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뉴스분석 왜
공소시효에 막힌 반인권 범죄
공소시효에 막힌 반인권 범죄
박정희, 전두환 독재정권 때 경찰과 중앙정보부, 군 보안사에 의해 고문을 당해 간첩으로 조작됐던 사건들이 잇따라 무죄판결을 받고 있다. 그러나 가해자들은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고문 등 가혹행위와 관련해 한명도 처벌받지 않았다. 재일동포 유학생 피해자인 강종건(왼쪽부터)·윤정헌·이종수, 삼척 간첩단 사건의 피해자인 김태룡(왼쪽 넷째), 또다른 일본 관련 간첩 피해자인 최양준(맨 오른쪽)씨가 지난 28일 오후 서울중앙지법 출입구 앞에서 고문 피해를 증언하고 있다. 이날 서울중앙지법에서는 윤정헌씨 재심 법정(2010년)에서 고문 사실을 부인한 보안사 수사관 출신의 고병천씨가 위증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보안사 수사관, 위증혐의 단죄
증언 안 나온 3명은 처벌 제외
10년 안팎 불과한 공소시효 탓
광주항쟁 성폭행범도 기소 못해 고문·강간 등 반인권적 범죄는
국제법상 공소시효 적용 안해
5·18 주모자 처벌 특별법의
‘시효 배제 조항’에 합헌 결정
“국가범죄 처벌은 국민 힘 필요” 지난 28일 오후 서울중앙지법 501호 법정. 방청석에는 윤정헌, 이종수, 강종건씨 등 재일동포 간첩조작 피해자(<한겨레> 5월5일치 ‘보안사 고문 수사관보다 조작 추인한 판검사가 더 밉다’)와 김태룡 삼척 간첩단 조작 피해자 등 고문 피해자 10여명이 자리했다. 기자 10여명도 방청석을 채웠다. 피고인석에는 군 수사기관인 보안사령부(현 기무사령부)의 수사관이었던 고병천(79)씨가 앉았다. 법정에서의 위증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던 고씨는 지난 4월 초 법정 구속됐다. 이날은 그에 대한 1심 선고날이었다. 이성은 판사는 그에게 징역 1년을 선고했다. 위증죄에 대한 법원의 양형 기준(범행 자백 때는 징역 1~10개월)보다 더 센 형량이다. 이 판사는 판결문에서 “피고인이 저지른 행위는 피해자에게 평생 씻어낼 수 없는 고통과 피해를 안긴 만행에 가까운 행위이며 어떠한 경우라도 관행이라고 정당화될 수 없다”고 밝혔다. 1972년부터 1995년까지 보안사 수사과에서 일한 고씨는 민간인, 그중에서도 특히 재일동포 유학생을 간첩으로 ‘만드는’ 일을 주로 했다. 그의 수단은 고문이었다. 몽둥이로 때리기는 기본이고, 물고문과 전기고문, 엘리베이터실 고문(앉아 있는 특수의자를 1~2층 깊이의 어두운 지하실로 갑자기 떨어뜨려 공포감을 극대화함)이 동원됐다. 1982년 보안사에 끌려갔던 이종수(60·당시 고려대 국문과 재학)씨와 1984년에 영문도 모른 채 서울 송파구 장지동 보안사 분실에 잡혀갔던 윤정헌(65·당시 고려대 의대 재학)씨는 고씨 등 보안사 수사관들한테 한달 넘게 이런 고문을 당했다. 법정에서 고문으로 인한 조작이라고 혐의를 부인했음에도 이들은 유죄판결을 받고 각각 수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했으며, 2010년(이종수)과 2011년(윤정헌)에야 재심에서 무죄를 받았다. “고문범 1년 징역은 정의 아냐” 그러나 고씨는 사과와 반성은커녕 고문 사실을 적극적으로 부인하고 나섰다. 2009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윤정헌씨, 이종수씨 간첩 사건 등에 대해 각각 조작됐다는 결론을 내리자, 고씨는 이의 신청을 했다. 이뿐만 아니다. 법정에 나와서까지 고문한 일이 없다고 부인했다. 이번에 처벌된 것은 바로 2010년 12월 윤정헌씨에 대한 재심 재판 때의 증언이다. 당시 그는 검찰이 신청한 증인(보안사 전직 수사관 4명) 중 한명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법정에 출석하지 않았지만, 그는 ‘용감하게’ 나와서 “고문한 적이 없다”고 거짓 증언을 했다. 