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창영 연세대 명예교수는 대학 총장을 지냈으면서도 “촌놈 출신이라 사진 찍는 데 익숙하지 않다”고 말했다. 실제로 카메라 앞에 서자 인터뷰 때와 달리 어색해하는 모습이 완연했지만, “사진이 잘 나가야 북한 어린이 돕는 회원들도 늘어나지 않겠냐”고 하자 이런저런 ‘포즈’ 요청에 열심히 응했다. 그는 “늘 성실과 근면 같은 기본적 가치를 지키며 살려고 한다”며 “저는 ‘밥 한번 먹자’고 말하면 반드시 먹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한겨레가 만난 사람] ‘함께 나누는 세상’ 정창영 상임대표
“만원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정창영 연세대 명예교수(경제학)가 요즘 사람들을 만나면 먼저 건네는 질문이다. 그가 상임대표로 있는 ‘함께 나누는 세상’이 한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같은 내용의 간단한 설문조사를 했더니, ‘삼계탕 한 그릇’이라는 대답이 가장 많이 나왔다. “1만원이면 북한 어린이 한 명에게 200㎖ 우유 한 팩을 하루에 하나씩 한달 동안 줄 수 있습니다. 어린이는 미래입니다. 하루 330원이면 미래의 희망을 살릴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답을 고민할 때 정 명예교수가 슬쩍 꺼내드는 ‘만원의 행복론’이다.
정 명예교수는 2008년 3월 37년여 교수 생활을 마감한 뒤 북한 어린이 돕기에 나섰다. 처음엔 남북평화재단과 함께 북한 어린이 우유 보내기 운동을 하다가 아예 이를 독립적으로 추진할 기구 결성에 나섰다. 2009년 10월 공동대표 20명, 운영위원 109명과 함께 ‘함께 나누는 세상’을 창립했다. 지난 1월22일 마침내 ‘함께 나누는 세상’ 이름의 우유·분유를 실은 배가 처음으로 인천항을 출항했다. 이후 남북관계가 거친 파도에 흔들리는 가운데서도 매주 금요일 인천항 부두의 ‘희망 출항식’은 끊임없이 이어져오고 있다. “천안함 사건 직후 2주간 유일하게 중단됐지만, 곧바로 재개할 수 있었습니다. 소량이지만 지속적으로 매주 보내는 것, 그래서 남과 북 사이에 신뢰의 기반을 쌓는 것을 굉장히 다행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아직 여름의 열기가 남아 있던 지난 17일 푸른 숲으로 둘러싸인 연세대 알렌관에서 그를 만났다.
- 한달에 1만원이면 북쪽 어린이들에게 매일 우유를 먹일 수 있다고요?
“200㎖ 영유아용 1팩씩을 매일 지원할 수 있습니다. 생후 6달부터 4살까지 어린이만 대상으로 합니다. 북한 당국이 발표한 1990년대 마지막 인구 센서스를 보면, 그런 어린이가 200만명 정도 됩니다. 여러가지 하지 않고 어린이 우유 보내기에만 집중하고 있습니다.”
- 우유를 받는 어린이 수는 얼마나 되나요?
“지금은 그렇게 많지 않아요. 우유팩으로는 4500명 정도 됩니다. 그런데 북쪽에서 값이 싸고 더 많은 아이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 전지분유로 바꿔줄 것을 요청해왔어요. 9월부터 바꿔서 보내는데, 단가가 좀 떨어져서 5300명 정도가 먹을 수 있게 됐습니다.”
