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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미디어

조회수가 생존법 된 언론, 좋은 뉴스의 사막화

등록 2021-05-20 04:59수정 2021-05-20 11:51

[저널리즘, 생존 기로에 서다]
신문 독자 디지털로 옮겨갔지만
기업의 보험성 광고로 매출 유지
디지털은 포털에 집중된 경쟁 심각
낚시성 기사·속보 넘쳐 한계상황
게티이미지
게티이미지

ㄱ씨는 2010년대 중반부터 몇해 전까지 5년 동안 한 신문사의 온라인 자회사에서 기자로 일했다. 그는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드라마를 실시간으로 보면서 그들이 하는 대사를 줄줄 기사로 썼다. 그게 네이버 메인에 걸렸다. 처음에는 창피했다. 그런데 메인에 자주 걸리니 연예인도 내 이름을 듣고 알아봤다. 점점 뿌듯해졌다. 메인에 걸리는 게 ‘장땡’이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포털에는 해당 신문사 이름으로 기사가 나갔지만, 일하는 방식은 본사 편집국 소속 기자들과 완전히 달랐다. ㄱ씨는 “기자인데도 데스크가 사무실 밖을 못 나가게 했다. ‘쓸데없이’ 사람 만날 시간에 클릭수를 올리라는 것”이라며 “출근하면 포털사이트부터 살폈다. 포털 메인에 뜬 기사는 (해당 기사를) 긁어서 복사해 내용만 조금씩 바꿔서 내 바이라인(이름)을 붙였다. (회사가) 원하는 트래픽이 나올 때까지 계속 (기사를 포털에) 쐈다”고 말했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다른 신문사에서 일명 ‘포털 대응팀’(가칭) 소속으로 일하는 ㄴ 기자는 “회사 자체 사이트의 트래픽을 올리기 위해서는 네이버 피브이(PV)를 높이는 게 가장 중요하다”며 “요즘 같으면 ‘한강 대학생 사망사건’이 피브이를 뽑기 가장 좋다. 담당 기자들이 직접 취재한 내용 외에도 관련한 내용은 무엇이든 기사화한다”고 말했다.

신문·방송 등 전통적인 언론사의 구독자가 급감하면서 ‘조회수 경쟁’이 언론사들의 ‘유일한 생존전략’처럼 되어버렸다. <한겨레>가 10~14일에 만난 언론계·광고계 종사자, 언론학자 다수는 “현재 언론 생태계는 좋은 저널리즘을 생산·유통하기 어려운 구조적 한계상황에 놓였다”고 입을 모았다. 좋은 저널리즘이 무엇인지는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렵다. 다만 기자 개개인의 ‘노오력’만으로 ‘좋은 저널리즘’이 생존하기 어려운 구조적 문제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열쇳말은 언론사의 ‘밥벌이’다. 김준일 <뉴스톱> 대표는 “저널리즘의 원칙이나 규범이 중요하지만, 지금 한국 언론은 규범 자체가 저널리즘의 ‘먹고사니즘’에 잠식당한 상태”라며 “한국 사회가 언론사와 언론노동자들이 어떻게 회사를 유지하고 돈을 버는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언론재단)도 지난해 발간한 정책 보고서를 통해 “지난 10년은 ‘저널리즘의 시장 실패’로 특징지어진다”며 “이는 ‘광고와 저널리즘의 선순환적 연결고리 해체’와 ‘저널리즘 품질 저하’라는 두 가지 양상으로 나타났다”고 진단했다.

‘독자 크게 준 신문’은 어떻게 유지되나

저널리즘의 위기는 세계적 현상이다. 2009년 스마트폰으로 상징되는 모바일 혁명이 시작되면서 뉴스 생태계의 주도권은 신문·방송 같은 레거시(전통) 미디어에서 구글, 페이스북, 포털 같은 디지털 플랫폼 미디어로 옮겨갔다. 이유는 간단하다. 독자들이 디지털로 옮겨서다. 구글의 광고 수입이 2009년에 견줘 2019년 590% 늘고, 같은 기간 페이스북의 광고 수입이 9100% 늘어나는 동안, 종이신문업계는 사실상 성장을 멈췄다. 종이신문을 통한 뉴스 이용률은 2011년 44.6%에서 2020년 10.2%로 급락했고, 같은 기간 피시(PC)·모바일을 통한 뉴스 이용률은 80%대로 늘었다.

