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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전망대] ‘성완종 리스트’ 규명에 모든 취재역량 투입을 / 성한표

등록 2015-04-13 20:30수정 2015-04-14 10:15

지금 우리나라의 어지러움은 ‘천하대란’이라는 표현으로도 모자라는 심각한 상태다. 대기업들이 천문학적인 사내 유보금을 쌓아두고도 투자를 하지 않아 청년들이 일자리를 찾을 수가 없고,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들이 광화문 광장에 나와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1년째 응답 없는 호소를 이어가고 있다. 한반도를 미-중 대립의 최전방으로 만들, 미국 사드, 곧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의 한국 배치를 둘러싼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게다가 이 난제를 풀어내야 할 국정 최고 책임자들이 무더기로 수뢰 의혹에 휘말려 있다. 박근혜 정부의 전·현직 비서실장 3명과 현직 국무총리, 대선 당시의 중앙선대위 조직총괄본부장을 포함한 8명의 고위직 인사들을 금품 제공 대상자로 적시한 ‘성완종 리스트’가 그렇다. 이와 같은 위기 상황을 헤쳐 나가려면, 박 대통령이 자신에게 대선 승리를 안겨주었고, 현재의 권력 행사에도 조력하고 있는 이들 핵심 측근의 비리를 철저히 가려내어 응징하고, 새 출발을 하는 길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야 할 쪽은 언론이다. 애초 ‘단순절도’ 사건으로 처리될 뻔했던 ‘워터게이트 사건’을 재선에 성공한 현직 닉슨 대통령의 사퇴로 끌고 간 것은 미국 언론의 끈질긴 추적보도의 힘이었다. 지난 대선 때 박근혜 후보를 지지한 ‘국정원 댓글 사건’이 당시 국정원장의 실형으로 흐지부지 마무리된 것과 대비된다. 경남기업 회장인 성완종씨가 자살을 앞두고 준비한 ‘성완종 리스트’는 그만큼 신빙성이 높다고 보는 것이 정상이다. 검찰이 신속하게 이에 대한 본격 수사에 착수한 것도 그래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권력’에 대한 이제까지의 검찰 수사가 어떤 결말을 가져왔던가를 되짚어보면, 이번 검찰 수사의 결과에 대해서도 큰 기대를 걸기 어렵다. 이럴 때 언론은 어떻게 대응했던가? 검찰 수사를 뒤쫓아 가며, 이를 전달하기에 급급했다. ‘태산을 뒤흔들 듯이 요란했지만, 나온 것은 쥐새끼 한 마리뿐’이라는 속담처럼 수사가 흐지부지 마무리되면, 검찰을 훈계하는 투의 비판기사 한 꼭지로 언론도 손을 떼는 것이 고작이었다.

언론의 이런 무기력한 대응이 이번에는 절대로 되풀이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이번 사태는 지금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이 엄중하기 때문이다. 언론은 편집, 보도국의 전 취재역량을 총동원하여 성완종 리스트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한 추적보도에 투입해야 한다. 추적보도를 통해 검찰이 수사를 이어갈 수밖에 없는 ‘단서’를 끊임없이 제공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언론이 제공하는 단서는 사건의 곁가지가 아니라 핵심으로 파고드는 징검다리가 되어야 한다. 핵심은 두말할 것 없이, 거명된 대통령 측근 인사들의 비리 의혹을 규명하는 일이다. 분석하고 전망하는 일은 곁가지다. 이번 사건이 임박한 4·29 재보선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 하는 전망 같은 것이 대표적인 곁가지다.

성한표 언론인·전 한겨레 논설주간
성한표 언론인·전 한겨레 논설주간
만일 재보선에서 새누리당이 승리하면, 국민이 측근 비리를 용서했다고 ‘분석’할 것인가? 얼마나 황당한 일인가? 예를 들어 이럴 때 측근 비리 의혹의 ‘실체’가 아니라, 재보선 쪽으로 국민의 시선을 돌리게 만들기만 한다면, 그것은 언론이 권력에 줄 수 있는 최대의 ‘선물’이 될 것이다. 언론은 지금 박 대통령 정부에 대해 선물이 아니라 회초리를 들어야 할 때다.

성한표 언론인·전 한겨레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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