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법 개정안 둘러싸고 여야 공방
8월 KBS·방문진 이사진 교체 앞둬
정치권 나눠먹기 막을 법 개정 쟁점
8월 KBS·방문진 이사진 교체 앞둬
정치권 나눠먹기 막을 법 개정 쟁점
바른미래당 박주선 유승민 공동대표와 소속 의원들이 5일 오전 국회의사당 중앙홀 계단에서 `방송장악 금지법 처리촉구 및 민주당 규탄대회'를 열고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가 야당 시절 언론장악 방지법 통과를 촉구했던 사진을 세워놓은 채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민주당 새 제안에 한국당 즉각 거부
대신에 민주당이 야당 때 내놓은
‘13명 이사·2/3 합의 특별다수제’ 주장 학계는 시민 참여 모델에 우호적 시선
“KBS 사장 선임 때 시민단 구실 톡톡”
여야 득실따지기에 속도낼지 미지수 ■ 민주당 “공영방송 사장은 국민들이 뽑자” 공영방송을 정권의 나팔수로 이용했던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이를 저지하기 위해 당시 야당이던 더불어민주당이 ‘낙하산 사장’ 방지법을 발의했지만 당시 여당이었던 자유한국당의 전신인 새누리당의 반대로 무산된 바 있다. ‘언론 장악 방지법’이라고 불리는 박홍근 의원안은 2016년 7월 민주당에서 당론으로 결정한 안으로 민주당 의원 등 162명이 공동발의한 안이다. 방송사마다 제각각이었던 이사 수를 동일하게 13명으로 늘리고 사장 선임에서 의결정족수를 다수결이 아닌 3분의 2로 여야가 합의해야 가능한 특별다수제를 도입했다. 당시 여당이었던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이 완강하게 저항하여 국회에서 방치되었는데 정권이 교체되자 이들은 개정안 찬성으로 당론을 바꿔 원안대로 의결을 고집하고 있다. 공수가 바뀐 채 공방을 벌이는 모양새에서 최근 여당은 야당과 협상 과정에서 국민들이 공영방송 사장을 뽑는 ‘국민추천제’를 제안했다. 시청자 100명~200명을 무작위로 선정해 사장을 추천하는 공론화위원회 방식이다. 안정상 민주당 수석전문위원은 “이제 공영방송 사장을 뽑는 권한을 국민에게 돌려줘야 한다. 그게 촛불정국으로 세워진 시대정신에 맞다”며 “연령, 성별, 지역 등을 안배해 선발된 시청자가 사장 후보의 정책발표, 주제별 질의 응답 등 공론화 과정을 거쳐 역량을 평가하고 검증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이 안은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 운영과 최근 양승동 한국방송 사장 선임 과정에서 이사회와 함께 활동한 시민자문단이 호평받은 것을 참조했다. 민주당은 사장은 국민들이 추천하지만, 이사 구성에선 여야 추천 비율을 동수로 하고, 대통령이 추천하는 이사가 이사장을 맡는 안을 제안했다. 공영방송을 관리감독하는 이사회의 여러 역할에서 정치적으로 가장 첨예하게 대립되는 부분은 항상 사장 선임이었다. 이사와 사장 선임을 분리하자는 것은 국민 대표성을 갖되 노골적인 정파성을 최소화할 수 있지 않겠냐는 고민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여야 물밑협상에서 야당은 이 안에 대해 “여당이 제출한 안을 스스로 거부하며 방송법 개정을 무산시키고 그 책임을 야당에 전가하기 위한 꼼수”라고 거부했다. 바른미래당 쪽에선 사장 선임 과정에서 3대 2의 특별다수제를 5대 3으로 수정하자고 역제안했다. 이에 민주당은 정치권력이 공영방송을 배후조종하거나 흔들기하던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것이라며 공격하고 있다. ■ 이사도 국민이 추천?…방통위는 ‘중립이사’ 제안 민주당의 국민추천제는 이재정 민주당 의원이 공영방송에 대한 정치적 영향력을 최소화하자며 지난 5일 발의한 방송법 개정안과 유사하다. 이재정안은 국민 참여 보장을 요구하는 언론시민단체의 견해를 반영한 것으로 ‘국민 대표성을 고려해 100명 이상 홀수의 위원으로 사장추천위원회를 구성한다'는 내용이 뼈대다. 