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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궂긴소식

“선배님 그러셨듯 좋은 책 내는 후배들 격려하겠습니다”

등록 2020-06-26 16:45수정 2022-03-17 12:09

[가신이의 발자취] 고 박종만 까치글방 대표님께

선배님, 지난 일요일 저녁 따님 후영에게서 선배님의 부음을 메시지로 받았습니다. 영면하신 지 일주일이 지난 뒤였지요. 만날 때마다 선배님이 챙겨주셨던 묵직한 책들을 바라보면서 너무나도 황망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최근 들어 한번 뵈어야겠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3월 약속을 말레이시아 다녀오신 뒤에 만나자고 미루셨는데, 그렇게 갑자기 떠나시다니요.

몇달 전 딸들과 함께 식사를 한 게 마지막이 되었네요. 그때 제가 식사 마치고 옷걸이에 걸어 놓았던 코트를 입혀 드렸을 때 보여주셨던 환한 얼굴이 떠오릅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건강이 많이 좋아지셨다고 생각했었는데요.

저에게 선배님은 언제나 큰형님, 진심으로 후배를 응원하고 힘을 주셨던 분이셨습니다. 좋은 책을 내면, 혹은 좋은 일이 생길 때면 언제나 “홍지웅이 이번에도 좋은 일이 생겼네, 축하한다” 하시곤 하셨지요.

선배님, 이제는 뵐 수 없다니, 왜 이렇게 비현실적인 일로 느껴질까요. 선배님은 1년에 네댓 번씩 밥을 사주시곤 했지요. 문예출판사 전병석 선배님이 살아계실 적에는 셋이 책에 대한 얘기, 출판계 현안에 대한 얘기를 참 많이 했었는데요. 선배님은 간혹 저에게 전화해서 “이 출판사 사장 아나? 최근에 좋은 책을 냈던데, 그 사장 알면 데리고 나오면 어떻겠노?” 하셨죠. 이렇게 후배들에게 종종 밥을 사주면서 격려해 주곤 하셨지요.

선배님을 떠올리면 항상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반듯한 풍모가 떠오릅니다. 언제나 검은색 혹은 감색의 정장만 입으셨지요. 돌이켜보면 식사하자고 부른 장소도 늘 격식을 갖춘 레스토랑이었던 기억이 납니다. 선배님은 모든 일에 중요한 것을 지키려 하셨지요. 상식과 원칙과 공정한 것을 말입니다. 원고지 몇천매씩이나 되는 책도 손수 일일이 원서와 대조한 뒤에야 출간해야 안심하곤 했습니다.

학생 시절 블라디미르 마야콥스키, 이사도라 덩컨, 반 고흐 등의 전기와 박수동의 <고인돌 시리즈>로 처음 까치글방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제가 출판사를 시작한 지 10년째였던 1996년 선배님을 처음 만났습니다. 에코, 쥐스킨트, 베르베르의 책을 내면서 회사가 조금 안정을 찾아가기 시작할 때였지요. 벌써 24년 전의 일입니다.

하지만 저는 선배님이 내셨던 수백 페이지씩이나 되는 묵직한 우리 시대의 명저들을 낼 엄두를 낼 수 없었습니다. 하나하나 걸작들입니다. 에두아르트 푹스, 빌 브라이슨, 스티븐 호킹, 알랭 드 보통의 책들이 독자들의 큰 호응을 받는 것을 보면서 까치글방의 저력에 놀라곤 했습니다. <앙리 카르티에-브레송 그는 누구인가?>가 판매 1만 부를 넘겼을 때 선배님께서 특히 좋아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선배님, 가슴에 큰 구멍이 하나 뚫린 느낌입니다. 불과 3년 사이에 출판계의 큰 어르신들인 민음사의 박맹호 선배님, 문예출판사의 전병석 선배님 그리고 박종만 선배님조차 떠나시니 허망하기조차 합니다.

이제는 선배님의 길을 가는 후배들이 여럿 있습니다. 선배님이 그러셨 듯이 후배들을 격려하는 일을 조금이라도 하려고 합니다. 선배님, 편히 쉬소서.

홍지웅 열린책들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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