언론재단 연구서를 보면, 지난 5년간(2015~2019) 한국의 신문산업 성장률은 -2.9~-0.6%로 꾸준히 마이너스를 기록했으며, 향후 5년간(2019~2024) 연평균 성장률도 -2.8%로 예측됐다. 그나마 한국은 다른 나라보다 마이너스 성장 폭이 크지 않은 편이다. 2004년 이후 신문 다섯개 중 하나 이상이 문을 닫고 신문산업 고용 규모가 20년 사이 3분의 2가 급감한 미국 같은 국가에 견주면 상대적으로 ‘버틸 만하다’는 의미다.

독자들이 떠나간 신문에 광고가 붙고 총매출액이 유지되는 이유는 뭘까? 관련 업계 종사자·전문가들은 “정치적 영향력에 기반한 ‘보험성’ 광고·협찬이 주 수익원이 된 신문업계의 비정상적인 수익구조 때문”이라고 말한다. 최근 정부가 ‘한국에이비시(ABC)협회 인증 종이신문 부수 부풀리기’ 관행을 적발했는데도, 독자 수와 상관없이 유지되는 신문업계의 기형적 비즈니스 모델은 여전히 공고하다.

광고회사에서 10년 넘게 일한 ㄷ씨는 “민간기업에서는 에이비시 인증 부수를 기준으로 삼지 않은 지 최소 10년이다. 신문이 광고매체로서 기능을 상실하고, 기업들이 마케팅 목적이 아니라 신문사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광고비를 집행한 지 오래됐다”고 말했다.

이 같은 언론사와 기업의 ‘반강제적 공생관계’가 모든 언론에 적용되는 건 아니다. 인터넷을 중심으로 언론사 수가 늘어나는 가운데 ‘사이비 언론’들의 유사언론행위가 이어지자, 광고주들이 공동대응에 나서기도 했다. 광고주협회가 지난해 광고비 기준 2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유사언론행위 피해실태’를 조사한 내용을 보면, “인터넷신문의 지면 창간, 포털 제휴, 기업과의 관계 개선 등을 빌미로 광고 증액을 요구하고는, 반응이 없으면 부정적인 기사를 내보낸다” “전년도 광고집행 금액을 기준으로 올해는 그 이상을 챙겨달라고 압박한다”는 등의 응답이 나왔다.

