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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인권·복지

고난의 상경치료…서울 의사 보려 ‘환자방’에 산다 [영상]

등록 2023-02-07 07:00수정 2023-02-13 14:21

서울로 가는 지역 암환자
‘고난의 상경치료’ 리포트
① 대형병원 옆 환자방

의료진 없는 지역 암환자들
짧게는 하루, 길게는 수개월
대형병원 인근서 ‘쪽방살이’
경기도 고양시 국립암센터 인근에 환자들을 대상으로 영업하는 ‘환자방’. 조윤상 피디 jopd@hani.co.kr
경기도 고양시 국립암센터 인근에 환자들을 대상으로 영업하는 ‘환자방’. 조윤상 피디 jopd@hani.co.kr

‘큰 병 걸리면 서울로 가라.’ 해마다 비수도권에 사는, 국내 사망원인 1위 암 환자의 30%, 소아암 환자는 70%가량이 서울 등 수도권 대형병원으로 향한다. 체력이 약한 환자가 4~5시간씩 걸려 수백㎞를 통원하거나, 아예 병원 옆에 거처를 얻어 서울살이를 시작한다. 2000년대 중반부터 수도권 대형병원 인근에 하나둘씩 환자 숙소가 들어서더니 이제 고시원·고시텔·셰어하우스·요양병원이 밀집한 ‘환자촌’으로 자리잡았다. <한겨레>는 지난해 11월부터 석달간 ‘빅5’로 불리는 서울 대형병원과 경기도 국립암센터 인근에서 지역 필수의료 공백을 틈타 성업 중인 환자방 실태를 취재했다. 또 같은 기간 한국암환자권익협의회의 도움을 받아 서울에서 치료받는 지역 암 환자와 보호자 46명을 인터뷰하고, 188명을 설문조사했다. 그 결과를 토대로 전문가 10명의 자문을 거쳐 한국의 지역 의료 불평등 실태와 필수의료·의료전달체계 대책을 4회에 걸쳐 짚어본다. 편집자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인근 고시텔, 침대 머리 방향의 책 두권 크기 창에서 한기가 느껴졌다. 자려고 누우니 옆방 재채기 소리가 들렸다. 리모컨을 들어 텔레비전 소리를 줄였다. 6㎡ 남짓 공간에 화장실까지 욱여넣은 방, 침대에 이불을 반듯하게 펼 수조차 없이 비좁았다. 주방과 세탁기도 10명 안팎이 나눠 쓰는 이 방의 하루 숙박비는 4만원. 서울 병원에 치료를 받으러 온 지역 암 환자와 보호자가 많이 묵는 이른바 ‘환자방’이다.

전남 완도 노화도 주민 고수동(76)씨는 지난해 5월 식도암 진단을 받은 뒤 삼성서울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려고 ‘서울살이’를 시작했다. 이때부터 보호자인 아들 고복주(49)씨와 함께 이 고시텔과 원룸 등 병원 인근 환자방 2~3곳을 옮겨다니며 지내고 있다. 최근 몇년 새 이 일대에도 전문 의료서비스와 병실, 항암식을 제공하는 암 요양병원이 진화된 환자방 형태로 급증하고 있지만, 고가의 민간 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거나 보호자를 동반한 수동씨 같은 환자에게는 진입장벽이 높다.

의료진이 없어서든 서울 유명 병원을 선호해서든 지역 환자가 서울에서 치료받으면서 발생하는 추가 비용은 오롯이 개인의 몫이다. 정부는 저소득층 등 일부 중증질환자에게 의료비를 지원하는 데 그칠 뿐, 취약한 지역 공공의료로 개인이 떠안게 되는 ‘불평등 비용’까지 돌보진 않는다.

지역의료 ‘불평등 비용’ 개인이 떠안아

서울과 경기도 대형병원 인근은 지역에서 치료를 받으러 올라온 환자들이 머무는 거대한 대기실이다. 주로 암 환자가 많은데, 이들은 치료 방법에 따라 짧게는 하루, 길게는 수개월씩 숙박할 곳을 구해야 한다. 대형병원이 통상 중환자, 수술환자, 응급환자에게만 병실을 내주는 탓이다.