이에 윤씨가 재심 무죄판결을 받은 뒤 그를 위증죄로 고소하면서 우여곡절 끝에 법의 심판대에 선 것이다. 고씨에 대한 1심 선고가 내려진 뒤 윤씨는 “혹시 집행유예가 내려지면 어쩌나 하고 걱정했는데 그게 아니어서 다행이지만, 그가 저지른 고문 악행을 생각하면 징역 1년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이 정도 처벌을 정의라고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1심 재판부는 나름대로 고씨를 엄중하게 단죄한 셈이지만, 고문 행위에 대한 직접적인 처벌은 아니다. 또 고씨가 법망에 걸려든 것도 우연이다. 그 역시 다른 동료 3명처럼 증언대에 서지 않았다면 감옥 갈 일도 없었을 것이다. 고씨가 다른 고문 가해자들에게 주는 유일한 교훈은 어쩌면 ‘법적 책임이 따르는 증언은 피하라’는 것일지 모른다. 고문을 저지른 보안사 수사관들뿐 아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때 여성들에게 강간 범죄(<한겨레> 5월8일치 ‘고문 뒤 석방 전날 성폭행…5월 항쟁 38년 만의 미투’)를 저지른 군인들도 마찬가지다. 범인이 누구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수사를 통해 밝혀진다고 하더라도 이들 역시 이 행위에 대해 법의 심판을 받을 가능성은 없다. 공소시효가 지났기 때문이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범죄 피의자를 기소할 수 없다는 형사소송법의 공소시효 규정에 따르면, 징역 10년 이상의 범죄이면 10년, 징역 10년 미만의 범죄이면 7년 안에 기소가 이뤄져야 한다. 고문 등 가혹행위는 형벌이 최대 징역 5년까지이며, 불법 체포·감금 행위는 최대 징역 7년까지이다. 고씨의 경우 이 두가지 범죄를 합해서 가중 처벌된다고 가정하면 공소시효는 10년이 된다. 따라서 윤정헌씨를 고문한 데 대한 기소는 1994년까지 이뤄졌어야 한다. 광주항쟁 때 벌어진 강간죄 역시 공소시효를 아무리 길게 잡아도 10~15년이다. 한참 전에 이미 시효가 끝났다. 수사기관의 고문과 군인에 의한 강간 등은 대표적인 반인권적·반인도적 국가범죄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 등 기본권을 보호해야 할 국가기관이나 대리인이 오히려 이를 짓밟았다는 점에서 매우 중대한 범죄다. 더구나 이러한 국가범죄는 권력을 가진 자들이 저지르기 때문에 진상을 은폐하기도 매우 쉽다. 윤정헌씨에 대한 고문이 30여년 만에야 사실로 확인된 것은 이런 범죄가 얼마나 밝혀지기 어려운가를 잘 보여준다. 그럼에도 일반 범죄와 동일하게 짧은 공소시효를 적용하고 있는 것은 정의 차원에서나, 법 집행 차원에서 맞지 않는다. 이 때문에 반인권적 범죄에 대해서는 공소시효를 적용하지 않는 게 국제적인 추세다.
1987년 홍콩에서 남편에게 살해당했던 수지 김은 오히려 간첩으로 조작됐다. 2001년 언론 보도에 의해 이뤄진 수사 결과 장세동 당시 안기부장 지시에 의한 것으로 드러났다. 장세동씨가 2001년 12월11일 오후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지검 청사로 들어가고 있다. 장씨는 공소시효 경과로 이 사건에 대한 처벌을 면했다.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보안사 수사관 시절 고문을 자행했던 고병천씨에 대한 위증 혐의 관련 1심 선고가 이뤄진 뒤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건물 계단에서, 고씨한테 당시 고문을 당했던 윤정헌(앞줄 오른쪽 둘째), 이종수(셋째)씨가 장경욱 변호사(앞줄 맨 오른쪽) 등과 함께 웃으며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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