우유 한달분 보낼 금액…현 5천여명 수혜
“100만명분 우유 지원하는게 장기적 목표”
연세대 교수 정년퇴임뒤 북한돕기에 헌신 - 중장기적인 목표는 어느 정도로 보시나요? “기업이나 교회, 학교 등의 기관에서도 지원을 받지만, 매달 1만원씩 내는 회원들을 많이 확보해야 자립 기반이 구축됩니다. 다음달 창립 1돌 기념식을 합니다. 그때까지 1만명은 돼야겠다 싶어 열심히 하고 있는데, 쉽지는 않네요. 현재 5300여명인데, 1만명 정도가 되면 자생 기반이 만들어질 걸로 봅니다. 기업 후원은 경기 변동을 타지만, 1만원 회원은 ‘풀뿌리’거든요. 그 정도가 되면 정부의 남북협력기금 지원도 받아서 양을 많이 늘렸으면 싶습니다. 장기적으로는 북쪽 어린이 100만명이 매일 걱정 없이 우유를 먹을 수 있도록 하는 게 간절한 소망입니다. 지금은 너무 미미하지만 꿈은 그렇습니다. 그렇게 되면 저도 직접 북쪽에 가서 탁아소에 들러 어린이들을 보고 오려고 합니다.” 그는 아직 북녘 땅을 밟아보지 못했다. 연세대에서 교수, 총장(2004~2007년)을 지내며 갈 기회가 없지 않았지만, 인연이 닿지 않았다. 우유 보내기를 하면서는 “실무자도 아닌 사람이 너무 나서면 안 되는 것 아니냐, 어느 정도 성과가 나면 그때 가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한다. - 우유는 어디로 전달되나요? “북쪽에서 어디로 보낸다는 것을 다 알려줍니다. 평안남도, 황해도 등등 골고루 가고 있습니다. 물량은 전부 탁아소로 갑니다. 영유아들이 다 탁아소에 있으니까요. 200㎖짜리 조그만 것이라서 어른이 먹게 안 돼 있어요. 북쪽 분들도 그럽니다. 아무리 뭐해도 그걸 어른들이 먹겠냐고요.” - 지난해부터 남북관계가 안 좋은 상황에서 인도적 지원을 하는 데 주변에서 꺼리는 시각은 없나요? “사실 그런 분이 한 분 있었어요. 미국 뉴욕에 사는 동포인데, 지금 같은 상황에서 북한을 지원하면 안 된다고 하시더라고요. 제가 다른 것보다도 영유아들 위한 것이라고 말씀드려서 납득이 됐습니다. 그것 말고는 특별히 반대를 경험하진 못했어요. 인도적 지원 중에서도 영유아를 돕는 데는 광범위한 동의가 있는 것 같아요. 결국 어른들의 잘못으로 아이들이 힘들어지는 건데, 그걸 돕자는 데는 저항감 같은 걸 느껴보지 못했습니다.” - 어떻게 북쪽 어린이 돕기에 나서게 되셨나요?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작년 2월에 65살이 돼서 정년퇴임을 했습니다. 은퇴 뒤 뭐가 제일 보람있을까를 생각해봤어요. 저는 기독교 신자라 하나님 보시기에 뭐가 제일 기쁘실까 고민을 했습니다. 전세계에 어려운 사람이 많지만 북쪽 어린이를 돕는 게 제일 보람있다는 확신을 갖게 됐어요. 지금 ‘함께 나누는 세상’ 사무총장이신 한인철 목사님이 제가 연대 총장을 할 때 교목이셨어요. 그분이 저와 집사람을 초청해 은퇴 축하 점심을 했는데, 거기서 의기투합했어요. 저는 북한을 한 번도 못 갔지만, 여러 번 다녀오신 남북평화재단의 김영주 선생님 말씀이 아이들을 들어보면 깃털 같다고 해요. 키도 남쪽 청소년들과 비교해 평균 16㎝나 작고, 몸무게도 16㎏ 가볍다고 합니다. 세상이 어려워지면 제일 힘든 게 어린이입니다. 그렇게 북쪽 어린이들을 생각하고, 또 남쪽에도 어려운 어린이들이 많아요. 우리 어릴 때만 해도 집안이 어려워도 본인만 열심히 하면 좋은 대학을 갈 수 있었는데, 1980년대 이후론 그게 점점 어려워져요. 계층 상향이동에 교육이 제일 중요한 통로인데, 그게 막히면 공동체 기반이 흔들립니다. ‘함께 나누는 세상’에선 남쪽의 취약계층 아이들을 위한 멘토링 서비스도 같이 합니다. 연세대생들이 찾아가 돕는 프로그램입니다. 앞으로도 다른 사업으로 확대하지 않고 두 가지만 집중적으로 해보려고 합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제일 기뻐할 일이고, 저로서도 가장 보람있는 일이라는 확신이 있습니다.” - 이전부터 봉사활동에 관심이 컸던 모양입니다. “제가 학교 일을 하면서 학생들에게 두 가지를 강조했습니다. 