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근식 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원회) 위원장은 지난 23일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국가 폭력 피해자들이 국가로부터 관련 사실을 인정받고도, 소송 능력 부족 등의 이유로 왜 보상·배상 권리를 포기해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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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2월 출범한 ‘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원회)는 그동안 부산 형제복지원, 안산 선감학원 등 집단수용시설, 진주 보도연맹 사건 등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 삼청교육대나 녹화사업 등 권위주의 정권의 인권침해 등에 대한 진실을 규명하고 정부에 공식 사과와 피해자 지원대책 마련 등을 권고했다. 그러나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선감학원 피해자에게 사과하고, 경기도에서 1인당 500만원씩 위로금을 지급하는 일부 보상 조처를 시행했을 뿐이다. 중앙 정부에선 진실화해위원회의 권고를 거의 이행하지 않는다.
진실화해위원회 조사를 통해 진실이 규명되고 인권침해, 학살 피해자로 인정받았지만 여전히 피해자에 대한 배상·보상법안 등 제도적 장치는 미흡하다. 피해자나 그 유족들은 국가를 상대로 배상 책임을 묻고 보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개별적으로 진행한다. 이런 개별 구제를 시작할 엄두를 못 내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이 때문에 진실화해위원회 활동에도 불구하고, 공권력에 의한 피해 치유엔 심각한 불평등이 발생한다. 진실 규명은 속도를 내지만 국민 통합과 진정한 화해로 이어지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지난 2년 동안 진실화해위원회를 이끌어온 정근식 위원장의 임기는 12월9일까지다.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한 그의 연임 여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윤석열 대통령이 새 위원장을 임명할 수도 있다. 지난 23일 서울 중구 진실화해위원회에서 정 위원장을 만나 성과와 한계, 반드시 개선하고 해결해야 할 과제에 관해 물었다.
―2기 진실화해위원회를 2년 동안 이끌어오셨는데, 가장 의미 있는 성과는 무엇인가요?
“저는 늘 열심히 한다고 했고, 피해자나 유족들에게 희망 섞인 기대를 할 만한 얘기를 많이 했는데 그분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어요. 보람보다 부담이 훨씬 큽니다. 하루하루 진실 규명을 기다리는 피해자들께 시원하게 다 답을 드리지 못한 것에 대해 굉장히 송구스럽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래도 보람 있는 성과가 적지 않은 듯한데요?
“굳이 보람을 찾는다면 권위주의 통치 아래 인권침해 사건들에 대해 최소한 해야 할 것은 겨우 했다는 점입니다. 특히 집단수용시설과 관련해 진실 규명을 한 게 의미 있다고 봅니다. 5·16 직후 서산개척단 사건, 안산 선감학원 사건에 대한 진실 규명을 했습니다.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한 1차 진실 규명도 마쳤습니다. 또 삼청교육대, 강제징집 녹화공작에 대한 진실도 밝혔습니다. 선감학원 사건의 경우엔 구체적인 성과도 나왔습니다.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직접 와서 사과도 하고 (피해자에게) 500만원 정도씩 위로금을 경기도 차원에서 지급하기로 발표를 했습니다. 이런 것에 작은 보람을 느낍니다.”
―선감학원에 대한 경기도의 조처는 예외적인 것 아닌가요. 화해와 치유를 위해선 진실화해위원회 권고를 정부가 이행하는 게 제일 중요할 텐데 형제복지원 사건의 경우 진화위 조사로 657명이 사망하고 국가안전기획부가 조직적으로 개입하는 등 국가 폭력이 명확하다고 밝혀졌어요. 하지만 정부는 공식 사과 권고 등에 대해 아무런 이행 조치도 없는 것 아닌가요?
“없습니다. 형제복지원의 경우 대통령이 언제 어떤 형식으로 사과하겠다고 하는 게 발표된 바 없습니다. 아직 협의가 이뤄지지도 않았습니다. 정부 쪽에서는 아무 조처가 없고, 부산시 차원에서 피해자들을 위로하는 약간의 제도를 발표한 바 있습니다.”
―대통령이 진실 규명 될 때마다 사과할 수는 없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대통령의 사과를 자주 남발할 수도 없지만 또 한편으로는 꼭 해야 하는 거잖아요. 저는 대통령은 언제 어떤 형식으로 사과하는 게 가장 좋을까, 이걸 고민하고 있을 거라고 믿고 싶습니다. 그보다 좀 낮은 수준의 사과, 즉 관련 부처 장관의 사과는 좀 더 진솔하게 이루어지면 좋겠어요. 선감학원이나 형제복지원처럼 지방자치단체가 깊숙하게 개입된 사건의 경우에는 도지사나 시장 등 단체장들이 좀 더 자유롭게, 적극적으로 사과했으면 좋겠고요. 하여튼 저희가 일단 (김동연) 경기도 도지사의 사과와 위로의 자리를 시범 케이스 비슷하게 만들었으니 앞으로 그런 것들이 더 발전해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사회를 좀 더 사람 사는 사회로 만들려면 공권력의 오남용, 국가 폭력 피해에 대해 사과하고 위로하는 것이 단순히 법률과 제도의 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일상적 삶의 형식, 문화적 형식으로 자리를 잡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고 저는 생각하고 있어요.”
