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8월 들어 전두환 국보위 상임위원장이 군복을 벗고 대통령 출마를 기정사실화하자 당시 언론들은 일제히 ‘땡전뉴스’와 ‘전비어천가’를 불렀다. 사진은 전두환 육군 대장의 전역식을 1면 머리기사로 보도한 <조선일보> 80년 8월23일치. <한겨레> 자료사진
이룰태림-멈출 수 없는 언론자유의 꿈 (79)
1980년 ‘5·17 쿠데타’를 기점으로 전두환 정권이 언론계의 민주화세력을 일소하자, 신문과 방송은 일시에 ‘땡전뉴스 시대’로 변했다. ‘땡전뉴스’란 “땡” 하며 밤 9시를 알리는 종소리와 함께 진행되는 지상파 방송의 ‘9시 뉴스’ 첫 소식이 전두환의 동향에 대한 보도로부터 시작된 데서 유래했다. 신군부에 부역 언론인이 그만큼 넘쳐났던 것이다.
“<동아일보>가 특집을 통해서 ‘의협심 많은 청소년 시절’ ‘흰 종이가 까맣게 되도록 글씨 연습’ ‘운동경기에 거의 만능’ 등으로 전두환을 ‘새 시대 새 지도자’로 부각시켰고, <조선일보> 역시 ‘인간 전두환’이란 특집에서 ‘육사의 혼이 키워낸 신념과 의지의 행동’, ‘나보다 국가 앞세워’라며 전두환을 미화했으며, <중앙일보>도 ‘합천에서 청와대까지’라는 제목으로, ‘솔직하고 사심 없는 성품’ 식으로 전두환을 우상화하면서 저널리즘을 배반했다.”(‘김창룡 교수의 미디어 창’, ‘우상화 저널리즘을 경계한다’, <미디어오늘>, 2003년)
미디어오늘은 2003년 민주언론시민연합의 <80년 신군부 부역 언론인 모니터 보고서>도 발췌·보도했다. 80년 8~9월 언론마다 ‘장군에서 대통령으로’ 옷을 갈아입은 전두환에 대한 찬양과 아첨으로 도배한 실상이 역력하다.
‘동아일보-한진수 기자 “새 시대 새 역군으로 신명 바칠 터” “새 시대가 바라는 새 지도자상”(8월22일 전두환 장군 전역식), 김철 기자 “난국 속 영도력 부각” “오도된 가치관 바로…국가지표 뚜렷이”(8월23일 전두환 국보위상임위원장 추대로 본 각계 여론), 최규철 기자 “우국충정 30년” “정직·성실…평범 속의 비범 실천”(8월29일 새시대 기수 전두환 대통령)’ ‘조선일보-남상균 기자 “머리 깎고 금연, 금주, 검은 과거를 씻는다” “땀을 배우는 인간교육장, 불량배 천여명 군부대서 4주간 정신순화 작업”(8월13일 육군○○부대, 삼청교육 현장에서), 이현구·조남준 기자 “평화적 정권교체 전통 수립” “우리에 알맞는 민주 토착화”(8월17일 과도기 단축한 결단, 새 질서 구축 전기로)’ ‘중앙일보-이석구 기자 “솔직하고 사심 없는 성품” “몸에 밴 근검생활, 이권엔 냉정”(8월28일 합천에서 청와대까지-전두환 대통령 어제와 오늘1)’ ‘한국일보-박정수 기자 “국보위가 발표한 ‘사회악 일소 특별조치’는 국민의 생존권마저 위협하는 각종 파렴치한 범법행위를 발본색원, 법과 정의가 지배하는 사회로 탈바꿈시키려는 강력한 의지의 소산”(8월5일 법과 정의가 지배하는 사회로), 윤국병 기자 “최규하 대통령의 사임 발표는 새로운 정치주도세력이 80년대 국가운영의 주역을 맡을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었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를 갖고 있다. 새 시대의 주역은 전두환 국보위 상임위원장이 맡아야 한다는 국민적 합의기반이 다져지고 있다.”(8월17일 새 역사발전 위한 대통령)’ ‘경향신문-김길홍 기자 “새 역사 창조의 선도자 전두환 장군” 시리즈(8월19~23일 4회 연재)’ ‘서울신문-특별취재반(임동주 편집국 차장·유철희 사회부 차장대우·최광일 기자·변우정 기자·강수웅 기자·이상철 기자·안승준 기자) “새 시대를 여는 새 지도자, 전두환 장군” 시리즈(8월19~30일 7회 연재)’
이 찬양과 아첨의 대열에는 국외 특파원들도 대거 동원됐다. 동아일보의 강인섭 기자는 80년 8월9일 “미국은 전두환 장군을 한국의 다음 지도자로 지지하기로 결정했다고 주한미군의 한 고위당국자가 말한 것으로 <로스앤젤레스 타임즈>가 7일 보도했다”고 전했다. 조선일보의 안종익 특파원 또한 8월10일 워싱턴발 기사에서, 미국이 전두환 장군을 지지하기로 결정했다면서 “미국은 한국에 미국식 민주주의를 강요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중앙일보는 워싱턴 특파원 김건진, 도쿄 특파원 김두겸, 홍콩특파원 이수근, 파리 특파원 김재혁 등을 동원해 “미국의 전두환 지지, 일본신문들 크게 보도”, “난국 이기려면 새로운 영도력 필요, 위컴 주한미군사령관이 전두환 지지 발언” 등의 기사를 보도했다. 한국일보의 송효빈 기자는 8월9일 “요미우리, 아사히 등 일본 5대 신문은 미국이 한국의 국보위 상임위원장인 전두환 대장을 지지할 용의가 있다는 의향을 분명히 했다고 8일 보도했다”는 뉴스를 타전했다. 경향신문에서는 정남 외신부장, 장효상 워싱턴 특파원, 이동균 뉴욕특파원, 황동열 도쿄특파원, 장명석 파리특파원 등이 동원되었고, 서울신문에서는 신우식 도쿄특파원이 “한국에서는 전 장군과 같은 강력한 지도자가 요구되며 한반도의 안전과 직결되고 있는 일본으로서는 이 새 지도자를 뒷받침해야 한다는 데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고 치켜세웠다.
이처럼 전두환 독재 찬양 일색이었던 한국 언론들은 지난해 전두환의 부정축재 재산 환수 문제로 국민 여론이 들끓자 일제히 전두환 매도에 동참했다. 살아있는 독재권력 앞에서는 아양 떠는 애완견으로 머물다가, 주검이 된 권력에게는 하이에나로 변하는 이 곡학아세의 한국 언론들을 어이할꼬?
성유보(필명 이룰태림·71) 희망래일 이사장
정리도움 강태영
성유보(필명 이룰태림·71) 희망래일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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