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경기도 여주에서 아홉살 배기 남자아이가 속옷만 입은 채 찬물이 담긴 욕조에 1시간가량 앉아있다 끝내 숨졌다. 해당 아동을 학대해 숨지게 한 혐의로 12일 구속된 계모 ㄱ(31)씨는 ‘얌전히 있으라’는 말을 듣지 않고 돌아다녀 벌을 주려 했다는 취지로 경찰에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가정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아동학대를 막기 위해선 민법에 명시된 친권자의 징계권 전면 삭제를 통해 ‘때려서라도 가르쳐야 한다’는 인식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3일 굿네이버스·세이브더칠드런·초록우산어린이재단 등 아동단체와 추혜선 정의당 의원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부모에게 징계권을 허용하면서 아동에 대한 폭력을 근절할 수 없다”며 민법의 징계권 조항 삭제를 촉구했다. 민법 제915조를 보면 ‘친권자는 자녀를 보호·교양하기 위해 필요한 징계를 할 수 있다’고 돼 있다. 현행 아동복지법은 부모 등 보호자가 아동에게 신체적·정신적으로 고통을 주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지만, 민법 915조에 따라 ‘훈육’을 이유로 한 가정 내 체벌을 용인하는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정태영 세이브더칠드런 사무총장은 “심각한 아동학대 사건은 아이의 버릇을 고치기 위한 체벌에서 시작된다. 학대는 용납할 수 없지만 체벌은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라며 “체벌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명확한 메시지를 주기 위해 민법에서 징계권이 삭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2018년 아동학대 사례로 판단된 2만4604건 중 1만9748건(80.3%)은 가정 안에서 발생했다. 학대 가해자는 부모가 76.9%로 가장 많았고, 대리 양육자 15.9%·친인척 4.5% 등의 차례였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여한 최서인(13) 아동대표는 “어른들은 ‘아이들은 맞으면서 큰다, 나도 그렇게 컸다, 사랑하니까 때리는 거다’라고 하신다. 맞는 게 두려워서 움직이는 존재가 아니라 무엇이 옳고 그른지 스스로 판단에 따라 움직이는 존재이고 싶다. 맞는다고 더 나은 사람이 되지는 않는다”라고 말했다.
정부는 민법의 징계권 삭제에 대해 소극적 태도를 보여왔다. 지난해 정부는 ‘포용국가 아동정책’을 발표하며, 징계권 범위에서 체벌을 완전히 제외하는 대신 필요한 경우에만 체벌을 허용하는 방향으로 법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아동단체에 따르면 스웨덴·핀란드 등 전세계 56개국은 가정을 포함한 모든 장소에서의 체벌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홍창표 초록우산어린이재단 부회장은 “유럽 국가 중 체벌에 관대한 것으로 알려진 프랑스에선 지난해 체벌금지법이 마련됐으며, 일본에서도 친권자의 자녀 체벌금지를 명시한 아동학대방지법과 아동복지법 개정안이 2019년 6월 국회를 통과해 올해 4월 시행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