북한에 대해서 늘 생각하고 기도하고 깨어 있어야 한다는 점과, 또 하나는 환경이 21세기에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또 총장을 하면서 특히 강조한 게 ‘섬기는 지도자’가 돼야 한다는 점이었어요. 미국 예일대는 학생의 50%가 자원봉사를 합니다. 우리는 한 10~20% 정도예요. 연세자원봉사단을 그때 처음 만들었습니다.” - 홈페이지(jungcy.net)를 보면 ‘남북통일의 정치경제학’을 주요 관심분야의 하나로 꼽고 있고, 북한 경제 관련 논문도 많이 쓰셨던데요. “경제학자들이 분단 현실에 관심을 갖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저도 경제학 입문 초기부터 여기에 대해서 뭔가 해결책이 없을까 책도 많이 보고 그렇게 되더라고요. 특히 1990년대 중반 북한의 대규모 아사 사태를 보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때 <뉴스위크>에 커버스토리로 난 기사 스크랩을 지금도 갖고 있어요. 하지만 당시엔 학교생활에 전념하느라, 학문적 관심을 넘어 실천으로까지 나아갈 시간적 여유가 없었어요. 지금은 시간이 있으니까요.” 천안함 침몰 뒤 2주간 중단 ‘가슴 철렁’
인도적 지원, 남북관계 개선에 큰 기여
“대북관계 ‘20년 자산’ 단절없는 계승을” - 학교 강의에서도 ‘남북관계’를 빼놓지 않으셨다고요. “이전에 전임으로 있을 때는 전통적인 구미 경제학을 주로 가르쳤어요. 그러다가 실제 국민생활과 관련된 것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동양의 전통적인 민본사상은 국민들의 편안한 경제생활을 으뜸으로 여겼습니다. 명예교수가 되면서 2년째 ‘국민경제론’(people’s economy)을 강의하고 있는데, 구미 이론 중심에서 벗어나 현실적으로 한국 사람이 당면한 일자리와 주거 등의 문제를 중점적으로 살펴보고 있어요. 의료보험도 사각지대가 얼마나 많은지, 최소한 아픈데도 돈이 없어 병원에 못 가는 일이 없도록 의료제도를 개혁하는 등의 현실 문제를 짚으려고 해요. 거기서 반드시 가르치는 게 통일 문제입니다. 통일비용과 편익이 얼마인지 같은 논의부터 우리 학생들이 어려운 이웃을 생각하고 재통일을 통해 온전한 국가를 형성하는 방안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도록 문제를 제기하고 있어요.” - 통일이 아니고 재통일이라고 하셨습니다. “전 반드시 재통일이라는 말을 씁니다. 우린 유구한 역사 동안 통일국가였어요. 지난 60년 분단이 길다면 길지만, 상대적으로 작은 기간입니다. 역사적으로 비교적 단기간의 이상현상인 거죠.” - 학문적 출발은 서구 계량경제학이지만, 지금은 ‘실학정신’과도 맞닿아 있네요. “그렇죠. 실사구시, 우리 문제에 대한 탐구가 학문의 진정한 주제라고 봅니다.” - 학생들 반응은 어떻습니까? “학생들이 대개 처음엔 취업에 가장 관심이 많습니다. 아무래도 ‘발등의 불’이니까요. 그러나 젊은 엘리트들은 늘 깨어 있어야 합니다. 국민경제론 강의 마지막 토픽으로 남북문제를 다루는데, 학생들도 나중엔 좋아합니다. 평소에 못하던 생각을 접하게 돼 아주 좋았다고 합니다.” - 남북이 통합 구조로 가기 위해 지금 가장 필요한 일은 뭐라고 보세요? “아주 상식적이지만, 남북관계 개선에는 신뢰가 가장 중요합니다. 인도적 지원은 그런 면에서 상당히 기여할 수 있고요. 남북관계가 어렵다 좋아졌다 부침이 있지만, 그에 관계없이 인도적 지원은 장기적으로 꾸준히 지속되면서 북쪽 주민들에게 ‘남쪽 사람들이 우리 힘들 때 등돌리지 않았다’는 생각을 갖도록 해야 합니다. 중국이 지원하기 전에 남쪽이 먼저 지원하는 건 당연한 겁니다.” - ‘통일세’ 구상에 대해선 어떻게 보십니까? “통일에 대비해 상당한 재정 비축이 필요할 것 같긴 합니다. 우리나라 재정이 다른 나라에 비해 건전한 편인데, 재정의 건전성을 계속 유지하는 게 중요합니다. 그래야 재통일이 됐을 때 필요한 돈을 쓸 수가 있습니다. 