자연스레 대형병원 주변에 숙소·원룸이 생겼다. 경기도 고양시 국립암센터 인근에서 환자방을 운영하는 권아무개(77)씨는 “암 환자들이 항암치료를 하려면 아침 8시까지 가서 피검사도 하고 치료도 받아야 하니까, 숙소들이 생겼다”며 “전국 각지에서 환자들이 온다”고 말했다.

대형병원 앞 숙소는 20여년 전부터 눈에 띄게 늘었다고 한다.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인근에서 2대째 가업으로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ㅇ부동산 대표는 “2000년대 중반부터 환자들이 서울에 몰리면서 숙소를 구하는 수요가 생겼다. 임대인들이 그런 트렌드를 파악하고 환자들에게 방을 빌려주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환자들이 주로 이용하는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인근의 고시텔. 박준용 기자
환자들이 주로 이용하는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인근의 고시텔. 박준용 기자

‘환자방’으로 통칭되는 환자·보호자 숙소들은 서울 ‘빅5’와 경기도 국립암센터를 중심으로 형성됐다. 특히 삼성서울병원과 서울아산병원 근방에는 ○○고시텔, ○○레지던스, ○○하우스 등 간판을 내걸고 환자방으로 운영되는 숙소들이 많다. <한겨레> 현장 취재 결과, 반경 1㎞ 기준으로 삼성서울병원은 최소 4곳, 서울아산병원은 최소 5곳이 있었다. 국립암센터 인근에서 영업하는 환자방의 경우, ‘환자방’이란 간판으로 최소 6곳이 영업 중이었다. 한 숙소당 적게는 3~4개에서 많게는 30개까지 방을 운영한다.

간판 없이 환자방으로 운영되는 곳도 많다. 지난 2일 기준 공유숙박 플랫폼을 보면 ‘병원과 가장 가까운 숙소’라며 환자들을 상대로 홍보한다. 이런 집은 2일 기준 서울아산병원 인근 10곳이 넘고, 삼성서울병원 주변에도 20곳 이상이다. 단기로 숙소를 구하는 이들은 서울 송파구 방이동(서울아산병원), 종로구 혜화동(서울대병원), 서초구 서초동과 양재동(삼성서울병원·서울성모병원), 서대문구 신촌동(신촌세브란스병원)의 호텔·모텔을 이용한다.

장기 치료를 받아야 하는 환자와 보호자들은 병원 주변 원룸에도 머문다. ㅇ부동산 대표는 “삼성서울병원 인근에 원룸·투룸이 100개 정도 있는데, 이 중 80%가 환자”라고 전했다. 그는 “어르신 환자분이 오시면 ‘저렴한 방’을 주로 문의하고, 환자 자녀들은 ‘편한 방’을 찾는다”고 덧붙였다.

고시텔·원룸은 하루 3만원~월 130만원

대형병원 주변 숙소는 비용에 따른 위계가 명확하다. 하루 3만~5만원짜리 고시텔과 한달 500만원이 넘는 암 요양병원은 주거 공간의 넓이와 편의시설은 물론 의료서비스에 이르기까지 정확히 지불 가격만큼의 편차를 나타낸다.

<한겨레>가 국립암센터 인근 환자방 간판을 내건 5곳을 취재해보니, 평균 하루 3만원, 한달 기준 60만~70만원 선에서 5~10㎡ 방을 구할 수 있었다. 서울아산병원과 삼성서울병원 주변은 같은 1인실이더라도 하루 최소 4만원, 한달 60만~90만원 안팎이었다.

고시텔보다 한 단계 위인 원룸은 더 넓고 요리·세탁을 개별적으로 할 수 있지만, 가격이 만만치 않다. 삼성서울병원과 서울아산병원 인근 원룸은 한달 80만원에서 130만원 수준이다. 단기계약은 공실 분담금이 붙어 주변 시세보다 10~15% 더 비싸게 계약하기도 한다.

