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신이의 발자취] 고 이경진님의 영전에
지난 3월초 스마트폰 접견 때 고 이경진씨가 옥중의 이석기 전 의원에게 남긴 마지막 필담, “백배 천만배 더 ♡”. 이석기의원 내란음모사건 피해자 한국구명위원회 제공
모친 충격속 석방운동하다 암 발병 국방부 근무 넷째누나 경선씨도 고초
다발성경화증 얻어 2005년 끝내 별세 2013년 ‘사법농단’으로 두번째 구속
셋째누나 경진씨 구명운동에 투신
2017년 7월부터 청와대앞 ‘노숙농성’
1000일 넘도록 버티다 지난해 발병 생명을 다하는 그 순간까지 마지막 말씀은 “보고싶은 동생아! 사랑한다”라고 하셨습니다. 직접 손이라도 잡고 목소리라도 나눴으면, 그나마 이렇게 추모의 글을 쓰는 지금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있겠습니다. 이석기 전 의원의 셋째누나 이경진님은 동생의 석방을 간절히 바라며 청와대 앞에서 1000일 이상 풍찬노숙을 하시다가 지난해 7월 희귀성 갑상선암이 발병하여 성대 제거수술을 하는 바람에 말씀을 못하셨습니다. 그래서 필담을 해야 했습니다. 임종 직전 마지막으로 얼굴이라도 보고싶어 이 전 의원의 ‘일반귀휴’를 신청했지만 정부는 허락치 않았습니다. 지난 3월초 가까스로 이뤄진 ‘스마트폰 접견’을 통해 힘겹게 이어진 필담이었습니다. 동영상으로 나눈 마지막 인사의 순간, 이 전 의원이 “누님 사랑합니다”라고 하자, 누나는 “아니야, 내가 백배, 천만배 더 ♡(사랑해)”라고 답했습니다. 그뒤 지난 19일 밤, 이경진님은 그렇게 한을 품은 채 떠나셨습니다. 고인은 1952년 전남 목포에서 이민호·김복순 부부의 2남4녀 중 셋째딸로 태어났습니다. 성균관대를 나온 뒤 국방부 합동참모본부, 주일대사관에서 근무했고, 평소 민들레봉사단을 이끌며 독거노인의 도시락 배달, 역전 주변 노숙자 급식, 미혼모·장애인·보육원 지원 등 봉사 활동에 매진했습니다. 그러다 이 전 의원이 공안사건으로 장기수배 끝에 2003년 3월 구속되자 고인은 막내동생의 석방운동에 뛰어들었습니다. 다행히 그해 8·15 특사로 풀려난 동생은 2012년엔 19대 국회의원(통합진보당·비례)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민주와 통일을 위한 의정 활동을 펼친 것도 잠시, 박근혜정권의 사법농단으로 이 의원은 2013년 8월 옥에 갇히고 말았습니다. 또다시 동생의 구명운동에 나선 그는 촛불혁명으로 들어선 문재인 정부에서는 ‘내란 음모와 국가보안법 위반’이라는 구시대적 올가미를 당연히 벗겨줄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2017년 7월 8·15 특사를 앞두고 시작한 청와대 분수대 앞 1인 시위는 1000일이 넘도록 메아리 없는 외침이었고, 그리고 끝내 아무런 답을 듣지 못한 채 고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지난 20일 ‘2박3일 귀휴’를 받아 7년 만에 외출을 나온 이석기(오른쪽) 전 의원이 고 이경진씨의 빈소를 지키고 있다. 이석기의원 내란음모사건 피해자 한국구명위원회 제공
이석기 전 의원이 지난 21일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린 ‘고 이경진씨 추모제’를 지켜보고 있다. 최헌국 목사 제공
고 이경님이 청와대 앞 농성을 시작할 때부터 옆에서 지켜본 최헌국 목사가 22일 마석 모란공원 묘소에 올린 꽃다발. 최헌국 목사 제공
22일 경기도 남양주시 마석 모란공원에 잠든 고 이경진님의 묘소. 이석기 전 의원(맨 오른쪽)이 마지막 인사를 하고 있다. 최헌국 목사 제공
2017년 7월 8·15 특사를 앞두고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이석기 의원 석방’ 1인 시위를 시작한 고 이경진님은 1000일이 넘도록 노숙하다 죽음의 병을 얻었다. 최헌국 목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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