한편으로 재통일 비용을 너무 강조하는 경향은 조심해야 합니다. 계산 방식이 언제까지 북한의 소비수준을 남한의 몇% 수준까지 이르게 하려면 얼마가 든다는 식인데, 굉장히 자의적이고 도식적입니다. 통일에 돈이 많이 들지만 비용은 계산하기 나름이고 이익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큽니다. 통일비용을 과다하게 얘기하는 것은 통일에 대한 국민들의 생각을 자꾸 움츠러들게끔 오도할 수 있어요. 비용 계산한 것마다 편차가 너무 크고, 어떤 사람은 중간값을 얘기하던데 무슨 의미가 있는지 의문입니다.” - 정부에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북한이 중국에 너무 의존하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중국이 전세계적으로 광물자원 획득에 노력하고 있는데, 북한의 광물자원 규모가 엄청나요. 정부도 나름의 방침과 원칙이 있겠지만, 너무 어떤 한 형태로 심하게 하기보다 어딘가는 반드시 통로를 열어놔야 합니다. 또 노태우 정부 이래 지난 20여년간 남북관계의 정보와 자산을 다 이어받아야 합니다. 단절 없는 계승이 특히 남북관계에는 필요합니다.” - 끝으로 우유 보내기를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을 하나 꼽아 주십시오. “천안함 사건으로 2주 동안 우유를 보내지 못했을 때죠. 어린이들에게 우유 보내는 게 제일 행복하고 즐거운 일인데, 그걸 못하게 되니까 굉장히 걱정했어요. 그러나 금방 풀렸으니 다행입니다. 같은 말이지만, 지금 하는 일이 제일 보람있고 제일 좋아요. 나중에 나라가 재통일돼서 그 어려운 때 넌 뭐하고 있었느냐고 하면 그나마 할 말이 있을 것 같아요. 지금 하는 일에 아주 만족합니다.” 인터뷰/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우유 한달분 보낼 금액…현 5천여명 수혜
“100만명분 우유 지원하는게 장기적 목표”
연세대 교수 정년퇴임뒤 북한돕기에 헌신 - 중장기적인 목표는 어느 정도로 보시나요? “기업이나 교회, 학교 등의 기관에서도 지원을 받지만, 매달 1만원씩 내는 회원들을 많이 확보해야 자립 기반이 구축됩니다. 다음달 창립 1돌 기념식을 합니다. 그때까지 1만명은 돼야겠다 싶어 열심히 하고 있는데, 쉽지는 않네요. 현재 5300여명인데, 1만명 정도가 되면 자생 기반이 만들어질 걸로 봅니다. 기업 후원은 경기 변동을 타지만, 1만원 회원은 ‘풀뿌리’거든요. 그 정도가 되면 정부의 남북협력기금 지원도 받아서 양을 많이 늘렸으면 싶습니다. 장기적으로는 북쪽 어린이 100만명이 매일 걱정 없이 우유를 먹을 수 있도록 하는 게 간절한 소망입니다. 지금은 너무 미미하지만 꿈은 그렇습니다. 그렇게 되면 저도 직접 북쪽에 가서 탁아소에 들러 어린이들을 보고 오려고 합니다.” 그는 아직 북녘 땅을 밟아보지 못했다. 연세대에서 교수, 총장(2004~2007년)을 지내며 갈 기회가 없지 않았지만, 인연이 닿지 않았다. 우유 보내기를 하면서는 “실무자도 아닌 사람이 너무 나서면 안 되는 것 아니냐, 어느 정도 성과가 나면 그때 가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한다. - 우유는 어디로 전달되나요? “북쪽에서 어디로 보낸다는 것을 다 알려줍니다. 평안남도, 황해도 등등 골고루 가고 있습니다. 물량은 전부 탁아소로 갑니다. 영유아들이 다 탁아소에 있으니까요. 200㎖짜리 조그만 것이라서 어른이 먹게 안 돼 있어요. 북쪽 분들도 그럽니다. 아무리 뭐해도 그걸 어른들이 먹겠냐고요.” - 지난해부터 남북관계가 안 좋은 상황에서 인도적 지원을 하는 데 주변에서 꺼리는 시각은 없나요? “사실 그런 분이 한 분 있었어요. 미국 뉴욕에 사는 동포인데, 지금 같은 상황에서 북한을 지원하면 안 된다고 하시더라고요. 제가 다른 것보다도 영유아들 위한 것이라고 말씀드려서 납득이 됐습니다. 그것 말고는 특별히 반대를 경험하진 못했어요. 