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12월27일 유신헌법에 따라 박정희가 제8대 대통령으로 취임하자 신문협회와 방송협회 산하 언론사들은 일제히 ‘개헌안에 대한 성명서’를 1면 사고로 실어 지지·찬양했다. 사진은 그해 12월28일치 <동아일보> 1면에 실린 사고(왼쪽)와 서울시내 세종로 네거리에 내걸린 ‘8대 박정희 대통령 취임 축하’ 아치.(오른쪽) <한겨레> 자료사진
이룰태림-멈출 수 없는 언론자유의 꿈 (38)
1972년 10월 박정희가 ‘유신헌법안’을 공고했을 때 가장 충격적인 사실은 신문과 방송들이 ‘유신체제’를 앞장서서 지지·찬양한 것이다. 유신헌법이 통과된 바로 다음날인 10월28일치 <동아일보>를 비롯한 주요 일간지 1면에는 ‘개헌안에 대한 성명서’라는 사고(社告)가 한국신문협회와 각 언론사 이름으로 일제히 실려 있다. 방송사들과 방송협회도 똑같은 사고를 줄줄이 내보냈다.
“한반도를 에워싼 아시아의 판도는 걷잡을 수 없는 복잡성을 내포한 채 격동과 변전을 거듭하고 있다. 이렇듯 긴박한 정세 속에서 자위태세의 강화와 함께 우리의 활로를 스스로 개척하고 민족의 지상과업인 조국의 평화통일 달성을 과감하게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국내 체제의 유신적 개혁과 전 국민 총화에 의한 굳은 민족의 단결이 필연적으로 요청되고 있다. 10월 유신은 이와 같은 명제에 대한 민족적 결단인바,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27일 공고된 새 헌법안은 우리 국민이 국가의 진운과 시대적 사명을 다 같이 짊어지고 전진해야 할 선택된 길임을 확신, 우리 신문협회 회원 일동은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바이다. (…) 우리 신문협회 회원 일동은 시대적 사명 앞에서 새로운 역사 창조와 국가의 명운을 개척하는 데 앞장설 것을 온 국민 앞에 천명하는 바이다.”
당시 동아일보의 젊은 기자들과 <동아방송>의 피디·아나운서 등은, 사주가 ‘유신독재체제’를 “새로운 차원의 민주주의”로 둔갑시키고 그들 스스로가 ‘언론의 자유’보다는 “(독재권력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더 짊어지겠다”는 신문협회·방송협회의 성명에 동참한 사실에 비통한 마음을 금하지 못했다.
사실 신문·방송의 ‘유신 지지 성명’은 한국 ‘제도언론’ 사주들, 고위 경영진이 박정희 정권에 완전히 굴복해 “일체의 뉴스를 국민의 편에 서서 보는 것이 아니라 독재권력의 눈으로 보기로 했다”는 선언과 다름없었다.
흔히 언론은 보도의 기본수칙으로 ‘육하원칙’에 충실해야 한다고들 한다. 언론은 ‘누가·언제·어디서·무엇을·왜·어떻게’를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육하원칙보다 더 중요하고 본질적인 원칙은 ‘뉴스를 국민의 눈으로 보아야 한다’는 명제다. 뉴스를 권력자 편에서 보는 순간, 그 언론은 민주시민들이 배척해야 할 반민주적 언론으로 전락한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72년 언론사 사주와 고위 경영진이 ‘유신 지지 성명’을 낸 순간부터 한국의 신문·방송은 ‘민주언론 대열’에서 이탈했다.
한국 언론이 70년대 초반 이처럼 파멸적 위기에 빠져든 이유에 대해 고 송건호 선생은 ‘권·언 복합체론’을 제기한다. 68년 말 ‘신동아 필화사건’ 때 <조선일보> 주필이자 신문편집인협회 회장이던 최석채의 “이제 신문의 제작권은 기자의 손에서 발행인의 손으로 넘어가게 되었다”는 한탄과 함께. “언론기업이 권력과 유착되고 언론자유를 오히려 적대시하게 된 데는 (…) 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 차관 홍수의 일부가 언론기업으로 흘러 들어가면서 (…) 박정희 정권의 특혜가 권력의 언론 회유에 크게 작용하였다.”(‘박정희 정권하의 언론’ <한국언론 바로보기 100년>, 다섯수레, 2000년)
김민환 고려대 명예교수는 박정희 정권이 ‘언론에 대해 가한 채찍과 당근 정책’에 대해 좀더 소상하게 기술한다. “유신 선포의 사전조치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박 정권은 71년부터 언론사 통폐합에 나섰다.(<대구일보> <대구경제일보> <한국경제일보> <동화통신> <대한일보> <호남매일> <에이케이(AK)뉴스> 폐간, <대전일보> <중도일보>를 <충남일보>로 통합, <전북일보> <전북매일> <호남일보>를 <전북신문>으로 통합, <경기일보> <경기매일> <연합신문>을 <경기신문>으로 통합했다.) 정부 부처의 기자실을 줄이고 프레스카드제를 도입해 상당수 기자들에게 신분증을 발급해주지 않는 방법으로 기자 수를 줄였다.”(<한국언론사론>, 나남출판, 1996년)
물론 박 정권은 당근도 내밀었다. 집권 초기부터 저리자금 융자 지원, 신문용지 원목 수입관세 인하, 세금 감면 등 특혜를 베풀고, 저질 주간신문·스포츠신문 등의 창간을 적극 권장해 오다가, 60년대 중반에는 대기업과 재벌들의 언론 진출, 언론사의 타 업종 진출 등을 적극 장려했다. 이리하여 언론사들은 광고업·레저산업·제지업·운송업·호텔업·문화사업 등에도 진출했다.
재벌의 언론사 소유와 언론사의 재벌화로 언론사 사주들은 점점 더 대중적인 삶과는 거리가 멀어졌다. 재벌이 소유한 언론, 언론재벌과 박 정권의 ‘권언유착’은 ‘유신독재’를 묵인하고 방조하는 주요한 이유가 되었다. 필자/성유보
성유보(필명 이룰태림·71) 희망래일 이사장
정리도움/강태영
성유보(필명 이룰태림·71) 희망래일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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