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빈민촌에서 가톨릭 사제, 개신교 목사, 빈민들과 함께 민중성서읽기 모임을 이끌어온 성정모 교수는 “우리가 성서를 읽는 것은 과거 사람들이 무엇을 했는지 알려는 게 아니고, 그들이 그 사회에서 어떤 문제를 경험했고, 그 문제 앞에서 어떤 해결 방법을 찾았는지 배워 현재의 고통과 부정의를 해결하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한겨레가 만난 사람] 해방신학자 성정모 상파울루감신대 교수
해방신학은 아직도 우리에게 유효한가. 해방신학은 권력자와 부자들의 신, 뜬구름 위의 하느님을 고통에 신음하는 이들 곁으로 불러들이는 계기가 됐다. 그래서 빈자와 약자들을 연대케 하고, 이들이 신적인 권력과 부로 불의를 일삼는 자들에게 저항할 수 있는 힘이 됐다. 해방신학은 요한 바오로 2세와 베네딕토 16세 등 보수적인 교황들의 견제로 남미 가톨릭 내에서 크게 퇴조했지만, 현실 세계에 끼치는 영향력은 여전히 크다.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과 에콰도르의 라파엘 코레아 대통령은 해방신학 모임 출신이다. 남미 중도좌파의 대부로 불리는 브라질의 룰라 전 대통령도 재임 시절 해방신학 모임 출신을 다수 내각에 참여시켰다.
한국에서도 남미 출신으로 경제적 불평등을 비판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을 앞둔데다, 대선 부정에 대한 종교계의 비판 이래 야기된 ‘종교의 현실 참여’ 논쟁으로 해방신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해방신학의 탄생지인 남미를 찾아 지난달 4일 세계적인 해방신학자 성정모(57·브라질 상파울루감신대 인문법대 학장) 교수를 만났다. 7살 때 이민하는 부모를 따라간 성 교수는 해방신학의 지평을 ‘인간의 욕망 문제’로까지 넓힌 선구적인 2세대 해방신학자다. 가톨릭신자인 그는 브라질 최대 빈민촌인 자르징안젤라시의 산마르티네스 교회 등에서 해방신학 모임을 이끌었고, 상파울루의 떠오르는 별인 이바브침례교회 키비츠 목사 등 많은 목사들에게 해방신학을 가르쳤다. 성 교수의 제자로 우리신학연구소 소장인 김항섭 교수(한신대)가 <인정 없는 경제와 하느님>을, 홍인식 멕시코장신대 교수가 <욕구와 시장, 그리고 신학> 등 성 교수의 저서를 번역해 국내에 소개했다. 성 교수는 학문간 경계를 뛰어넘는 탁월한 지식, 통찰력으로 고통받는 자들을 해방하는 구원관을 제시했다.
빈민촌서 해방신학모임 이끌며
신학의 지평 넓히고 전파 여러 사람들과 성서 읽으며
옛사람들의 문제 해결법 배워
현재 문제 풀어가기 위해 노력 사회적 죄악 시스템속에서
고통받는 빈자와 약자들
자유와 해방 위한 투쟁 계속할것 -오늘날 신자유주의가 확산되면서 해방신학은 퇴조하지 않았는가? “해방신학은 세상에 많은 영향력을 미쳤다. 약화된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다양한 것으로 퍼져 들어갔다고 볼 수도 있다. 옛날엔 ‘왜 이 세상에 가난이 있느냐’고 하면 ‘하느님이 원하셨기 때문’이라고 많은 종교인들이 얘기했지만 이젠 누구도 그렇게 얘기하지 않는다. 이제 이슬람에도 유대교에도 해방신학이 있다.” -앞으로 해방신학의 과제를 무엇으로 보는가? “1970년대식 해방신학에서 변화돼야 할 점은 2가지다. 1960년대엔 이 사회가 빨리 변할 것이라는 희망과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다. 둘째는 옛날에 해방은 단절을 의미했다. 옛 세대를 극복하고, 아무 문제 없는 새 시대가 열린다는 것이다. 예수 시대 메시아가 와서 모든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해주리라고 기대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예수는 전능한 제국주의적 대왕이 아니라 사랑과 자유, 해방의 하느님을 보여주었다. 따라서 하느님의 은혜와 사랑을 경험케 하는 모든 과정을 해방이라고 보아야 하는 것이다.” -많은 시련을 겪었음에도 불의는 사라지지 않고 빈부 격차가 날로 심해지지 않는가? “자유와 해방을 위한 투쟁에서 패배해도 선한 일을 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성공과 실패를 넘어서서 투쟁을 계속하는 것이다. 