인도적 지원 중에서도 영유아를 돕는 데는 광범위한 동의가 있는 것 같아요. 결국 어른들의 잘못으로 아이들이 힘들어지는 건데, 그걸 돕자는 데는 저항감 같은 걸 느껴보지 못했습니다.” - 어떻게 북쪽 어린이 돕기에 나서게 되셨나요?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작년 2월에 65살이 돼서 정년퇴임을 했습니다. 은퇴 뒤 뭐가 제일 보람있을까를 생각해봤어요. 저는 기독교 신자라 하나님 보시기에 뭐가 제일 기쁘실까 고민을 했습니다. 전세계에 어려운 사람이 많지만 북쪽 어린이를 돕는 게 제일 보람있다는 확신을 갖게 됐어요. 지금 ‘함께 나누는 세상’ 사무총장이신 한인철 목사님이 제가 연대 총장을 할 때 교목이셨어요. 그분이 저와 집사람을 초청해 은퇴 축하 점심을 했는데, 거기서 의기투합했어요. 저는 북한을 한 번도 못 갔지만, 여러 번 다녀오신 남북평화재단의 김영주 선생님 말씀이 아이들을 들어보면 깃털 같다고 해요. 키도 남쪽 청소년들과 비교해 평균 16㎝나 작고, 몸무게도 16㎏ 가볍다고 합니다. 세상이 어려워지면 제일 힘든 게 어린이입니다. 그렇게 북쪽 어린이들을 생각하고, 또 남쪽에도 어려운 어린이들이 많아요. 우리 어릴 때만 해도 집안이 어려워도 본인만 열심히 하면 좋은 대학을 갈 수 있었는데, 1980년대 이후론 그게 점점 어려워져요. 계층 상향이동에 교육이 제일 중요한 통로인데, 그게 막히면 공동체 기반이 흔들립니다. ‘함께 나누는 세상’에선 남쪽의 취약계층 아이들을 위한 멘토링 서비스도 같이 합니다. 연세대생들이 찾아가 돕는 프로그램입니다. 앞으로도 다른 사업으로 확대하지 않고 두 가지만 집중적으로 해보려고 합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제일 기뻐할 일이고, 저로서도 가장 보람있는 일이라는 확신이 있습니다.” - 이전부터 봉사활동에 관심이 컸던 모양입니다. “제가 학교 일을 하면서 학생들에게 두 가지를 강조했습니다. 북한에 대해서 늘 생각하고 기도하고 깨어 있어야 한다는 점과, 또 하나는 환경이 21세기에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또 총장을 하면서 특히 강조한 게 ‘섬기는 지도자’가 돼야 한다는 점이었어요. 미국 예일대는 학생의 50%가 자원봉사를 합니다. 우리는 한 10~20% 정도예요. 연세자원봉사단을 그때 처음 만들었습니다.” - 홈페이지(jungcy.net)를 보면 ‘남북통일의 정치경제학’을 주요 관심분야의 하나로 꼽고 있고, 북한 경제 관련 논문도 많이 쓰셨던데요. “경제학자들이 분단 현실에 관심을 갖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저도 경제학 입문 초기부터 여기에 대해서 뭔가 해결책이 없을까 책도 많이 보고 그렇게 되더라고요. 특히 1990년대 중반 북한의 대규모 아사 사태를 보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때 <뉴스위크>에 커버스토리로 난 기사 스크랩을 지금도 갖고 있어요. 하지만 당시엔 학교생활에 전념하느라, 학문적 관심을 넘어 실천으로까지 나아갈 시간적 여유가 없었어요. 지금은 시간이 있으니까요.” 천안함 침몰 뒤 2주간 중단 ‘가슴 철렁’
인도적 지원, 남북관계 개선에 큰 기여
“대북관계 ‘20년 자산’ 단절없는 계승을” - 학교 강의에서도 ‘남북관계’를 빼놓지 않으셨다고요. “이전에 전임으로 있을 때는 전통적인 구미 경제학을 주로 가르쳤어요. 그러다가 실제 국민생활과 관련된 것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동양의 전통적인 민본사상은 국민들의 편안한 경제생활을 으뜸으로 여겼습니다. 명예교수가 되면서 2년째 ‘국민경제론’(people’s economy)을 강의하고 있는데, 구미 이론 중심에서 벗어나 현실적으로 한국 사람이 당면한 일자리와 주거 등의 문제를 중점적으로 살펴보고 있어요. 