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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과의 전쟁”… 비망록 곳곳에 보도통제 압박감

등록 2016-07-03 18:19수정 2016-07-04 11:19

세월호 축소보도 외압 고발한 김시곤 KBS 전 보도국장

보수정권서 보도국장으로 낙점
4대강 비판보도 불방시키는 등
‘방송 공정성’과는 엇갈린 행보

보수 성향이지만 주류 세력과 거리
고집 세고 자존심 강한 성격에
보도개입 겪으며 ‘폭로’ 이어진 듯
김시곤 전 <한국방송>(KBS) 보도국장.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김시곤 전 <한국방송>(KBS) 보도국장.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방송 장악’에 골몰하는 보수 정권 아래에서 공영방송 보도책임자까지 오른 김시곤 전 <한국방송>(KBS) 보도국장이, 거꾸로 정치권력의 방송 장악을 폭로하는 ‘내부고발자’가 될 것이라 예측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세월호 참사를 ‘교통사고’와 비교하는 발언을 했다고 알려져 사퇴 및 사과 요구를 받던 김 전 국장은, 2014년 5월9일 갑자기 기자회견을 열어 길환영 전 사장의 ‘보도 개입’ 실태를 폭로하며 국장직을 사임했다. 그의 폭로는 2년이 지난 지금도 그가 재직 시절 기록해둔 ‘국장업무 일일기록’(비망록), 이정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과의 통화 녹음 등으로 되새겨지며, 여전히 충격파를 일으키고 있다. 특히 한국방송 구성원들은 “김 전 국장은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궁금해한다. 그동안 그들이 경험했던 김 전 국장은 ‘방송 독립’을 외치는 ‘투사’와는 거리가 먼, ‘의외의 인물’이기 때문이다.

여전히 한국방송 직원이지만 안팎의 접촉을 모두 꺼리고 있는 김 전 국장은 <한겨레>의 인터뷰 요청에 “그럴 처지가 못 된다. 미안하다”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다만 그 앞에 “공영방송 지배구조 관련해서는 정말 할 말이 많지만”이라는 단서를 붙였다. 그동안 ‘보도 개입’ 관련 증거를 공개하도록 김 전 국장을 설득해온 김주언 전 한국방송 이사는 “현재 그는 공영방송 정상화를 위해 지배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30년 전 전두환 정권의 ‘보도 지침’을 폭로했던 김 전 이사는, 말하자면 언론계의 ‘공익제보자’ 또는 ‘내부고발자’ 선배다. 그는 “언론 역사에 기억되는 일이 될 것”이라며 김 전 국장을 설득했다고 한다.

김 전 국장은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출신으로, 1987년 한국방송에 기자로 입사해 모스크바 특파원, 사회부 사건 데스크, 경제팀장, 취재주간 등을 거쳐 2013년 1월 보도국장이 됐다. 박근혜 정부 출범 즈음이었으므로, 정부의 방송 장악을 경계하고 ‘방송 공정성’을 요구하는 내부의 목소리와 충돌이 불가피했다. 당시 전국언론노조 한국방송본부(새노조)가 발행한 노보를 보면 “조직원들로부터 극도의 불신을 받고 있는 김시곤 보도국장을 당장 보직 해임하라”는 요구가 나오기도 한다. 4대강 비판 보도를 불방시킨 이력, 편성규약에 따른 ‘보도위원회’를 무력화하려던 시도, 박근혜 정부의 ‘공약 파기’를 “‘공약 수정’이라 해야 한다”는 발언 등의 행적이 집중적인 비판 대상이었다.

다만 김 전 국장은 김인규 전 사장, 고대영 현 사장, 정지환 현 보도국장 등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한국방송 보도국의 ‘주류 세력’과는 거리가 있는 편이었다고 한다. 한국방송 출신의 한 기자는 “기본적으로 보수적인 인물이지만, 정치권과 끈끈한 관계를 과시하는 일부 세력과는 다른 모습을 보였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했다. 이 때문에 그가 보도국장이 됐을 때, 내부에서는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김 전 국장에 대한 평가에는 성격에 대한 언급이 꼭 포함되곤 한다. 한 한국방송 기자는 김 전 국장에 대해 “의리를 중시하는 등 세간에서 흔히 얘기하는 ‘남자다운’ 성격”이라고 말했다. 새노조의 과거 노보에는 “후배들로부터 ‘바이어스’가 강하고 고집이 센 인물이란 평가를 받는다”는 표현이 나온다. 김 전 국장은 대학 시절 역도부 활동을 했을 정도로 운동을 좋아하며, 후배 기자들에게 팔씨름을 제안하는 등 ‘힘자랑’하는 모습을 곧잘 보였다고 한다. 언론운동을 하는 후배들을 아예 ‘적’으로 보는 일부 간부 출신 선배들과는 달리, 대안언론으로 자리를 옮긴 후배와도 가끔 만나 술잔을 기울인다고 한다.

이를 종합적으로 보면, 고집이 세고 자존심 강한 그의 성격적 측면이 ‘보도 개입’과 같은 억압적인 환경을 만나자 ‘내부고발’에까지 나서게 된 것 아니냐는 풀이가 지배적이다. 김주언 전 이사는 “보도국장을 맡은 뒤 실제 ‘보도 개입’을 경험하면서 점차 생각이 변한 것으로 보인다. ‘보도 개입 ’ 실태를 매일매일 기록 (비망록)으로 꼼꼼하게 정리해뒀는데, 방송 독립에 대한 기본적인 신념이 없었으면 그런 기록도 남기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비망록’을 보면 ‘보도국장직 수행 지침’이라는 제목으로 정리해둔 문장들이 특히 눈에 띈다. “정치권과의 전쟁, 사장과의 전쟁, 본부장과의 전쟁, 부하들과의 전쟁, 노조와의 전쟁이다. 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바로 죽음이다” “케이비에스가 신뢰를 잃는 것은 순간이요, 신뢰를 회복하는 것은 긴긴 시간이다” “사장이나 정치권과는 ‘불가근불가원’이다” “사장의 개입이 도저히 감당이 안 되면 시스템을 만들고 외부에 고발하라” “되도록이면 이른바 정무적 판단을 배제하라” “케이비에스 뉴스는 대통령을 위한 뉴스, 사장을 위한 뉴스가 아니라 시청자를 위한 뉴스여야 한다” “사장과 본부장은 비정규직이지만 나는 정규직이며 기자들의 대표인 보도국장이다” “여기(보도국장직)까지 온 것도 과분한 복이라 생각하고 더 이상 욕심 부리지 말라” 등이다.

지난주 언론단체에서 ‘이정현-김시곤 통화 녹음’을 공개했을 때, 유경근 4·16세월호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은 “그동안 김 전 국장이 ‘교통사고’ 발언에 대한 유가족들의 항의 때문에 사퇴한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청와대가 유가족 요구를 핑계로 순순하지 않게 굴었던 그를 사퇴시킨 것이었다”고 말했다. 또 김 전 국장에 대해 “그렇게 잘했다고 하기도 어렵고… 유가족들과는 ‘애증의 관계’라고 할 수 있다”고 했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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