식도암 환자 고수동씨 가족은 애초 삼성서울병원 인근 하루 4만원꼴 고시텔에서 머물렀으나, 서울살이가 길어지면서 지난해 8월부터 석달간 원룸을 계약했다. 한달 110만원, 관리비 10만원씩을 방값으로 냈다. “서울 생활 4~5개월에 의료비 제외하고 총 2천만원 정도 든 것 같아요. 숙박비만 500만원이 넘게 들었고요. 환자와 보호자 식비만 해도 한달 100만원이 넘고, 생활비, 교통비도 들고요.”(고수동씨 아들 고복주씨)

월 수백만~1천만원 요양병원도

최근에는 수도권 대형병원에서 치료받는 암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암 요양병원이 늘고 있다. 의료진이 면역 치료 등 건강관리를 해주고, 심신 안정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도 마련돼 있다. 대형병원에 진료나 치료를 갈 때는 픽업 서비스까지 제공해, 보험 등 여력이 있는 암 환자에겐 최우선적인 고려 대상이다.

요양병원 성업은 통계로도 나타난다. ‘빅5’가 있는 서울 송파구(서울아산병원), 강남구(삼성서울병원), 서초구(서울성모병원), 서대문구(신촌세브란스병원), 종로구(서울대병원)에서 최근 10년(2013~2022년)간 요양병원 21곳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한방병원 22곳이 생겼다. 2003~2012년 사이 이 5개 구에 설립된 요양병원이 8곳, 한방병원은 2곳인 것을 고려하면 큰 변화다.

아픈 몸을 이끌고 지역에서 올라온 암 환자에게 요양병원은 최선의 쉼터처럼 보이지만, 문제는 비용인 경우가 많다. 보장성이 높은 암 보험에 가입한 환자들은 보험사에 요양병원 비용을 청구할 수 있지만, 보험 보장이 덜 되거나 아예 보험이 없는 이들에겐 어려운 선택지다.

경남 거창군에 거주하는 자궁경부암 환자 김귀선(67)씨는 서울 대형병원 인근 요양병원에서 4개월 반을 지내며 총 2400만원을 썼다. 입원료 보장 보험이 없어, 면역치료 등 비급여 치료를 포함해 요양병원비로만 월 300만~700만원이 들었다.

한 수도권 요양병원장은 “서울 강남권 요양병원은 임대료가 비싸 환자들에게 비급여 의료서비스를 권장하는 면이 있다”고 귀띔했다. 이들 중 일부는 호텔 수준의 병실과 맞춤 항암식을 내주는 초특급 요양병원으로, 1인실 기준 월 1천만원인 곳도 있다.

요양병원이 아닌 원룸과 고시텔이라도 묵을 곳을 찾았다면 그나마 다행인 걸까. 지난달 4일 자정 무렵, ‘빅5’ 중 한곳 병원 로비에서는 부산에서 온 소아 희귀질환 환자의 할머니인 곽아무개(74)씨가 대기실 의자 위에서 잘 채비를 하고 있었다. “여기서 주변 숙소 멀지요? 나는 처음 와보고, 그런 거 찾지도 못해.” 딸이 손녀와 함께 입원했고, 본인은 이들을 돕다가 로비에서 밤을 보내기로 했다는 그다. 패딩 점퍼를 이불 삼아 누운 곽씨는 그날 새벽 1시가 넘어서까지 몸을 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

●자문 주신 분들(가나다순)

강정훈 국립경상대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

권정혜 세종충남대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

김동은 계명대 동산병원 이비인후과 교수

김성주 한국암환자권익협의회 대표

김세현 분당서울대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

김영애 국립암센터 중앙암생존자통합지지센터 부센터장

김윤 서울대 의료관리학 교수

김혜리 서울아산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윤영호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임정수 국립암센터 국가암사업관리본부장

박준용 기자 juney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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