공영방송에 정치권의 개입을 원천 차단하기 위해서는 정부나 국회가 추천하는 방식을 배제하고 온전히 국민에게 넘기자는 안이다. 민주언론시민연합 상임 공동대표인 정연우 세명대 교수는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안은 정치권에서 관행적으로 나눠먹기하던 방식을 봉쇄하는 게 핵심이다. 방송의 독립성 확보와 국민주권 행사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공감이 간다”고 지지했다. 그러나 여전히 이사 선임에 정치권의 몫이 남았다는 점에서 미흡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김동찬 언론연대 사무처장은 “정치권으로부터 공영방송 독립이라는 취치를 살리려면 공영방송 이사 추천권 포기를 선언하고 실천해야 진정성을 믿을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공영방송 이사를 국민이 추천하자는 개정안도 이미 지난해 11월 추혜선 정의당 의원이 발의해 계류중이다. 추 의원은 “지금이야말로 정치권이 공영방송 이사회 구성에 관한 기득권을 내려놓을 때다. 사장을 잘 뽑는 것도 중요하지만 공영방송 전반에 대해 책임을 지는 이사회가 정상화되지 않으면 정쟁의 구도에서 벗어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나름의 법안을 준비중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말 기존의 방송법 개정안(박홍근 안)에 대해 “소신있는 사람이 방송사 사장하기 어렵다”라며 보완을 요구한 바 있다. 이에 방통위 산하 방송미래발전위원회는 새로운 법 개정안을 준비해 지난달 초안을 공개했다. 공영방송 이사 정원의 3분의 1을 정파성에 치우치지 않는 중립지대 이사로 구성하고 이들 이사 임명에 대한 상호 견제, 거부권을 도입했다. 여당 전횡을 막고 야당의 지배력도 줄여 기존안들보다는 참신하다는 평가를 받지만 정치권에서는 자신들의 입지가 줄어든다는 점에서, 언론노조 등 시민사회에선 정부와 국회의 추천이 여전하다는 점에서 한계를 보이고 있다. ■ 시민 참여는 어떻게? 공영방송 사장 선임을 둘러싸고 ‘시민 참여론’이 제기된 데 대해선 긍정적 평가가 많다. 한국방송 이사인 강형철 숙명여대 교수는 지난번 양승동 사장 선임에서 치렀던 150명 규모의 시민자문단에 대해 “참여한 시민들의 생각이 열려 있고 합리적 집단지성을 보였다”고 말했다. 당시 평가 때는 시민자문단 의견이 40%, 이사회가 60% 비율로 반영됐는데, 국민추천제를 실시하려면 <한국방송>의 이사회 평가처럼 전문성을 보완할 수 있는 또다른 장치가 필요하다는 견해도 있다. 정치권에서 ‘전리품 나눠먹기’식을 배제하는 데는 공감하나 시민참여 몫이 단체가 아닌 개인으로 구성되면 정파성이 여전할 것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최우정 계명대 교수는 “우리 사회의 다양성을 재정립해 검증된 단체로 대표성과 전문성이 반영되었으면 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각계 대표, 주류문화뿐 아니라 소수자 목소리를 대변하는 단체 등으로 방향성과 가치를 반영하는 게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독일 공영방송에서 각계 대표가 참여하는 방송평의회 모델을 예로 들었다. 방송법, 방문진법 등 방송관계법이 잇따르고 있지만 정치권의 논의가 속도를 보일지는 미지수다. 정부여당이 어떤 안을 내놓더라도 야당에선 득실을 따질 것이고, 여당도 여러 안 가운데 압도적으로 우수한 안이 아니면 되레 혼란이 가중될 수 있다. 자칫 시간끌기로 논의 자체가 수면 밑으로 잠복될 수도 있어 정치권의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문현숙 선임기자 hyuns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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