를 배우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글쓰기와 말하기는 알게 모르게 한 셈이네요. 선생님 말씀을 받아 적고, 일기를 비롯해 글쓰기 숙제도 있었습니다. 수업 시간에 발표도 해야 했으니 말하기 역시 전혀 배우지 않은 건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관계입니다. 국민윤리 시간에 예절 교육을 받은 게 전부였습니다. 관계 맺기는 학교생활을 통해 자연스럽게 익히도록 방치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성적을 놓고 벌이는 경쟁 관계만 익숙하게 되었지요. 공부 잘하는 친구들과 잘 지내고, 선생님의 권위에 복종하고, 무리에서 왕따 당하지 않는 법을 익혔습니다.

여러 경험을 통해 좋은 관계를 만드는 법을 알게 됐다. 바로 잘 알려주고 잘 들어주는 것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여러 경험을 통해 좋은 관계를 만드는 법을 알게 됐다. 바로 잘 알려주고 잘 들어주는 것이다. 게티이미지뱅크

말하기와 쓰기가 힘든 이유도 관계 때문입니다. 말하고 쓰는 일은 내 말을 듣고 내 글을 읽는 상대가 있거든요. 말하고 쓰는 이유 역시 내 말을 듣고 내 글을 읽는 누군가와 친해지거나 누군가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이지요. 다시 말해 좋은 관계를 위해서입니다.

미국 하버드대 의대는 1938년부터 75년간 남성 724명의 삶을 추적한 결과, 행복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인간관계였다고 밝혔습니다. 가족이나 친구, 직장 동료와의 사회적 연결이 긴밀할수록 더 행복하고, 몸이나 뇌가 건강하며, 오래 산다는 것입니다.

나 역시 직장생활 하면서 관계로 인해 행복하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먼저 내 말을 잘 들어주는 상사를 만났을 때입니다. 시간을 내서 내 말을 들어주고, 칭찬해주고, 내 말의 빈틈을 채워주고, 내가 말한 것을 해볼 수 있는 기회를 주고, 그것이 잘못됐을 때 책임을 져주고, 잘됐을 때 공을 나눠줬습니다. 나는 그 품 안에서 마음껏 말하고 뜻을 펼쳤습니다. 내게 잘 알려주는 상사를 만났을 때도 행복했습니다. 불안하거나 답답하지 않았습니다. 알려준 만큼 일을 잘할 수 있었습니다. 알려주는 게 고마웠고, 잘해냄으로써 보답하고 싶었습니다.

나는 이런 경험을 통해 좋은 관계를 만드는 법을 알게 됐습니다. 바로 잘 알려주고 잘 들어주는 것입니다. 직장 다닐 적엔 젊은 직원들에게 내 속내까지 다 알려주려고 노력했습니다. 나와 직원들의 아는 정도와 수준이 비슷해지기를 바랐습니다. 아들에게도 내 생각을 있는 그대로 전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런데 그런 노력이 좋은 결과만 낳진 않더군요. 때로는 잔소리꾼, 꼰대로 취급당하기도 했습니다. 아들이 고등학교 3학년일 때 매일같이 머리맡에 응원하는 쪽지를 써놓고 출근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아들에게 쪽지에 관해 얘기했더니 ‘아침부터 잔소리가 짜증 났다’고 하더군요. 알려주는 것뿐 아니라 들어주는 일도 쉽지 않습니다. 얼마든지 들어줄 용의가 있지만 아들이 말을 잘하지 않습니다. 내가 먼저 묻는 것으로 대화를 시도하지만 늘 짧은 답만 돌아올 뿐이고요. 말해주고 들어주는 대화가 관계를 만드는 기본인데, 아빠와 아들 모두 이런 소통 역량이 부족한 것이지요.

관계로 행복했던 기억보다는 힘들었던 적이 더 많습니다. 나뿐 아니라 대다수 직장인이 일보다는 관계로 인해 더 힘들어하고 있지요. 어느 조사를 봐도 과도한 업무량이나 성과에 대한 압박보다는 상사·동료와의 관계나 고객·거래처의 ‘갑질’로 인해 더 큰 스트레스를 받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관계가 좋으면 일로 인해 받는 스트레스는 견뎌낼 만합니다. 하지만 관계가 나빠 받는 스트레스는 참기 힘들죠. 어디 직장인뿐인가요? 부부간, 부모자식 간 모든 관계가 어렵습니다.

나는 스트레스에 취약합니다. 대개의 스트레스는 관계로 인해 받았지요. 그래서 나만의 관계 원칙을 세웠습니다. 그 하나는, 남을 과도하게 의식하지 않는 것입니다. 나는 눈치를 심하게 봤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남들은 그다지 내게 관심이 없더라고요. 이런 사실을 글을 쓰면서 알았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써도 읽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생각했지요. 적어도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관심이 있진 않구나 하고요. 다른 사람의 시선을 과도하게 의식할 때 ‘타인은 지옥’이 됩니다.

남들의 평가와 지적에 무뎌질 필요도 있습니다. 나는 의식적으로 ‘얻다 대고’ ‘어쩔 수 없지’를 되뇝니다. 나는 나답게 삽니다. 내가 그렇게 산다는데 ‘얻다 대고’ 지적을 하느냐는 것이죠. 또 기대한 결과가 나오지 않아 남들의 평가가 좋지 않을 때도 내 실력과 노력이 그 정도여서 그런 걸 ‘어쩔 수 없지’ 하며 훌훌 털어버리려고 합니다.

남과 비교하지 않는 것도 중요합니다. 관계를 망치는 모든 것은 비교에서 비롯하지 않나 싶습니다. 시기, 질투, 비난, 자기비하, 열등감, 모욕감 등. 이 모두 남을 이기려는 경쟁심 때문에 일어나는 감정이지요. 그런데 누구도 자기를 이기려 드는 사람을 좋아할 리 없습니다. 당연히 관계가 좋을 수 없지요. 방법은 남들이 무엇을 하건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잘하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남들과 한 줄에 서서 경쟁하려 하지 않는 것입니다. 다르면 비교도 경쟁도 있을 수 없지요.

이 밖에도 나는 모두와 잘 지내려고 하지 않습니다. 좋은 사람과 잘 지내기에도 시간이 부족합니다. 또한 남에게 큰 기대를 하지 않습니다. 가까운 관계일수록 더 그렇습니다. 간섭이나 참견도 자제합니다. 선을 지키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합니다.

내년이면 나이 예순입니다. 그래도 관계는 어렵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아니 노력하면 할수록 풀기 어려운 숙제입니다. 어릴 적부터 관계 맺기 공부와 연습을 해야 합니다.

강원국 <대통령의 글쓰기> 저자

강원국 &lt;대통령의 글쓰기&gt; 저자.
강원국 <대통령의 글쓰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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