의료보험도 사각지대가 얼마나 많은지, 최소한 아픈데도 돈이 없어 병원에 못 가는 일이 없도록 의료제도를 개혁하는 등의 현실 문제를 짚으려고 해요. 거기서 반드시 가르치는 게 통일 문제입니다. 통일비용과 편익이 얼마인지 같은 논의부터 우리 학생들이 어려운 이웃을 생각하고 재통일을 통해 온전한 국가를 형성하는 방안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도록 문제를 제기하고 있어요.” - 통일이 아니고 재통일이라고 하셨습니다. “전 반드시 재통일이라는 말을 씁니다. 우린 유구한 역사 동안 통일국가였어요. 지난 60년 분단이 길다면 길지만, 상대적으로 작은 기간입니다. 역사적으로 비교적 단기간의 이상현상인 거죠.” - 학문적 출발은 서구 계량경제학이지만, 지금은 ‘실학정신’과도 맞닿아 있네요. “그렇죠. 실사구시, 우리 문제에 대한 탐구가 학문의 진정한 주제라고 봅니다.” - 학생들 반응은 어떻습니까? “학생들이 대개 처음엔 취업에 가장 관심이 많습니다. 아무래도 ‘발등의 불’이니까요. 그러나 젊은 엘리트들은 늘 깨어 있어야 합니다. 국민경제론 강의 마지막 토픽으로 남북문제를 다루는데, 학생들도 나중엔 좋아합니다. 평소에 못하던 생각을 접하게 돼 아주 좋았다고 합니다.” - 남북이 통합 구조로 가기 위해 지금 가장 필요한 일은 뭐라고 보세요? “아주 상식적이지만, 남북관계 개선에는 신뢰가 가장 중요합니다. 인도적 지원은 그런 면에서 상당히 기여할 수 있고요. 남북관계가 어렵다 좋아졌다 부침이 있지만, 그에 관계없이 인도적 지원은 장기적으로 꾸준히 지속되면서 북쪽 주민들에게 ‘남쪽 사람들이 우리 힘들 때 등돌리지 않았다’는 생각을 갖도록 해야 합니다. 중국이 지원하기 전에 남쪽이 먼저 지원하는 건 당연한 겁니다.” - ‘통일세’ 구상에 대해선 어떻게 보십니까? “통일에 대비해 상당한 재정 비축이 필요할 것 같긴 합니다. 우리나라 재정이 다른 나라에 비해 건전한 편인데, 재정의 건전성을 계속 유지하는 게 중요합니다. 그래야 재통일이 됐을 때 필요한 돈을 쓸 수가 있습니다. 한편으로 재통일 비용을 너무 강조하는 경향은 조심해야 합니다. 계산 방식이 언제까지 북한의 소비수준을 남한의 몇% 수준까지 이르게 하려면 얼마가 든다는 식인데, 굉장히 자의적이고 도식적입니다. 통일에 돈이 많이 들지만 비용은 계산하기 나름이고 이익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큽니다. 통일비용을 과다하게 얘기하는 것은 통일에 대한 국민들의 생각을 자꾸 움츠러들게끔 오도할 수 있어요. 비용 계산한 것마다 편차가 너무 크고, 어떤 사람은 중간값을 얘기하던데 무슨 의미가 있는지 의문입니다.” - 정부에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북한이 중국에 너무 의존하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중국이 전세계적으로 광물자원 획득에 노력하고 있는데, 북한의 광물자원 규모가 엄청나요. 정부도 나름의 방침과 원칙이 있겠지만, 너무 어떤 한 형태로 심하게 하기보다 어딘가는 반드시 통로를 열어놔야 합니다. 또 노태우 정부 이래 지난 20여년간 남북관계의 정보와 자산을 다 이어받아야 합니다. 단절 없는 계승이 특히 남북관계에는 필요합니다.” - 끝으로 우유 보내기를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을 하나 꼽아 주십시오. “천안함 사건으로 2주 동안 우유를 보내지 못했을 때죠. 어린이들에게 우유 보내는 게 제일 행복하고 즐거운 일인데, 그걸 못하게 되니까 굉장히 걱정했어요. 그러나 금방 풀렸으니 다행입니다. 같은 말이지만, 지금 하는 일이 제일 보람있고 제일 좋아요. 나중에 나라가 재통일돼서 그 어려운 때 넌 뭐하고 있었느냐고 하면 그나마 할 말이 있을 것 같아요. 지금 하는 일에 아주 만족합니다.” 인터뷰/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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