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정권은 1968년부터 남북 대치상황을 빌미로 학생 군사훈련 강화와 향토예비군 창설 등 전 사회의 병영화를 밀어붙여 또다시 대학가의 반대 시위를 불러일으켰다. 사진은 1971년 4월26일 고려대생들이 ‘교련 전면 철폐’ 펼침막을 들고 거리시위에 나서는 모습. 사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제공
이룰태림-멈출 수 없는 언론자유의 꿈 (33)
박정희의 레드 콤플렉스는 ‘동백림(동베를린) 간첩단 사건’과 ‘민족주의비교연구회’(민비연)에 대한 세차례 탄압에서 그친 게 아니었다.
1966년부터 시작된 베트남 파병은 남북관계에도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켰다. 북한은 이를 빌미로 68년 ‘1·21 청와대 습격사건’, ‘미 정보함 푸에블로호 납치사건’, ‘울산·삼척 공비침투사건’ 등을 연달아 일으켰다. 박정희 정권은 이 문제들을 국제정치적으로 풀어가려 하지 않고 사회의 병영화, 학원의 병영화, ‘반공 민주주의’ 강화 등 독재체제를 굳히는 데 이용했다.
문교부는 68년 4월5일 ‘학생군사훈련 강화방침’을 공표하고, “69년 신학기부터 2·3학년 남자 고교생과 학군단(ROTC) 교육을 받지 않는 남자 대학생들에게 군사교육을 실시한다”고 발표했다. 이 군사교육은 70년 2학기부터는 여고생과 여대생에게까지 확대되었다. 앞서 4월1일에는 “싸우면서 일하고, 일하면서 싸우자”라는 구호 아래 ‘향토예비군’ 창설도 공표했다. 이리하여 20살 이상 40살 이하 제대군인 250만명은 다시 ‘예비군’이라는 이름으로 군대체제 속에 편입되었다. 10월에는 모든 국민을 일련번호 속에 통제하기 위한 ‘주민등록법’을 시행했다.
박정희는 이러한 국가지상주의와 반공 민주주의를 온 국민들, 특히 학생들에게 주입하기 위해, 68년 12월5일 자신의 이름으로 ‘국민교육헌장’을 선포했고, 모든 언론은 이를 대서특필했다. 국민교육헌장의 국가지상주의는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는 문장에 드러난다. 우리가 이 땅에 태어난 이유가 오로지 국가 민족을 위해서라는 것이다. 하지만 어떤 인간도 국가나 민족이나 특정 종교의 특정한 목표 실현을 위한 수단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헌장은 분단된 한민족의 의식에 심각한 악영향을 주었다. ‘헌장’이 주장하는 대로 대한민국 국민은 반공 민주주의를 위해 남한 땅에 태어났고, 북한 동포는 공산체제의 전파를 위해 북한 땅에 태어났다면, 우리는 영원히 남북 분단 체제 아래 살거나, 아니면 서로 전쟁을 통해 무력통일에 나설 수밖에 없는 일이다. 결국 헌장에서 말하는 ‘영광된 통일조국’은 이승만이 주장한 ‘북진통일론’의 다른 표현일 뿐인 것이다.
박 정권의 학생군사훈련 도입과 계속적 확대는 당연히 학생운동으로 하여금 ‘학원 병영화 반대운동’을 전개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70년 11월3일 고려대·서강대·서울대·성균관대·연세대 5개 대학 총학생회는 공동선언문을 발표했다. 그럼에도 문교부는 12월27일 ‘대학 교련교육 시행요강’을 발표했는데, 그 뼈대는 대학생 총 수업시간의 20% 정도인 711시간을 교련교육에 할당하며, 대학에 현역 군인들을 배치한다는 것이었다. 박정희는 교련을 강행하는 이유로 “북의 남침이 임박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71년 3월 개학을 하자 학생들의 교련 반대운동이 본격화됐다. 학생들은 교련 강화 추진이 박정희의 장기집권 계획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보고, 대학이 민주화와 민족통일에 기여하기 위해서라도 군사교육은 반드시 철폐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3월23일에는 전국 12개 대학 학생회 대표들이 “대학에 군사교육을 강요하는 목적은 학원을 병영화하여, 무사상·무비판·획일적·맹종적 인간을 양성하려는 데 있다”는 공동선언문을 발표했다. 4월부터는 학생 시위가 시작됐다. 4월2일 연세대, 4월6일 서울대 상대·고려대·성균관대생들이 거리로 나섰다. 시위 학생 20여명은 동아일보사 앞에 몰려와 “동아일보여 각성하라”며 연좌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71년 4월6일치 <동아일보>의 신문의 날 특집 ‘신문에 바란다’에 기고한 <고대신문> 편집장 이방우는 “요즈음 일간 신문들이 ‘대학교련 반대운동’ 등 중요한 기사는 취급하지 않으면서, “대학생 몇%가 술을 마신다”느니,“섹스나 환각제 등에 젖어든다”느니, 극히 일부 있을까 말까 한 사실만 침소봉대한다”, “이때까지 반독재투쟁에 앞장서 권력과 싸워오던 한국 언론이 상업주의의 노예가 된 나머지 언론의 자세가 달라지니 그런 신문을 어떻게 볼까?”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4월14일치 동아일보는 “서울대 문리대·법대·상대·사대·공대, 고려대, 연세대, 성균관대, 경북대, 전남대 등 11개 대학 학생 대표 200여명이 서울대 상대 도서관에 모여, ‘민주수호 전국청년학생연맹’을 결성하고, 교련 철폐운동과 공명선거 캠페인을 병행시키기로 결의했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4월27일로 다가온 제7대 대선을 ‘공명정대하게 치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당면과제라 보고, 교련 반대운동과 선거 감시운동을 병행·결합하기로 한 것이다.
성유보(필명 이룰태림·71) 희망래일 이사장
정리도움/강태영
성유보(필명 이룰태림·71) 희망래일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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