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운동은 1980년대 전반기 전두환 정권에 맞선 가장 강력한 저항세력으로 민주화운동을 이끌었다. 사진은 85년 6월28일 구로동맹파업 당시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민통련) 회원들이 구속 노동자 석방을 요구하며 연대농성을 하는 모습. 사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제공
이룰태림-멈출 수 없는 언론자유의 꿈 (85)
1970년대 민주노조운동이 전태일 열사의 죽음에서 출발했다면, 80년대 민주노동운동의 재개도 청계피복노조 복구운동에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80년 ‘5·17 계엄령’으로 수배당해 도피중이던 이소선 어머니는 10월 말 구속됐으나 12월 중순 형집행면제로 석방됐다. 청계피복노조 강제 해산에 저항하다 구속되었던 박계현·김영대·김성민·전태삼·황만호 등도 82년 겨울 모두 풀려났다. 83년 여름 고 조영래 변호사가 쓴 <어느 청년 노동자의 삶과 죽음-전태일 평전>이 출판되었고, 11월에는 마석 모란공원에서 ‘전태일 열사 13주기 추도식’이 열려, 200여명의 참가자들이 마석역까지 거리행진을 벌였다. 84년 3월 ‘청계피복노동조합 복구준비위원회’가 결성되었고, 4월에는 명동성당에서 ‘청계노조 복구대회’가 열렸다. 청계피복노조는 9월과 10월 두 차례에 걸쳐 ‘합법성 쟁취대회’도 열었다.
84년 1월에는 ‘한국노동자복지협의회’(한노협)가 출범했다. 한노협은 “민주노조 건설”과 “노동운동의 통일적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서” 원풍모방, 동일방직, 청계피복, 콘트롤데이타, 와이에이치(YH)무역, 반도상사, 서통, 고려피혁, 동남전기 등에서 활동했던 민주노동운동가들이 만들었다. 천주교와 개신교에서 많은 도움을 주었고, 신부·목사 등 성직자들이 대거 지도위원을 맡아 주었다. 3월10일 노동절을 맞아 노동자, 학생, 시민 등 2천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홍제동성당에서 열린 한노협 창립대회에 나도 동아투위 위원들과 함께 참석했다.
민주노동운동의 부활에 힘입어 ‘블랙리스트 철폐운동’이 탄력을 받았다. 블랙리스트는 노동자의 유일한 자산인 노동력에 대한 일종의 ‘판매금지 처분’이었다. 그런 짓을 하는 회사들을 처벌해야 할 국가가 오히려 앞장서서 ‘블랙리스트’를 주도하고 나선 것이 전두환 시대였다. 특히 ‘블루칼라’ 노동자들은 더 딱한 신세였다. 재벌기업 노동자들은 ‘2등 시민’쯤으로, 중소기업 육체노동자들은 ‘3등 시민’쯤으로 간주되었다.
전두환 정권의 끈질긴 ‘노학연대’ 탄압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의 노동현장 진출로 자극을 받은 노동운동은 84년 이후 곳곳에서 쟁의를 재개했다. 그해 6월 대우어패럴 노조가 쟁의를 벌였고, 85년 4월에는 부평 대우자동차 노조가, 6월에는 구로공단에서 동맹파업이 일어났다. 대우어패럴 노조(위원장 김준용)가 무려 2년간에 걸쳐 투쟁을 벌이자 정권은 공권력을 투입해 간부들을 형사처벌했고, 서울대 출신 송경평이 주도한 대우자동차 부평공장 쟁의 역시 85년 4월의 파업 이후 상당한 성과를 거두자 8명 구속, 1명 해고, 1명 자진사퇴로 해체시켰다.
무엇보다 85년 6월의 구로동맹 파업은 노학연대의 산물이었다. 학생세력의 노동야학과 노동현장 진출로 구로공단 지역에는 200여개의 신규 노조가 생겨났다. 그해 5월1일 ‘메이데이’ 행사를 계기로 대우어패럴 노조가 파업에 돌입했고, 6월 ‘구로지역 노조민주화추진위원회’ 결성에 이어 효성물산·가리봉전자·선일섬유·남선전기·세진전자·롬코리아·삼성제약·부흥사 노조의 동맹파업과 연대투쟁이 일어났다. 83년 결성된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민통련)과 학생운동이 성원했고, 임금 인상을 따내는 노조들이 속속 등장했다. 그러자 정권은 공권력을 투입해 1300여명을 집단해고시키고 44명을 구속했다.
이후 30년이 흐른 지금도 노동자는 ‘1등 시민’이 못 된다. 국민소득 3만~4만달러 시대를 논하고 있는 21세기에도 한국의 이른바 주류 언론들은 노동운동을 ‘귀족노조운동’이라고 매도한다. 노동자들은 보편적 자녀 교육, 노동력 재창조를 위한 최소한의 문화생활과 여가 활동도 누려서는 안 되는 신분인가 보다. 비정규직 노동자 1천만명 시대는 노동자 누구라도 돌연 해고당할지 모른다는 불안과 공포 속에 살도록 강요하고 있다. 더구나 이런 해고 노동자들에게 행정부와 사법부는 “자본가에게 손해를 안겼다”면서 오히려 천문학적 손해배상금을 부과하고 있다. 이는 노동계 전반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
우리는 고 정호경 신부(1982~88년 가톨릭농민회 지도신부)의 말을 되새겨 봐야 한다. “우리는 일하는 사람 속에서 일하시는 하느님을 만나게 되니, 일하는 사람을 업신여기는 것은 곧 일하시는 하느님을 업신여기는 것이다.” 그는 ‘농촌 사목’이 아니라 ‘농민 사목’을, ‘노동 사목’이 아니라 ‘노동자 사목’을 강조했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아직도 정 신부의 말을 새겨듣지 못하고 있다. “노동은 신성하다”고 말하면서도 노동자들은 “쓰다가 언제 버려도 좋은 기계 부품처럼” 여기고 있다.
오늘은 5월1일 ‘메이데이’다. 노동이 없으면 자본은 아무짝에도 쓸모없게 된다는 사실을 새삼 되새겨 봐야 할 날이다.
필자/성유보
정리도움/강태영
성유보(필명 이룰태림·71) 희망래일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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