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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인권·복지

[이 순간] 쪽방촌 사는 우리는 LH사장 하면 안 됩니까

등록 2022-10-17 05:00수정 2022-10-17 08:51

서울 용산 동자동 쪽방촌 주민 백광헌(65)씨가 전깃불이 없으면 빛이 들지 않은 방에서 허공을 응시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서울 용산 동자동 쪽방촌 주민 백광헌(65)씨가 전깃불이 없으면 빛이 들지 않은 방에서 허공을 응시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1차 서류심사에서 바로 탈락했어.”

지난달 한국토지주택공사(LH) 신임 사장 공개모집에 지원했다 떨어진 서울 용산 동자동 쪽방촌 주민 백광헌(65)씨는 그때를 회상하며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면접이라도 볼 수 있을 거란 기대는 큰 실망으로 돌아왔다. 동자동 공공주택사업 추진 주민모임 부위원장인 백씨는 “공공주택사업이 제대로 진행되도록 하기 위해 사장 공모에 지원했다”고 밝혔다.

동자동 쪽방촌 주민이 기초생활수급비 내역을 보여주고 있다. 박종식 기자
동자동 쪽방촌 주민이 기초생활수급비 내역을 보여주고 있다. 박종식 기자

쪽방 한켠에 라이터가 쌓여있다. 박종식 기자
쪽방 한켠에 라이터가 쌓여있다. 박종식 기자

백씨가 사는 동자동 쪽방촌에는 현재 주민 1000여명이 살고 있다. 화장실 하나를 10여명이 함께 쓰고, 제대로 된 냉난방 시설도 갖추지 않는 등 최저 주거기준 이하의 환경이다. 2021년 국토교통부와 한국토지주택공사는 동자동 쪽방을 공공주택사업으로 정비해 쪽방 주민들이 임대주택에 들어갈 수 있게 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좀처럼 진전이 없다.

백씨를 비롯해 용산역 텐트촌 철거민 박재혼, 고시원에 사는 나경동씨, 반지하에 사는 박도형 민달팽이유니온 운영위원도 한국토지주택공사 사장 공모에 지원했지만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이들은 “사장 후보로 거론되는 인물이 대형 건설사들의 입장을 대변해온 사람이라 우리가 직접 나서 주거 취약계층 당사자의 입장을 대변하려 한다”고 지원 배경을 밝힌 바 있다. 현재 한국토지주택공사 사장 후보로는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 이한준 전 경기도시공사 사장, 김경환 전 서강대 교수 등이 거론되고 있다.

쪽방촌 주민 조인영씨가 자신의 방 앞 식물을 돌보고 있다. 박종식 기자
쪽방촌 주민 조인영씨가 자신의 방 앞 식물을 돌보고 있다. 박종식 기자

조인영씨가 창 밖으로 얼굴을 내밀어 쳐다보고 있다. 박종식 기자
조인영씨가 창 밖으로 얼굴을 내밀어 쳐다보고 있다. 박종식 기자

전깃불을 켜지 않으면 대낮에도 빛이 들지 않는 방에서 백씨는 “여기 집주인 대부분이 강남에 사는 부유층”이라며 “현금으로 들어오는 주거급여를 노리고 기초생활수급자를 임차인으로 받고 있다”고 말한다. 동자동 쪽방촌 주민의 기초생활수급비 60만원 중 23만원이 월세로 나가고, 이 돈은 쪽방촌에 살지도 않고, 생면부지인 건물주의 지갑으로 들어간다. 1987년 10월17일, 프랑스 파리 트로카데로 인권과 자유의 광장에 ‘가난이 있는 곳에 인권침해가 있다. 인권을 보호하는 것은 우리의 의무다’라는 문구가 새겨진 ‘절대빈곤 퇴치 운동 기념비’가 세워졌다. 이를 기념해 유엔은 10월17일을 ‘세계 빈곤 퇴치의 날’로 지정했다. 세계 빈곤 퇴치의 날인 오늘, 우리는 우리의 의무를 얼마나 잘 이행하고 있는지 돌아본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2022년 10월 17일자 <한겨레> 사진기획 ‘이 순간’ 지면
2022년 10월 17일자 <한겨레> 사진기획 ‘이 순간’ 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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