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옥 한겨레두레공제조합연합회 대표는 협동조합 운동을 통해 한국 사회를 상부상조하는 사람이 살 수 있는 공동체로 만들고 싶어한다. 그는 이 운동이 자원 고갈, 환경 파괴 등을 통해 자멸의 길로 치닫고 있는 현대 자본주의 문명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일도 된다고 확신하고 있다.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한겨레가 만난 사람] 박승옥 한겨레두레공제조합연 대표
만연한 폭리와 리베이트 “수도권에서 싼 납골당이 300만원 정도인데 납골당 1기를 조성하는 원가는 10만원도 채 안 됩니다. 납골당 주인이 50%를 먹고 20%는 병원에 리베이트로 줍니다. 영업수당으로 10%를 쓰고 20%는 상주에게 할인해주는 척 생색내는 데 쓰입니다.” 박 대표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공원묘지도 비슷하다.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원가 10만원 안팎의 묘지 1기가 1000만원 이상에 팔린다는 것이다. 장례비용이 1000만원을 훌쩍 넘어갈 수밖에 없는 구조다. “돈 없는 사람은 이제 마음대로 죽지도 못하는 시대가 됐습니다. 오죽하면 납골당 비용이 없어 아무 데나 유골을 뿌리는 이들도 있을 정도니까요.”
큰 병원 장례식장 가운데는 자신이 제공하는 화단을 쓰도록 강요해 원가 10만원짜리 화단을 80만~200만원을 주고 사는 경우도 있다. 리베이트가 오가거나 품질이 낮은 장사물품을 제공하는 상조회사도 많다. 특히 장사물품의 경우 일반인들이 품질을 가늠하기가 어렵다는 점을 악용해 싸구려 재료로 만든 관이나 수의 등을 포장만 그럴듯하게 해서 제공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심지어 “바로 옆자리 장례식장에서 사용하던 검정 장례복을 다시 제공하는 경우까지 있다”고 박 대표는 개탄한다. 상조사업 폭리 만연…납입금 횡령도 심각
납골당 원가 10만원인데 수백만원 거래
“재벌이 상조까지 뛰어들지 않을까 걱정” 허술한 납입금 관리 가장 큰 문제는 고객 납입금의 횡령이다. 그로 인해 머지않아 약속한 상조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은 회사들이 적지 않다. 실제 최근 검찰은 업계 1, 2위 상조회사 대표들을 구속했다. 이들 회사의 대표는 가입자들이 낸 보험료 가운데 수백억원을 빼돌렸다. 이러한 불법행위를 막기 위해 정부는 지난 2월 ‘할부거래에 관한 법률(상조법)’을 개정해 내년 3월부터는 할부금의 50%를 적립하도록 했다. 박 대표는 “대부분 상조회사는 가입자를 늘리려고 할부금의 70~80%를 영업수당으로 줬다”며 “이 법이 시행되면 살아남을 상조회사는 많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할부금을 적립하지 않고 써버린 회사가 많기 때문이다. 박 대표는 상조사업에 대한 검찰의 수사에 대해서도 할 말이 있다. “검찰 수사로 신뢰를 잃은 상조회사를 대신해 재벌이 만든 상조회사가 생겨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자꾸 듭니다. 저승 가는 길까지 재벌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사회가 과연 행복한 사회인가요?” 상업화된 장례문화 박 대표는 장례문화의 상업화에 따른 폐해도 지적했다. 장례는 한 사회의 전통과 가장 밀접한 문화이다. 하지만 요즈음엔 많은 사람들이 문화로서 장례를 치르는 게 아니라, ‘보험’으로 ‘죽음의 의식’을 치른다. 보험사는 상조회사이고 의식의 장소는 병원 아니면 전문 장례식장이다. 그 결과 1994년 22%에 불과하던 병원에서의 장례가 2005년에는 68%로 늘었다. “병원에 장례식장이 있는 나라는 세계에서 대한민국이 유일합니다.” 이 과정에서 문화는 사라지고 상술만 남았다. 폐해도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박 대표는 “죽음이 마치 폐품처럼 취급당하고 있다”며 “한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았건, 내세가 있건 없건 육신이 흙으로 고이 돌아가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내년 3월 ‘상포계’ 발족 ‘상포계’는 박 대표의 이런 문제의식에서 탄생했다. ‘상포계’에 가입하면 3분의 1 수준의 비용으로 장례를 치를 수 있다. 박 대표는 공동구매 제도를 도입해 장사물품의 거품을 뺐다. 또 조합원 형편에 맞는 맞춤형 장례식을 위해 장사물품과 서비스를 조합원 개개인이 자신의 경제적 여건에 맞추어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공제조합의 목적이 조합원의 최대 혜택과 상부상조의 지역공동체 형성이라 가능한 일이다. 현재 한겨레두레공제조합연합회에는 전국 16개 지역에서 참여하고 있다. 서울과 의정부는 발기인 대회를 마치고 활동에 들어갔고, 인천, 수원, 대전, 광주, 부산, 대구 등 14개 지역에 준비위가 만들어졌다. 늦어도 내년 3월까지 발기인 대회를 마치고 회원을 대상으로 한 상조 서비스를 시작할 계획이라고 했다. 상포계, 공동체성 회복위한 협동조합 운동
