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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궂긴소식

“하늘에서나마 ‘동생 이석기 석방’ 보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등록 2021-03-22 21:19수정 2022-03-17 12:07

[가신이의 발자취] 고 이경진님의 영전에
지난 3월초 스마트폰 접견 때 고 이경진씨가 옥중의 이석기 전 의원에게 남긴 마지막 필담, “백배 천만배 더 ♡”. 이석기의원 내란음모사건 피해자 한국구명위원회 제공
지난 3월초 스마트폰 접견 때 고 이경진씨가 옥중의 이석기 전 의원에게 남긴 마지막 필담, “백배 천만배 더 ♡”. 이석기의원 내란음모사건 피해자 한국구명위원회 제공
이석기 전 의원 가족의 끝없는 비극

2002년 4년간 수배 끝에 체포당하자
모친 충격속 석방운동하다 암 발병

국방부 근무 넷째누나 경선씨도 고초
다발성경화증 얻어 2005년 끝내 별세

2013년 ‘사법농단’으로 두번째 구속
셋째누나 경진씨 구명운동에 투신
2017년 7월부터 청와대앞 ‘노숙농성’
1000일 넘도록 버티다 지난해 발병

생명을 다하는 그 순간까지 마지막 말씀은 “보고싶은 동생아! 사랑한다”라고 하셨습니다. 직접 손이라도 잡고 목소리라도 나눴으면, 그나마 이렇게 추모의 글을 쓰는 지금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있겠습니다.

이석기 전 의원의 셋째누나 이경진님은 동생의 석방을 간절히 바라며 청와대 앞에서 1000일 이상 풍찬노숙을 하시다가 지난해 7월 희귀성 갑상선암이 발병하여 성대 제거수술을 하는 바람에 말씀을 못하셨습니다. 그래서 필담을 해야 했습니다. 임종 직전 마지막으로 얼굴이라도 보고싶어 이 전 의원의 ‘일반귀휴’를 신청했지만 정부는 허락치 않았습니다. 지난 3월초 가까스로 이뤄진 ‘스마트폰 접견’을 통해 힘겹게 이어진 필담이었습니다. 동영상으로 나눈 마지막 인사의 순간, 이 전 의원이 “누님 사랑합니다”라고 하자, 누나는 “아니야, 내가 백배, 천만배 더 ♡(사랑해)”라고 답했습니다. 그뒤 지난 19일 밤, 이경진님은 그렇게 한을 품은 채 떠나셨습니다.

고인은 1952년 전남 목포에서 이민호·김복순 부부의 2남4녀 중 셋째딸로 태어났습니다. 성균관대를 나온 뒤 국방부 합동참모본부, 주일대사관에서 근무했고, 평소 민들레봉사단을 이끌며 독거노인의 도시락 배달, 역전 주변 노숙자 급식, 미혼모·장애인·보육원 지원 등 봉사 활동에 매진했습니다.

그러다 이 전 의원이 공안사건으로 장기수배 끝에 2003년 3월 구속되자 고인은 막내동생의 석방운동에 뛰어들었습니다. 다행히 그해 8·15 특사로 풀려난 동생은 2012년엔 19대 국회의원(통합진보당·비례)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민주와 통일을 위한 의정 활동을 펼친 것도 잠시, 박근혜정권의 사법농단으로 이 의원은 2013년 8월 옥에 갇히고 말았습니다. 또다시 동생의 구명운동에 나선 그는 촛불혁명으로 들어선 문재인 정부에서는 ‘내란 음모와 국가보안법 위반’이라는 구시대적 올가미를 당연히 벗겨줄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2017년 7월 8·15 특사를 앞두고 시작한 청와대 분수대 앞 1인 시위는 1000일이 넘도록 메아리 없는 외침이었고, 그리고 끝내 아무런 답을 듣지 못한 채 고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지난 20일 ‘2박3일 귀휴’를 받아 7년 만에 외출을 나온 이석기(오른쪽) 전 의원이 고 이경진씨의 빈소를 지키고 있다. 이석기의원 내란음모사건 피해자 한국구명위원회 제공
지난 20일 ‘2박3일 귀휴’를 받아 7년 만에 외출을 나온 이석기(오른쪽) 전 의원이 고 이경진씨의 빈소를 지키고 있다. 이석기의원 내란음모사건 피해자 한국구명위원회 제공

이석기 전 의원이 지난 21일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린 ‘고 이경진씨 추모제’를 지켜보고 있다. 최헌국 목사 제공
이석기 전 의원이 지난 21일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린 ‘고 이경진씨 추모제’를 지켜보고 있다. 최헌국 목사 제공
사실 이 전 의원에게는 불의한 권력에 의한 핍박을 받을 때마다 가족사의 아픔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모친 김복순 여사의 고통이었습니다. 모친께서는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수배를 받아온 아들이 2002년 5월께 4년 만에 돌아온 자택에서 체포당하는 현장을 지켜봐야 했습니다. 아들의 석방을 위해 애쓰다 자궁경부암(3기)이 발병했습니다. 2003년 4월 노무현 대통령 취임특별사면에서 기결 양심수 가운데 유일하게 아들만 누락되자, 휠체어를 탄 채로 과천정부청사 앞에서 농성도 벌였습니다. 그해 6월 모친의 병세가 날로 위중해지자 각계각층의 석방 탄원이 이어졌고, 귀휴를 받아 나온 아들과 ‘7일간의 재회’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뒤 2008년 모친은 돌아가셨습니다.

