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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인권·복지

결혼 제도 밖 출생신고 어려워 ‘유령아기’ 된다

등록 2023-06-28 05:00수정 2023-06-28 08:33

병원 이외 출산 증명 까다롭고
법적 아빠 상대로 소송하기도
클립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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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가명)이는 생후 16개월 만인 올해 2월에야 출생신고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았다.

갈등이 심했던 결혼 생활을 접기로 한 엄마는 이혼 성립 하루 전 행복이를 낳았다. 민법 ‘친생 추정’ 조항(제844조)에 따라 엄마가 법적으로 결혼한 상태(결혼 200일 후 또는 이혼 300일 이내)라면 아이는 친아빠가 있어도 남편의 자녀로 추정된다. 출생신고를 하면 헤어진 남편 자녀로 등록된다는 뜻인데, 전남편은 이를 강하게 거부했다. 결국 엄마는 여러 단체의 도움을 받아 ‘행복이는 전남편 아이’라는 추정을 끊어내는(친생 부인) 소송을 거친 끝에 출생신고를 할 수 있었다. 그러는 동안 진료비나 보육비 같은 국가 지원에서 행복이는 배제됐다.

결혼한 엄마·아빠를 중심으로 하는 이른바 ‘정상가족’ 밖에서 태어난 아동들이 복잡한 제도 탓에 출생신고가 늦어지거나 누락되는 피해를 겪고 있다. 공적 보호망 밖 아동들이 건강과 생명을 위협받지 않도록 의료기관이 정부에 출생 사실을 통보하는 등의 ‘보편적 출생통보제’ 도입과 복잡한 법 절차 개선이 시급하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2021년 혼인 외 출생아 비중은 2.9%로 전년보다 0.4%포인트 늘었다.

병원 밖 출산 목격자 있어도 증명 못하기도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가족관계등록법)에 따라 출생신고는 결혼한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와 그렇지 않은 ‘혼인외 출생자’가 분리돼 이뤄진다. 결혼한 부부는 엄마 또는 아빠 모두 출생신고를 할 수 있지만 결혼 제도 밖 출산의 경우 엄마가 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홀로 임신·출산·육아를 감당하는 여성에게 출생신고 벽은 높다. 양민옥 선문대 교수(사회복지학)가 2022년 작성한 논문 ‘양육미혼모의 출생신고과정에서의 경험을 통해 본 보편적 출생등록제도에서의 시사점’을 보면, 연구에 참여한 미혼모들은 출산 뒤 몸이 회복되지 않은데다 아이를 돌봐줄 사람도 마땅치 않아 주민센터 방문이 쉽지 않았다. 아빠 이름을 쓰라고 채근하는 공무원과 승강이를 벌이는 심적 고통도 뒤따랐다.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21년 1월2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미혼 한부모 가정을 지원하는 단체 ‘아빠의 품’ 김지환 대표와 미혼부 출생신고법 통과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21년 1월2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미혼 한부모 가정을 지원하는 단체 ‘아빠의 품’ 김지환 대표와 미혼부 출생신고법 통과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들은 그나마 병원에서 출산해 출생신고에 필요한 출생증명서를 발급받았다. 병원이 아닌 곳에서 출산하는 경우엔 ‘분만에 직접 관여한 자’가 아이를 낳은 사실을 증명해주는 자료가 있어야 한다. 유미숙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대외협력국장은 27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지난 5월 대학생 딸이 집에서 갑자기 아이를 낳았다며 도움을 요청하는 분에게 (출생신고를 위해) 병원 입원기록, 병원에 이송한 119구급대 구급일지 등 출산을 증명할 수 있을 만한 자료를 확보하라고 안내했다”고 말했다. ‘분만에 직접 관여한 자’라는 문구가 모호한 까닭에 출산을 증명하는 데 도움 될 만한 자료를 모두 수집하라고 한 것이다. 집에서 출산을 목격한 사람의 진술로도 출생신고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누구에게도 도움을 받지 못하고 홀로 출산을 할 경우엔 가정법원에서 출산 사실을 확인받아야 출생신고를 할 수 있다. 현실적으로 취약층 산모가 이런 복잡한 절차를 알기 어렵고, 알더라도 엄두를 내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기나긴 소송, 멀고 먼 진짜 아빠되기

혼인 외 출생 아동의 출생신고는 엄마가 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엄마의 인적 사항을 모르거나 출생신고에 협조하지 않는 등 사정이 있으면 예외적으로 친아빠도 가정법원 심사를 받아 출생신고를 할 수 있다. 단, 이런 절차를 밟기 위해선 엄마가 미혼이어야 한다. 엄마가 법적으로 다른 사람과 결혼한 상태라면 원칙적으로 친아빠가 출생신고를 할 수 없다. 혼인 중 임신한 자녀는 남편 자녀로 추정한다는 민법 조항과의 충돌을 방지하겠다는 이유다. 그러나 올해 3월 헌법재판소는 법적 남편이 있는 여성 사이에서 낳은 자녀 출생신고를 친아빠에게 허용하지 않는 가족관계등록법 조항이 “혼인외 출생자의 출생 등록될 권리를 실효적으로 보장하지 못한다”며 헌법에 어긋난다고 결정했다. 그러면서 출생등록을 보장하면서도 법적 부자 관계 형성에 혼란이 생기지 않는 방안을 마련해 2025년 5월31일까지 법 조항을 개정해야 한다고 했다.

위헌확인 신청은 기혼인 여성 사이에서 자녀를 낳고 자녀 엄마와 연락이 끊긴 남성 3명과 자녀 4명이 냈다. 그 중 한명인 정아무개(46)씨는 아들 엄마의 법적 남편을 상대로 친생자 관계 확인 소송 등 5년 동안의 법정 투쟁 끝에 출생신고를 할 수 있었다. 그사이 아이는 훌쩍 자랐지만, 현실 변화는 더디다. 한부모 가정을 돕는 김지환 ‘아빠의 품’ 대표는 “아직 헌재 결정 이후 달라진 건 없다”며 “무엇보다 아동 출생신고부터 먼저 한 뒤 누가 아빠인지를 확인하는 조처가 이루어지도록 제도가 바뀌길 바란다”고 말했다.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천호성 기자 rieux@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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