장의물품 거품 빼 조합원들에 최대 혜택
“리영희 선생 마지막 가는 길 뒷바라지 보람” 상포계는 협동조합 운동의 시작 박 대표는 ‘상포계’가 공동체성 회복을 위한 협동조합 운동의 일환이라고 밝혔다. 사실 그가 협동조합에 ‘꽂힌’ 지는 오래다. 박 대표는 학생운동으로 시작한 노동운동가이자 출판운동가였다. “전태일 열사가 꿈꾸던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운동에 뛰어들었지만, 순탄하지 않았다. 현실 사회주의의 몰락은 그에게도 이정표가 사라지는 일대 사건이었다. 방황도 했지만 그는 협동조합 운동이라는 새 이정표를 찾았다. 그에게 협동조합은 “우리 조상의 훌륭한 유산인 ‘두레’이자 ‘자연스러운 삶의 방식’일 뿐 아니라 ‘사람과 자연에 모두 해로운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해결할 경제적 대안’”이었다. 박 대표는 우리나라 협동조합 운동의 산실이었던 원주에서 무위당 장일순(1928~1994) 선생을 사숙하며 협동조합 운동에 눈을 떴다. 그는 “밑에서 기어라”는 ‘스승’의 말을 지금도 가슴에 품고 산다. 지나고 보니 ‘낮은 곳에서 더 낮은 마음으로 일하라’는 장일순 선생의 가르침은 ‘협동’을 위한 활동가들에게는 금과옥조와 같은 훌륭한 행동강령이었다. 장일순 선생은 그에게 생명 사상의 세례도 줬다. 1992년 농업 중심의 공동체를 꿈꾸며 귀농하기도 했던 박 대표는 그 시절 공동체를 화두로 농업, 에너지, 환경, 교육 등 다양한 문제에 대한 대안을 고민했고 <녹색평론> 등에 사색의 결과물을 싣기도 했다. 지난 9월에는 그동안의 생각을 정리해 <상식: 대한민국 망한다>를 펴냈다. 책 제목과 달리 그는 이를 통해 새로운 세상에 대한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려고 했다. 메시지의 열쇳말은 농업 중심의 공동체와 협동조합이다. “세계적으로 8억명이 협동조합에 가입해 있습니다. 덴마크 소비자협동조합의 시장점유율은 37%에 이르고, 벨기에의 협동조합 약국은 약품 소비시장의 19.5%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콜롬비아의 6000여 협동조합은 이 나라 국내총생산의 5.25%를 담당합니다. 우리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박 대표는 옛 ‘동지’들을 만나면 협동조합 운동 얘기를 많이 한다. 김문수 경기도지사도 ‘동지’였다. 70년대 말 출판사에서 일하던 그는 노동운동을 하다 해고된 뒤 서점을 하던 김 지사를 만나게 됐고, 그의 요청으로 노동운동 관련 기관지 만드는 일을 도우면서 친해졌다. 김 지사와는 요즘도 연락이 닿는다. 김 지사를 비롯하여 사상적 ‘전향’을 한 이들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공동체에 대한 나름의 신념이 없다면 현실이 흔들릴 때 사상이 뿌리째 뽑힐 수 있다”는 말로 대신했다. 교육, 의료, 주택 문제도 협동조합이 대안 박 대표를 처음 보는 사람은 스님인 줄 안다. 삭발의 사연을 묻는 이들이 있으면 “그냥”이라고 답한다. 캐물으니 쑥스러운 ‘가풍’을 말했다. “대머리가 집안 내력인데 얼마 전부터 머리가 빠지기 시작해 머리카락에 신경 쓰며 지내느니 스스로 대머리가 되자는 생각에 아예 깎았다”고 한다. 스님은 아니지만 박 대표의 요즘 삶은 출가자의 만행을 닮았다. 그는 바랑 대신 작은 배낭을 메고 전국을 누빈다. 수첩에는 만날 사람과의 약속이 빼곡히 적혀 있다. 인터뷰를 마친 뒤에도 대전에 약속이 있다며 서둘러 서울역으로 향했다. 그는 전국을 돌며 시민사회단체 인사들을 만나 ‘상포계’를 조직중이다. 올해에만 16개 도시의 100여개 단체를 찾았다. 박 대표는 마음이 급하다. 재벌기업의 문어발이 동네 구멍가게에까지 뻗고 있는 현실을 목격하면서다. 그의 눈에는 영세상인들의 몰락이 머지않아 보였다. ‘상포계’를 빨리 정착시키고 다른 분야에도 협동조합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의무감처럼 그의 발길을 재촉하고 있다. “이마트가 피자점을 만들자 롯데마트는 매장 안에 치킨집을 만들었습니다. 재벌기업이 식당 체인점에 뛰어든 지는 아주 오래됐고요. 앞으로 재벌기업이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서비스를 다 공급하는 시대가 올지도 모릅니다. 협동조합이 대안입니다. 상포계는 시작에 불과합니다. 앞으로 회갑연과 돌잔치 등은 물론 교육, 의료, 주택 등 다양한 분야의 협동조합을 계속 만들어 나갈 계획입니다.” 박 대표는 요즘 들어 부쩍 ‘스승’ 장일순 선생을 생각한다. 장일순의 또다른 호는 일속자(一粟子). 좁쌀 한 알의 사람이라는 뜻이다. 노장사상에 달통했던 장일순은 좁쌀 한 알에 우주가 들어 있다는 말을 자주 했다. 박 대표에게는 협동조합이 우주를 품고 있는 좁쌀이다. 상포계는 좁쌀이 틔운 첫 싹이다. 그는 이 싹이 세상을 뒤덮는 상상을 자주 한다. 그 싹이 무성해질 때 청년 전태일이 염원했고 자신이 꿈꿔온 “더불어 사는 세상”도 펼쳐질 것이기에. 인터뷰/이충신 기자 cs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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