곽혁 광고주협회 상무는 “한 언론사에 광고를 준 게 드러나면 다른 언론사들이 ‘왜 우리는 안 주냐’고 압박하는 경우가 많아서, 광고 대신 협찬을 하는 비중이 70~80%가량으로 늘어난 상황”이라며 “광고주 입장에선 언론사가 주최하는 포럼·특강을 후원하고, 후원과 별도로 티켓도 사주고, 종이신문 부수 확장도 해줘야 하는 등 금전적 거래의 종류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기자들의 무력감도 커져간다. 한 인터넷 경제신문에서 일하는 5년차 기자 ㄹ씨는 얼마 전 다른 언론사의 경력 채용에 지원했다. ㄹ 기자가 일터를 옮기려고 한 이유는 “내가 열심히 취재해서 진심으로 쓴 기사를 (기업) 광고와 바꿔먹는” 소속사의 경영 행태 때문이었다. ㄹ 기자는 “입사 초기에는 내 기사가 광고 때문에 바뀌었는지 몰랐다. 어느 날 보니 기사가 삭제돼 있거나 (문제점을 짚는 표현이) 순화돼 있었다”며 “나중에는 기업 홍보팀으로부터 ‘이런 기사를 또 쓰면 앞으로 광고를 안 주겠다’는 협박성 말을 듣고, 나 때문에 우리 회사 광고를 빼는 게 겁이 나서 내가 알아서 (표현을) 순화시키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ㄹ 기자는 다른 언론사 면접을 보고는 ‘회사를 옮기면 상황이 나아질까’ 하는 희망마저 접어야 했다. 그는 면접장에서 해당 언론사 편집국장에게서 “우리가 지금 ㄴ기업과 ㄷ기업에서 광고를 못 받고 있다. 네가 입사해서 이곳 기사를 써서 뚫어라. 성공하면 인센티브를 주겠다”는 말을 들었다. ㄹ 기자는 “지금 소속된 곳은 그래도 광고와 연계한 인센티브 제도는 없다. 슬프지만 업계 전반이 어쩔 수 없이 생존에 매달려야 하는 상황이라면, ‘그건 그거고 나는 나대로 기사다운 기사를 쓰려고 노력하면 된다’고 합리화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언론재단의 ‘2019 한국의 언론인 조사’를 보면, 언론인의 68.4%가 ‘현재 우리나라에서 언론의 자유를 직간접적으로 제한하는 요인’으로 광고주를 꼽아, 1위를 기록했다. 이어 ‘편집/보도국 간부’(52.7%), ‘사주/사장’(46.4%), ‘기자의 자기검열’(32.5%), ‘정부나 정치권’(27.4%), ‘언론 관련 법/제도’(25.2%) 순이었다.

신문법이 ‘독자가 기사와 광고를 혼동하지 않도록 명확하게 구분하여 편집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도, 이를 지키지 않는 ‘기사형 광고’가 크게 늘기도 했다. <뉴스타파>는 한국광고자율심의기구 자료를 분석해 ‘기사형 광고’ 편집 기준 위반 건수가 2010년 275건에서 2019년 2044건(12월 제외)으로 늘었다고 보도했다.

포털 ‘가두리양식장’에서 악화가 양화 구축

시대는 언론의 비즈니스 모델에 변화를 요구하지만, 독자와의 관계 구축이 필요한 ‘새로운 체제’로의 전환은 요원하다. 일찌감치 ‘디지털 혁신’에 뛰어든 영미권의 언론사들조차도 디지털 영역에서의 수익 증가가 지면 수익 감소분을 상쇄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더군다나 한국은 뉴스 유통·이용이 네이버·다음 등 포털에 집중돼 있어, 언론사가 플랫폼 기업을 통하지 않고서는 독자를 만나는 일조차 쉽지 않다. 언론재단이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와 함께 한국을 포함한 40개국의 뉴스 소비 현황을 비교한 결과, 한국은 온라인에서 뉴스를 이용하는 다양한 경로 가운데 포털 같은 뉴스수집서비스를 1순위로 이용한다는 응답이 73%로 40개국 가운데 1위를 차지했다. 반면 언론사 자체 사이트나 모바일 앱을 이용한다는 응답은 4%로 40개국 가운데 최하위였다. 데이터 분석업체 ‘데이블’이 지난해 811개 언론사를 상대로 언론사 자체 사이트에 유입된 트래픽 경로를 확인한 결과, 네이버가 43.4%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언론사들이 세우는 ‘디지털 전략’은 기껏해야 어뷰징(낚시성) 기사, 출입처에 기반한 ‘속보성’ 기사를 늘리는 대응 정도에 불과했다. 인터넷매체뿐 아니라 이른바 ‘레거시 미디어’라 불리는 주요 언론사들도 몇몇곳을 제외하곤 포털 이슈에 시시각각 대응하는 전담팀을 운영 중이다. 포털에 ‘복붙’(복사해 붙이기) 한 ‘베껴쓰기’ 기사들이 넘쳐나는 이유다.