―위원회가 더 역할을 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우리 위원회가 화해 업무를 하는데 그 화해를 주로 정부 부처에 권고하잖아요. 그런데 중요한 사건을 진실 규명 할 때마다 그 피해자들을 위원회에 오시게 해서 위로의 모임 같은 것을 제도화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사과는 가해 주체들이 진솔하게 해야 하는 것이잖아요. (그것이 안 되니까) 사과하고 위로하는 장이 미흡했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요. 그래서 진실 규명을 직접 담당했던 진실화해위원회 조사관과 위원회를 대표하는 위원장과 위원들이라도 피해자를 모셔 위로하는 조금 더 공식적인 행위를 하자는 것이죠.”
―위원회가 다른 적극적인 조치를 요구하지는 않았나요?
“제 개인적으로 전라남도 도지사한테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이 가장 많은 것이 전라남도 사건이니 도 차원에서도 별도로 진실·화해를 위한 재단이나 연구소 같은 것을 만들어 좀 더 지속해서 진실 규명을 하면 좋겠다고 했어요. 1기 진실화해위원회(2005~2010년)가 종료될 때 가칭 과거사 연구재단, 우리는 진실화해 재단이라고 부르는데, 그것을 권고했음에도 전혀 이뤄지지 못했어요. 제가 2기 위원장으로 활동해보니 진실화해위원회는 한시적인 기구인데 한시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과제들이 상당히 많더라고요. 불가피하게 과거사 연구재단 또는 진실화해 재단을 만들어야 하는데 이게 100% 국가가 해야 하는 일이지만 지방정부도 그런 것에 주목하고 좀 다층적으로 진실 규명을 함께 진행하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방정부도 과거 아픔을 치유하는 조처에 동참해달라는 것입니다.”
―자치단체도 추모제 등을 하는 것 아닌가요?
“여러 조례를 만들어 추모제 지원, 위령비 설치 등은 하고 있어요. 그런데 더 적극적으로 나서 증언 채록, 유해 발굴 등 다양한 형태의 화해 사업을 지방정부 수준에서 할 수도 있지 않겠냐는 것입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지난 8월 형제복지원 인권침해 사건의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당시 정근식 위원장이 피해 생존자의 손을 잡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중앙 정부가 진실화해위원회의 권고를 이행하는 게 가장 중요한 것 아닌가요?
“촛불을 경험하면서 국민의 인권감수성이 높아졌어요. 높아진 인권감수성에 기초해서 새로운 민주인권국가를 만들려면 중앙 정부, 사법부, 입법부가 같이 노력해야 하고 지방 차원에서도 더 능동적으로 관련 조처를 강구해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진실화해위원회가 민주인권국가로서 대한민국의 미래를 담보하는 굉장히 중요한 제도라는 걸 깨달았지만 아직도 한시적인 기구예요. 저는 상설 기구로 만들자고 주장하지는 않지만 진실화해위원회가 갖고 있는 성취를 어떻게 하면 국가 운영에 지속해서 반영할 수 있을 것인가, 이런 것들을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고민하고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진실화해위원회의 진실 규명 성과가 일부 피해자들에겐 소송을 통해 보상금도 받을 수 있게 했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게 국민 모두에게 그 성과가 공유되는 것입니다. 후속 연구, 시민교육 등으로 자꾸 퍼져나가야 우리가 말하는 재발 방지가 되잖아요. 국가 예산을 투자한 성과가 직접 피해자나 유족들한테만 가는 것은 좀 이상하잖아요.”
―진실화해위원회가 정부에 배·보상특별법 제정을 권고하기도 했는데요.
“2012년 대법원 판결로 진실화해위원회의 진실 규명 통보를 받은 날로부터 ‘3년 시효’가 작동해요. 진실 규명을 받은 이들이 소송을 통해 피해 구제를 받으려면 3년 안에 소송을 해야 하죠. 그런데 계속 이런 진실 규명 결과가 쌓이는데 별도의 배·보상을 위한 법적인 장치가 없으면 이 사람들이 전부 개별적인 소송을 하게 돼 있죠.”
―긴급조치 위반 피해자들이 개별 소송으로 피해를 구제받으려는 사례 같은 걸 말씀하시는 건가요?
“네. 그런 피해자의 수고,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않으려고 계속 부처에 특별법 제정이나 피해 구제를 위한 조처를 강구하라고 권고를 하는 거예요. 저희가 가만히 있으면 이 사람들은 전부 갈 데가 없으니까 변호사를 선임하고, 개별 소송을 진행하는 수고가 다시 생겨납니다. 유엔 (인권) 특별조사관이 와서 저하고 인터뷰를 하면서 진실화해위원회가 독립적인 국가기구인데 왜 국가기구에서 진실 규명 결정한 것을 또다시, 그러니까 사법부의 개별 소송을 거쳐 구제받아야 하느냐며 이것을 굉장히 의문스럽게 생각하고, 내년 봄에 나오는 한국 관련 인권보고서에 이 문제를 지적하겠다는 얘기를 했어요.”
