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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찾아서] 정권 탄압에 ‘백지광고’…국민들이 채우다 / 이룰태림

등록 2014-03-16 18:47수정 2018-05-10 13:24

1974년 12월 말부터 시작된 <동아일보>의 ‘백지광고’ 사태는 박정희 유신독재 체제의 실상을 국내외에 알리는 계기가 됐다. 사진은 12월26일치 4·5면에 나간 첫 백지광고(왼쪽)와 같은 날 1면에 실린 이원종 문화공보부 장관의 ‘광고탄압 부인’ 기자회견 기사.(오른쪽) <한겨레> 자료사진
1974년 12월 말부터 시작된 <동아일보>의 ‘백지광고’ 사태는 박정희 유신독재 체제의 실상을 국내외에 알리는 계기가 됐다. 사진은 12월26일치 4·5면에 나간 첫 백지광고(왼쪽)와 같은 날 1면에 실린 이원종 문화공보부 장관의 ‘광고탄압 부인’ 기자회견 기사.(오른쪽) <한겨레> 자료사진
이룰태림-멈출 수 없는 언론자유의 꿈 (52)
1974년 12월 중순부터 시작된 <동아일보>에 대한 광고탄압은 박정희 정권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흘러갔다. 무더기 광고 해약 사태를 맞아 동아일보사 기자들은 12월25일 긴급 기자총회를 열어 ‘광고 철회 경위를 신문과 방송에 자세히 보도할 것, 광고 공간은 백지 그대로 제작할 것’을 건의했고, 그렇게 백지광고가 나가자마자 민주화를 바라는 온 국민의 격려 광고가 봇물처럼 밀려왔던 것이다.

역시나 동아일보사는 박정희 정권의 압력에 대해 당당하게 맞서지 못했다. 회사 쪽은 12월23일 “사내에서 실천특위 모임을 하지 말라”는 지시를 어겼다는 이유로 장윤환 기자협회 동아일보 분회장 등 28명을 징계했다. 고 안성열·김욱한·송경선·박종만·이종덕·고 홍종민·김명걸·정연주·고 심재택·서권석·이부영·김대은·고 김순경·장성원·김민남·김종철·고 강정문·고준환·이계익·양한수 그리고 나까지 22명은 ‘2개월 감봉’(본봉 1할)을 당했다. 정동익·이종대·심송무·문영회·황의방·김양래는 견책 처분을 받았다. 하지만 우리는 “희생 없는 자유, 대가 없는 성취는 없다”면서 모두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대신 총회에서 결의한 ‘백지광고’ 요구는 관철시켰다.

당장 12월26일치 신문부터 ‘백지광고’가 나가자, 기자협회·신민당·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자유실천문인협의회·민주수호국민회의·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등 각계에서 박 정권의 광고탄압에 대한 항의성명을 잇달아 발표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독자들은 성금을 보내주기 시작했다. 기자들은 그 돈을 그대로 받기가 미안했다. ‘국민들도 하고 싶은 말이 많지 않겠는가.’ 그래서 나온 아이디어가 ‘격려광고’였다. 문화부에서 종교계를 담당하던 서권석 기자의 제안이었다. 장 분회장과 김인호 광고국장도 흔쾌히 동의했다. 최초의 격려광고 주인공은 원로 언론인 고 홍종인 선생으로, 12월28일치 2면과 12월30일치 1면 광고란에 5단으로 ‘언론 자유와 기업의 자유’를 적어 실었다.

12월30일치와 75년 1월1일치 신년호부터 1면에 김인호 광고국장 이름으로 자체 광고가 나갔다. “근고(謹告)-의견광고(개인·정당·사회단체의 주의·주장·성명서·진정서·해명서·알리는 말씀 등)는 본보의 논지와는 관계가 없는 유료광고임을 밝힙니다. 누구나 의견광고를 내실 수 있습니다.”

1월1일치 신년호에는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언론탄압에 즈음한 호소문’, 신민당의 ‘인권의 새 시대를 창조하자, 민주언론 돕기 운동을 펴자’, 한국교회여성연합회(회장 고 이우정 교수)의 격려광고가 함께 나갔다. 1월4일치 1면에 자유실천문인협의회 회원 136명 이름으로 실린 “우리는 막걸리값, 소주값을 모아 정의와 자유를 위해 싸우다 위기를 맞은 신문을 위해 작은 광고 지면을 산다”는 격려광고도 화제가 됐다. 정의구현사제단은 ‘암흑 속의 횃불’이란 제목으로 8면 전면에 걸쳐 두번째 의견광고를 내고, 지학순 주교의 양심선언, 간첩단 사건으로 고문치사 당한 고 최종길 교수 추도 미사, 주교회의와 사제단의 인권과 민주회복을 위한 각종 기도회의 메시지 등을 알렸다. 1월6일치에는 천관우 선생이 동아일보 전 주필의 이름으로 ‘동아 광고 비정상 상태에 대하여’라는 개인 격려광고, 수도권특수지역선교위원회(위원장 문동환 목사, 상임위원 조승혁 목사)의 ‘동아돕기’ 호소, 박형규 목사의 <해방의 길목에서> 출판기념 민주회복 강연회 안내 광고 등이 나란히 나갔다.

초유의 광고탄압 사태는 외국에서도 주시했다. 74년 12월27일 미국의 프리덤하우스가 한국 정부에 대해 “광고압력을 중지하라”는 성명을 낸 데 이어, 12월28일에는 일본 교토에서 지식인 25명이 주도한 ‘동아일보 돕기회’가 발족했으며, 이듬해 1월16일에는 영국의 <더 타임스>에도 보도되는 등 세계적인 이슈로 등장했다.

‘백지광고 사태’ 첫날 신민당에서 성명까지 냈는데도 ‘모르는 일’이라고 했던 이원경 문화공보부 장관은 75년 1월4일 연두 기자회견에서도 “동아일보 광고 해약은 광고주와 동아일보사 간의 업무상 문제”라며 “정부는 자세한 사항을 모른다”고 시치미 뗐다.
성유보(필명 이룰태림·71) 희망래일 이사장
성유보(필명 이룰태림·71) 희망래일 이사장

그러자 그때까지는 ‘1단짜리’에 그쳤던 개인 단위 격려광고가 가족·친목 모임·단체로 퍼져나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쏟아져 들어왔다. 그 문안도 하나같이 심금을 울렸다. “언론자유는 민주국가의 생명입니다. 언론은 국민의 것입니다”, “자유의 횃불을 밝히는 기름 한방울의 성의를 표한다”, “돼지 저금통을 깨어 푼돈이나마 성금으로 보내 드립니다”, “술 한 잔 덜 먹고 여기에 마음을 담는다”, “새로 태어날 아기의 자유를 위하여”, “내영아, 결혼을 축하한다. 축하금은 자유를 위해”, “갑근세도 못내는 영세근로자 11명”, “한국적 언론자유는 요렇게 하얗나?”, “방관자여 그대 이름은 비겁자!” 등등, 다 소개할 수 없어 유감이다. 가장 잊혀지지 않는 문구 중 하나는 “동아! 너마저 배신하면 이민 갈 거야”였다.

우리는 격려광고의 홍수 속에서 언론의 자유와 민주화에 대한 국민들의 뜨거운 염원을 새삼 확인했다.

성유보(필명 이룰태림·71) 희망래일 이사장

정리도움 강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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