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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찾아서] ‘반공 대 평화’ 차별성 뚜렷한 7대 대선 / 이룰태림

등록 2014-02-19 19:26수정 2018-05-10 13:14

겨우 90만표 차로 낙선한 신민당 김대중 후보의 ‘부정선거 의혹 제기’를 사이드로 배치한 <동아일보> 1면. <한겨레> 자료사진
겨우 90만표 차로 낙선한 신민당 김대중 후보의 ‘부정선거 의혹 제기’를 사이드로 배치한 <동아일보> 1면. <한겨레> 자료사진
이룰태림-멈출 수 없는 언론자유의 꿈 (35)
1971년 ‘4·27 대선’을 앞두고 ‘40대 기수론’의 깃발을 가장 먼저 들었으나 ‘김대중 돌풍’에 밀려 신민당 후보 지명전에서 패배한 김영삼은 속은 쓰렸겠지만, 기성 정치인들과 달리 군말 않고 “전적으로 승복한다”고 밝혀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그는 이때부터 정치적 대가로 성장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놀라운 사실은 ‘4월 혁명’ 직후 실시된 60년 장면 정부 시대 7대 총선에서 당선된 초선 의원 김대중이 정치 입문 불과 10년 만에 제1야당인 신민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것이었다. 김대중 후보는 그의 돌풍이 일시적 바람몰이가 아니라는 것을 공약을 통해 확실하게 보여주었다. ‘평화통일을 위한 남북 교류 실시’, ‘미국·일본·중국·소련 4대국의 한반도 평화 보장’, ‘자립경제와 빈부격차 완화를 위한 대중경제론 실시’ 등은 정치군인 박정희 후보의 ‘반공’ 일변도 공약과 뚜렷한 차별성이 있었다. 또 당시 학생운동권에서 맹렬히 반대운동을 벌이고 있던 ‘교련제도’에 대해서도 그는 “집권하면 즉각 폐지하겠다”고 약속했다.

‘4·27 대선’은 순식간에 ‘군인정치 대 문민정치’, ‘재벌육성경제 대 대중경제’, ‘반공 대 남북 교류·공존’ 등 대립되는 정치노선을 둘러싼 대회전으로 바뀌었다. 또한 한국 정치의 판도를 개혁세력 대 보수세력의 이념적 경쟁구도로 바꾸어놓았다.
1971년 4월27일 치러진 제7대 대통령 선거에서 박정희는 3선 연임에 성공해 유신독재의 교두보를 확보했다. 사진은 당시 ‘박정희씨 당선’을 머리기사이다. <한겨레> 자료사진
1971년 4월27일 치러진 제7대 대통령 선거에서 박정희는 3선 연임에 성공해 유신독재의 교두보를 확보했다. 사진은 당시 ‘박정희씨 당선’을 머리기사이다. <한겨레> 자료사진

재야와 학생운동권은 ‘4·27 대선’에서 공화당의 관권선거·금권선거를 최대한 저지하기로 하고, 공명선거를 위해 투·개표 참관인을 모집해 파견하기로 했다. 이는 ‘4월 혁명 정신’을 계승·발전한 실천이기도 했다. ‘4월 혁명’이 이승만 독재가 저지른 불법 부정선거에 대한 책임 추궁이었다면, ‘4·27 대선’의 선거참관운동은 사전에 공명선거를 이끌어 “우리 손으로 민주선거를 쟁취하자”는 의지였다.

재야 인사들은 ‘4월 혁명’ 11돌을 계기로 ‘민주수호국민협의회’를 결성해 김재준 목사, 이병린 변호사, 천관우 선생을 공동 대표위원으로 선출했다. 민주수호국민협의회는 “특정 정당이나 특정 인사 지지를 엄격히 배제하며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공명선거 확보에 주력한다”는 목표를 내세웠다. 여기에 학생운동과 기독교 청년운동이 합류했다.

학생들의 선거참관인단 모집·파견 운동은 4월19일 ‘민주수호전국청년학생연맹’을 결성하면서 본격화되었다. <동아일보>는 4월23일치 사회면에서 ‘공명 염원 가득한 캠퍼스-데모 그친 학생들 4·27 적극 참여 자세’란 제목으로 이를 응원했다.

‘4월 혁명’, ‘6·3 한일회담 반대운동’에 참여했던 기독교 소장 청년운동가들도 4월21일 민주수호기독청년협의회를 결성하고 ‘민주적 선거 쟁취를 위한 전위행동대’로 나설 것이라고 선언했다. 한국기독학생회총연맹(회장 양국주·연세대 3년), 전국신학생연합회(회장 허달수·장로교신학대 3년), 서울지구교회청년협의회(회장 김영수·한양대 3년) 등 3개 기독학생단체가 참여한 이 협의회는 4월23일 새문안교회에서 ‘민주수호 구국기도회 및 선거참관인 단합대회’를 열어 기세를 다졌다.

신민당은 민주수호국민협의회로부터 신임장을 받은 자원 학생·청년 참관인 6139명을 전국 각 도로 파견했다. 서울지역을 비롯해 경북 250명, 강원 100명, 충북 150명, 전북 200명, 경남 200명, 충남 200명, 전남 100명, 경기 50명을 파견할 수 있었다.(<한국민주화운동사> 제1권·돌베개)

하지만 재야와 학생운동의 염원에도 불구하고, 투표 결과는 ‘박정희 후보 53.2%, 김대중 후보 45.3%’였다. 불과 90만표 차이였다.

‘군인정치’를 종식시키지 못한 것에 크게 실망한 재야와 학생운동은 신민당·국민당·대중당·사회당·민중당 등 야당에 “5·25 국회의원 선거를 보이콧하라”고 요구했으나 야당 정치인들은 이를 거부했다. 그리고 신민당은 ‘4·27 대선’에서는 패배했지만, ‘5·25 총선’에서는 ‘48.8% 대 44.4%’, 의석수 113석 대 89석으로 비교적 공화당과 잘 맞서 싸웠다.
성유보(필명 이룰태림·71) 희망래일 이사장
성유보(필명 이룰태림·71) 희망래일 이사장

제7대 대통령 선거전은 민주화운동 세력에게 몇 가지 교훈을 남겼다. 하나는 민주화운동 세력이 좀더 성장·발전해서 공명선거만 확실히 확보할 수 있다면 철권통치·관권선거·금권선거에 기반한 군인정치를 머지않은 장래에 청산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생겼다는 점이다. ‘4월 혁명’ 직후 일부 학생운동이 제기했던 남북의 대화, 평화공존, 남북 교류협력 주장이 광범위한 지지를 얻어가고 있다는 사실도 확인되었다. 그런 점에서 민주수호국민협의회와 학생운동이 목전의 대선에서 패배한 것에 너무 실망한 나머지 제8대 총선 때 손을 놓아버린 것은 아쉬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필자/성유보

정리도움/강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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