―그런데 배·보상법 제정이 쉬운 건 아니잖아요. 이해관계도 엇갈리고요.
“지금 현재는 보상 금액, 재정적인 어려움들 때문에 법 밖으로 나가 있지만 배·보상과 관련된 규정이 없다고 해서 배·보상이 안 이루어지느냐? 아닙니다. 저희가 조사를 해보니 1기 진실화해위원회에서 진실 규명을 받은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의 경우 3분의 1 정도인 6천여명이 소송을 통해 (1인당) 1억3200만원씩 보상을 받았어요. 그 전체 금액이 7500억원 정도 돼요. 그러다 보니 어떤 문제가 발생하느냐, 똑같이 진실 규명을 받았는데 어떤 분은 소송을 통해 보상을 받고 소송을 안 하신 분은 못 받은 것이죠. 또 대한민국 군경에 의한 피해자는 보상을 받는데, 미군이나 적대 세력(인민군 등)에 의한 피해자들은 보상을 못 받아요. 결국 피해 구제의 형평성이 깨지게 됩니다. 국가 권력에 의한 인권침해 피해자는 소송이 더 많았고, 수많은 배·보상이 진행됐는데 국가는 어느 정도 예산을 사용했는지 통계조차도 없어요. 핵심은 뭐냐? 돈이 안 나가는 게 아니고 이렇게 나가는데 자꾸 재정적인 부담을 이유로 배·보상특별법 제정을 회피하는 건 잘못된 것이라는 겁니다. 어차피 돈이 나가면 떳떳하게 국민적인 토론을 통해서 적절한 피해 보상 수준을 정하고 부족하면 피해자들에게 양해를 구해야지, 왜 그걸 개별화해 소송의 번거로움과 비용 부담을 감수한 사람은 구제하고, 그걸 할 수 없는 사람은 스스로 권리를 포기하게 하느냐는 것입니다.”
―배상금 액수에 대한 유족들의 이해도 다른 것 아닌가요?
“맞아요. 배·보상을 하는 경우 어느 정도 액수가 적절하냐는 문제가 있죠. 피해자나 변호사들은 당연히 많이 받으려고 하죠. 그런데 과거의 일이고, 또 국민 세금으로 배·보상이 이루어지는 거잖아요. 따라서 피해자의 눈높이와 세금을 부담하는 국민들의 눈높이가 맞아야 하는데 그 눈높이를 조정하는 것이 굉장히 어려운 문제죠. 신뢰를 받는 원로 등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배·보상 기구나 위원회를 만들고 폭넓게 의견을 수렴해서 정리할 수밖에 없어요. 진실 규명보다 더 어려운 일이 피해 치유의 수준을 정하는 문제입니다. 개별 사건으로 접근하다 보니 어떤 데는 많이 주고 어떤 데는 적게 준다든가 그냥 그때그때, 목소리 큰 사람들의 요청에 응답하는 방식으로 해결해요. (보상액, 배상액을) 판결하는 판사들도 힘들죠. 이제 용기를 갖고 전 사회적인 눈높이 조정에 나서야 합니다. 국민 눈높이에 맞고 피해자들의 절박한 사정에도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그런 합의는 양보와 타협, 공동체적인 상생 정신이 없으면 쉽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사실 대통령이 나서서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지금까지 2기 진실화해위원회에 진실 규명을 접수한 게 몇건이나 되나요?
“건수로 1만7천여건, 신청인은 1만9천명쯤 됩니다. 오는 12월9일까지 접수를 하면 대상자가 2만여명 될 것입니다. 1기 진화위 때 1만1천명 정도였으니 1.8배 정도 많은 것이죠. 그런데 아시다시피 1기 때는 5년을 활동했어요. 2기 진실화해위원회는 ‘3년+1년’이잖아요.”
―2기 진실화해위원회 활동 기간에 신청 사건을 다 처리할 수 있나요?
“진화위 활동은 첫 조사 개시일(2021년 5월)부터 기본 3년, 필요할 경우 1년 더 연장할 수 있는데 1년 연장은 예측할 수 없으니 2024년도 5월27일에 활동이 끝나요. 이제 1년 반 남은 거예요. 1기 때에 비해 신청 건수는 훨씬 많은데 조사관은 거의 같은 수준이고, 업무 부담 때문에 조사관들이 굉장히 힘들어합니다. 처음 출범할 때 정원이 132명이었어요. 공채 77명, 중앙부처에서 파견한 공무원 55명. 그런데 신청 사건이 많아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추가 파견을 받아 지금 현재 215명입니다. 하지만 실제 조사인력은 그중 절반 정도 됩니다. 조사관을 증원하거나 조사기관을 늘리는 것이 불가피합니다.”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