두번째 비극은 넷째누나 이경선씨와 사별입니다. 2002년 동생이 구속되자 국방부 합참정보본부 부이사관(3급)으로 재직중이던 경선씨는 기무사에서 참고인 조사를 받아야 했습니다. 수배중인 동생에게 이메일과 생활비를 보냈다는 이유로 1주일간이나 이어진 혹독한 조사를 받아 구토와 하혈을 했고 끝내 지병을 얻었습니다. ‘공무원으로서 품위를 손상했다’는 이유로 정직 2개월의 징계도 받았습니다. 부당 징계취소 청구소송을 제기해 2004년 1월께 1심 승소판결을 받았지만, 그 후유증으로 ‘다발성경화증’이 생겼고 그해 11월부터 입원을 하게 됐습니다. 이어 항소심에서도 승소판결을 받았지만, 2005년 4월 ‘22년간 근무했던 국방부’로 돌아가는 꿈을 이루지 못한 채 별세했습니다.

고 이경님이 청와대 앞 농성을 시작할 때부터 옆에서 지켜본 최헌국 목사가 22일 마석 모란공원 묘소에 올린 꽃다발. 최헌국 목사 제공
고 이경님이 청와대 앞 농성을 시작할 때부터 옆에서 지켜본 최헌국 목사가 22일 마석 모란공원 묘소에 올린 꽃다발. 최헌국 목사 제공
22일 경기도 남양주시 마석 모란공원에 잠든 고 이경진님의 묘소. 이석기 전 의원(맨 오른쪽)이 마지막 인사를 하고 있다. 최헌국 목사 제공
22일 경기도 남양주시 마석 모란공원에 잠든 고 이경진님의 묘소. 이석기 전 의원(맨 오른쪽)이 마지막 인사를 하고 있다. 최헌국 목사 제공
그리고 이번에 셋째누나마저 동생의 석방을 이루지 못한 채 이렇게 죽음으로 내몰리게 된 것입니다. 오늘 22일 마석 모란공원의 묘지에 경진씨의 유골을 땅에 묻는 순간, 이 전 의원의 눈에는 핏발이 솟구치는듯 했습니다. 2박3일 짧은 귀휴를 마치고 대전교도소로 돌아간 그의 뒷모습을 차마 지켜볼 수가 없었습니다.

고인의 묘지에 흰 국화꽃 한송이와 노란 프리지어 꽃다발을 놓고 돌아온, 청와대 앞 주차장에는 여전히 고 이경진의 주인 잃은 승용차가 서 있습니다. 풍찬노숙을 시작할 때 도와주지 말고 농성을 극구 말렸으면 이런 안타까운 상황까지는 오지 않았을지 모른다는, 회한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고인에 대한 진정한 추모는 이 전 의원의 석방이라는 다짐을 했습니다.

2017년 7월 8·15 특사를 앞두고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이석기 의원 석방’ 1인 시위를 시작한 고 이경진님은 1000일이 넘도록 노숙하다 죽음의 병을 얻었다. 최헌국 목사 제공
2017년 7월 8·15 특사를 앞두고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이석기 의원 석방’ 1인 시위를 시작한 고 이경진님은 1000일이 넘도록 노숙하다 죽음의 병을 얻었다. 최헌국 목사 제공
이 전 의원은 형기의 80%를 훨씬 넘겨 오늘 현재 만 7년7개월째 수감중입니다. 사면 요건도 충분한 형집행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2018년 공개된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농단 재판 거래’ 문건에 ‘내란음모 사건’이 적혀 있어 재판과정의 공정성에 대한 문제도 확인되었습니다.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의 탄원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카터 전 미국 대통령, 제시 잭슨 목사, 폴 슈나이스 목사, 노엄 촘스키 엠아이티(MIT)대학 교수, 미셸 초서도브스키 캐나다 오타와대 교수 등등. 이제라도 이 전 의원 즉각 석방과 사면 단행 등 촛불 정부의 전향적 조처를 기대합니다.

고인의 마지막 소원이 뒤늦게나마 이뤄져, 국가보안법이 없는, 양심수가 없는 세상을 바라보면서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최헌국/촛불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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