포털의 알고리즘은 오리무중이지만, 분명한 건 직접 취재로 품을 들인 기사는 ‘비효율적’이라는 사실이다. 공들여 만든 인터랙티브 콘텐츠는 물론 과거 기사나 주요 자료의 링크도 포털에선 열리지도 않는다. 언론사들은 기획·탐사보도에 대한 유인을 잃고 ‘조회수 저널리즘’ 쪽으로 유혹되기 십상이다. 한 신문사 관계자는 “편집국 안에서 소화하기 힘들지만 조회수가 높은 아이돌 등 연예 부문 기사는 아예 외부 업체와 계약을 맺고 우리 신문 기사인 것처럼 포털에 보내기도 한다”고 말했다.

미국에서는 지역신문 폐업이 급증하면서 지역 단위 일간신문이 단 한 곳도 없는 지역들을 두고 ‘뉴스의 사막’이라고 우려한다. 이정환 <미디어오늘> 대표는 ‘한국형 뉴스 사막’ 현상을 우려했다. 그는 “산재로 사망한 지 15일째가 돼서야 언론에 보도된 이선호씨 죽음이 대표적이고, 기업 의존도가 높아지며 왜곡되기 쉬운 경제 보도, 탐사·기획취재가 아니면 다루기 어려운 소수자 이슈 등에서 ‘뉴스 사막’이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김효실 남지은 기자 trans@hani.co.kr

광고 의존 낮추려 후원회원제 도입
“콘텐츠 차별화·조직적 투자가 관건

‘광고주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독자 기반 수익 모델을 병행하는 언론사가 늘고 있다. 형태는 대부분 ‘후원회원제’다. 온라인 매체인 <오마이뉴스> <프레시안> <닷페이스> 등을 비롯해, 인쇄 매체인 <시사인(IN)> <경남도민일보> <한겨레>도 후원회원제를 도입했다.

전문가들은 “규모가 큰 언론사의 경우 광고 수익을 뒤집을 만큼 후원 수익이 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독자와의 관계·신뢰 구축에 언론 생태계 개선의 실마리가 있다”고 시도 자체는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김동원 언론노조 정책전문위원은 “독자와 언론 종사자의 사이가 매우 멀어져 있다. 시민들은 포털에서 언론을 집합명사로서 비판하고, 언론 종사자들은 ‘시민들은 기획·심층 기사는 선호하지 않는다’고 오해한다”며 “후원 모델은 독자에게 ‘리워드’(보상)를 제공해야 하므로 어떤 방식으로든 독자와의 소통을 늘릴 수밖에 없어서, 언론과 독자의 거리를 줄이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후원회원제의 안정적 정착을 위한 열쇳말로 ‘후원자 관리를 위한 조직적 투자’와 ‘콘텐츠 차별화’를 제시했다. 김영주 언론재단 미디어연구센터장은 “그동안 기성 언론사는 ‘신규 독자’를 끌어들이기 위한 마케팅 비용은 많이 쓰면서 기존 독자 유지에는 비용을 거의 들이지 않았다”며 “후원자들에 대한 조사·분석 자료를 보면 자신의 후원이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 알고 싶어 하는 경우가 많다. 후원 덕분에 어떤 좋은 기사를 어떻게 쓸 수 있었는지에 대해 지속해서 알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정환 <미디어오늘> 대표도 “독자들에게 영합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지속가능한 저널리즘을 지원하는 독자들과의 강한 연대가 필요하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후원할 만한’ 콘텐츠를 제공하기 위한 조직적 차원의 결단도 강조했다. 한선 호남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출입처주의와 연관된 보도 관행의 문제점과 기획·탐사보도의 중요성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지는데도, 언론사들은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아 논의가 평행선을 달려왔다”며 “좋은 저널리즘을 실천하려는 언론사의 노력을 더 가시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최지향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교수도 “그동안 ‘디지털 퍼스트’를 외치는 언론사 경영진의 비전 제시를 보면, 어떤 양질의 기사로 성과를 내겠다는 건지, 저널리즘적 가치를 찾아보기 어려웠다”며 “언론사 차원에서 조직의 미션을 재정비할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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