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민중민주협의회(민민협)와 민주통일국민회의(국민회의)를 통합해 탄생한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민통련)은 87년 본격적으로 개헌을 통한 군부독재정권 타도 투쟁에 나섰다. 사진은 그해 3월29일 결성식 장면으로, 고 이소선 어머니(둘째 줄 맨 왼쪽), 고 김근태 민청련 의장(둘째 줄 맨 오른쪽), 필자(성유보·뒷줄 맨 오른쪽)의 모습이 보인다. 사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제공
이룰태림-멈출 수 없는 언론자유의 꿈 (89)
1985년 3월29일 역사적인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민통련)이 탄생했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가톨릭노동사목연구소, 대한가톨릭학생총연맹, 한국가톨릭농민회, 한국노동자복지협의회, 자유실천문인협의회, 민중문화운동협의회, 민통련 서울지부, 민통련 경북지부, 민통련 경남지부, 민통련 강원지부 등 12개 단체가 참여했다. 내가 사무국장을 맡고 있던 민주언론운동협의회도 가맹했다.
고문에는 함석헌·김재준·지학순, 지도위원에 고영근·유운필·이소선·함세웅·문정현·유강하·신현봉·이돈명·송건호·김병걸, 의장에 문익환, 부의장에 계훈제·김승훈, 중앙위 의장에 강희남, 감사에 호인수·진관 스님·정동익, 사무처장에 이창복, 민주통일위원장에 김승균, 민생위원장에 이부영이 선임되었다.
사실 학생운동, 청년운동 진영에서는 이미 유신 말기부터 민중의 삶과 생존권 문제, 남북 평화체제 구축 등이 정치적 민주화 못지않게 중요한 운동의 과제라고 믿고 있었다. 이는 전두환 독재 시대에 이르러 기성세대로 그 외연을 넓혀갔다. 여기에 ‘2·12 총선’을 계기로 국민들이 문민정치를 얼마나 열망하는지 확인했다. 하지만 동시에 재야 민주화운동세력은 기성 정치권에서 외면하고 있는 민중운동·통일운동을 국민들에게, 그리고 세계를 향해 본격적으로 제기하기로 결정했다. 그 하나가 84년 등장한 ‘민중민주협의회’(민민협)와 ‘민주통일 국민회의’(국민회의)였으나, 두 갈래의 연대운동은 국민들에게 많은 혼선을 안겨주고 있었다. 이에 이창복·이부영·장기표·임채정·이재오·김종철·방용석·최민화 등이 민민협과 국민회의의 통합 논의에 나섰다. 총선 승리가 통합의 촉매제였다면, 이제 막 싹트기 시작한 지역운동단체들의 ‘연대조직 단일화’ 요구는 촉진제가 되었다.
민통련은 통합 선언문에서 분명한 목표와 지향점을 천명했다. “우리는 분단체제를 극복하고 자주적이고 평화적인 민족통일을 지향한다”고 밝힌 데 이어 통일운동, 노동자의 권리, 농민의 권익, 도시빈민의 생업 보장, 성차별 타파, 공해 추방 운동, 통일 지향적 민족문화, 통일 지향적인 민중적 교육, 대안 민중언론의 창출 등을 제시했다. 70년대 이래 종교계의 민주화운동에 대한 기여를 높이 평가하면서 민중운동에 대한 종교계의 지원 노력과 적극 연대할 것도 다짐했다.
그 무렵 부문운동과 지역운동도 속속 가지를 퍼뜨려 나갔다. 경북민통련(의장 박병기, 부의장 유연창 유강하), 경남민통련(의장 이웅섭), 강원민통련(의장 안승길), 서울민통련(의장 백기완, 부의장 이재오 윤순녀, 사무국장 유영래)이 생겼고, 민중불교운동연합(의장 여익구, 부의장 진관 스님·김래동, 집행위원장 서동석, 기획위원장 현기), 충북민주운동협의회(의장 박용래, 공동대표 정진동 박기식 안순봉, 사무국장 김재수), 충남민주운동협의회, 부산민주시민협의회, 서울노동운동연합(위원장 민종덕, 부위원장 이옥순, 사무국장 이봉우) 등도 결성되었다.
그리하여 그해 9월 개편대회에서는 민통련 가맹 단체가 모두 23개로 늘어났다. 민중불교운동연합, 한국기독교노동선교협의회, 한국기독교농민회총연합회, 민청련, 서노련, 인천지역사회운동연합, 부산민주시민협의회, 충남민주운동협의회, 충북민주운동협의회, 전북민주화운동협의회, 전남민주청년운동협의회 등이 새로 연대했다.
더불어 조직도 대폭 강화되었다. 대변인 김종철, 상임위원장 이부영을 비롯해 노동 조춘구, 농민 배종렬, 청년 김희택, 언론 성유보, 문화교육 채광석, 공해 최열, 민주발전 이재오, 통일 정동년, 인권 곽태영 등 분과위원장이 새로 임명됐다. 지역운동협의회 대표에는 이호웅, 정책연구실장 임채정과 간사 이해찬, 사무총장 이창복과 차장 장기표, 총무국장 장영달과 간사 오경렬·임병주·변인식, 홍보국장 임정남과 간사 박계동·이달원·이윤숙, 사회국장 조춘구와 간사 정선순·이명식, 보도실장 박용수 등이었다.
민통련 운동은 한국 사회에서 민주·통일·민중의 시대를 열기 위한 도전을 본격적으로 전개했다는 의의를 갖는다. 광주민중항쟁 5돌 기념행사를 전국적으로 벌이는 한편, 학생들의 ‘서울 미국문화원 점거농성사건’ 때는 미국의 전두환 독재에 대한 지지와 지원에 대해 강력히 경고했다. 무엇보다도 민통련은 85년 여름 전두환 정권이 ‘학원안정법’을 추진하자, “긴급조치의 재판이 될 것”이라고 보고 종교계와 함께 신속히 범사회적 반대운동을 전개해 결국 제정을 포기시켰다.
성유보(필명 이룰태림·71) 희망래일 이사장
정리도움/강태영
성유보(필명 이룰태림·71) 희망래일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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