해방신학의 영성은, 실패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의 뜻을 실현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간다는 것이다.” -지금 남미에서 성령의 은사를 강하게 추구하는 오순절 그룹이 확산되고 있다. “한국의 교회와 마찬가지로 오순절 그룹에서 중요시하는 것은 번영신학이다. 그들은 예수에 대해선 잘 말하지 않는다. 번영의 간증을 주로 한다. 여기엔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는 가난이 자신의 잘못에 기인한다는 죄책감으로 더욱 고통받게 된다. 둘째는 노예제도와 다름없는 사회적인 죄악의 시스템을 간과하게 하는 것이다. 사람들을 끌어모으기 위해 세상적 욕망을 채워주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는 다른 가치와 경험을 주는 게 그리스도교 아닌가.” -해방신학에 욕망 문제를 도입한 것은 왜인가? “자본주의는 더 많은 소비를 하고 싶게 한다. 현대인들이 자본주의에 대해 불평하는 것은 자본주의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원하는 것을 더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에 더 들어가지 못해서 불평한다. 사람들은 타인들의 욕망을 모방한다. ‘저 사람처럼 되고 싶다’거나 ‘저 사람이 원하는 것을 나도 원한다’고 욕망한다. 저 사람이 원하는 것을 나도 원한다면 갈등이 발생한다. 같은 것을 원하기 때문에. 폭력이 생기고 원하는 것을 갖기 위해 살인을 저지를 수도 있다. 그것이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다. 그래서 십계명에서도 남의 것을 탐내지 말라고 한 것이다. 죄악의 경제구조와 함께 인간의 욕망을 극복해가야 해방될 수 있다.” -해방신학에서 현장을 중시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교수는 이론으로 먹고살기에 이론을 열심히 배운다. 그러나 원래 모든 이론은 실제적인 문제에 응답하기 위해 생긴 것이다. 그런데 이론이 성립돼 새 세대에게 가르칠 때가 되면 세상은 달라져 있다. 교육은 오늘 현실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당면하고 있는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할 수 있는 방법론을 가르쳐야 한다. 과거 사람들이 무엇을 했는지 알려고 성서를 배우는 게 아니다. 그 사람들이 그 사회에서 어떤 문제를 경험했고, 그 문제 앞에서 어떤 해결방법을 찾았는지 배워 현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다.” -해방신학은 공산주의란 비난을 받지 않는가? “신학이 현대사회에서 발생하는 가난의 문제를 완벽히 설명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해방신학자들이 만난 게 종속이론과 마르크스의 이론이었다. 하지만 해방신학자 중에 소수만이 마르크시즘을 공부했다. 심리학자 프로이트는 신을 믿지 않았다. 만약 어떤 신학자가 프로이트를 인용한다고 해도 그를 무신론자라고 비판하지 않는다. 하지만 신학자가 마르크스를 인용하면 공산주의자라고 비판받는다. 문제는 마르크스가 아니다. 마르크스의 이론이 자본가를 공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빨갱이라는 용어는 자본주의에 대한 공격보다는 권력에 대한 비판자에게 주로 쓰인다.” -해방신학이 인간학이라는 비판은 어떻게 생각하나? “그건 오해다. 해방신학자들은 성서에 대해 깊게 연구하며 하느님에 대해 얘기한다. 칼케돈 신조에서 예수는 완전한 인간이자 완전한 하느님이라고 한 것처럼 성서가 우리에게 말하는 것은 하느님은 멀리 떨어져 있기를 원치 않고 우리와 함께 여기에 있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예수는 하느님이 어떤 분인가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공동체에서 너희가 서로 사랑할 때 나의 영이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사랑에 대해 우리가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서로가 사랑하는 것이다.” 인터뷰/ 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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