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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찾아서] 박정희가 뿌린 한일조약의 유산 지금도 / 이룰태림

등록 2014-02-05 19:38수정 2018-05-10 11:54

1965년 5월18일 세번째 미국 순방에 나선 박정희 대통령 부부가 워싱턴의 한 호텔에서 열린 환영연에서 존슨 대통령과 인사하고 있다.
1965년 5월18일 세번째 미국 순방에 나선 박정희 대통령 부부가 워싱턴의 한 호텔에서 열린 환영연에서 존슨 대통령과 인사하고 있다.
이룰태림-멈출 수 없는 언론자유의 꿈 (25)
1965년 8월14일 한일조약이 국회에서 비준된 뒤에도 한동안 시위가 계속되었다. 민중당, 통일사회당(대표최고위원 김성숙), 조국수호국민협의회, 대일굴욕외교 반대 범국민투쟁위원회, ‘한비연’, ‘한일협정 반대 서명교수단’ 등이 “야당 없는 공화당만의 국회 비준 통과 강행은 명백한 위헌이며 따라서 비준안은 무효”라고 선언했고, 8월15일부터 월말까지 대학들과 고교들에서 ‘비준 무효’를 주장하는 시위가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박정희 정권은 ‘비준 통과’를 기정사실화하고 학생 시위를 더욱 적극적으로 진압하기 시작했다. 박 대통령은 “데모 학교는 폐쇄조처하겠다”고 엄포를 놓았고, 내무부는 검찰에 대일굴욕외교 반대 범국민투쟁위원회, 조국수호국민협의회, 한일협정 반대 서명교수단, 무궁화애호총연합회, 한국학사청년연맹, 초급대학학생연합회, 범태평양동지회 등 8개 단체의 처벌을 요청했다. 치안국장은 “학생 시위를 반공법 및 내란선동죄로 엄단하겠다”고 나섰고, 문교부 장관은 “데모하는 학생 서클은 해체시켜라”고 각 대학에 지시했다.

박 정권은 그해 8월25일 위수령마저 발동해 서울 일원에 군대를 출동시켰다. 9월26일 본보기로 고려대와 연세대에 군인들을 보내 무력시범을 보이며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다. 그러자 학원가가 조용해지기 시작했다.
당시 방문에서 박 대통령이 딘 러스크 국무장관과 만나 문제의 ‘독도 폭파’ 발언을 한 내용이 담긴 미 정부 문서.
당시 방문에서 박 대통령이 딘 러스크 국무장관과 만나 문제의 ‘독도 폭파’ 발언을 한 내용이 담긴 미 정부 문서.

하지만 한일회담 반대운동은 남북 분단 상황으로 거의 금기시되던 ‘민족자주’의 문제를 중요한 현안으로 국민에게 각인시켰다는 의미를 남겼다. 일본이 한민족에 대한 식민 지배와 아시아 각국에 군국주의적 침략전쟁을 일으킨 데 대해 아무런 반성과 사과도 없이, 예컨대 “다시는 아시아 모든 나라에 군사적 침략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도 하지 않고, ‘한-미-일 반공전선’ 형성이라는 이름으로 슬그머니 ‘우호 선린관계’를 주장한 데 대해 분명한 ‘이의’를 제기한 것이다.

당시 박 정권은 “일제의 36년 강점기는 이미 지난 얘기이고, 앞으로만 사이좋게 지내면 된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과연 그럴까?

최근 한-일 관계에서 가장 큰 현안으로 떠오른 독도 문제만 해도 그렇다. 당시 민주당 국회의원이었던 고 김대중 대통령은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김종필-오히라 메모에는 부대 비밀각서가 있다고 한다. 그 각서에는 한국 공군과 일본 항공자위대가 독도를 폭격연습장으로 사용하여 독도를 폭쇄시키기로 했다고 한다”고 폭로한 적이 있다. 그 폭로가 상당한 근거에 바탕하고 있다는 것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밝혀냈다. <한일협정 반대운동(6·3운동) 사료총집>(2권 231쪽)을 보면, 65년 5월18일 세번째 미국을 방문한 박정희가 데이비드 딘 러스크 미국 국무장관에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독도를 폭파해 없애버리고 싶다”고 말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이에 대해 러스크는 “미국과 영국 사이에도 100년 이상 미해결된 바위섬들이 존재한다. 미국과 영국은 논의를 마냥 미루고 있다”며 “독도도 한국과 일본이 공동으로 관리하는 등대를 설치하고 누구에게 속하는지를 말하지 않음으로써 그것이 자연적으로 소멸하도록 놔둘 것”을 제안했다고 한다.

이로 미뤄볼 때 박 정권은 65년 한일협정 때 독도 문제를 미해결 상태로 남겨두었음이 확실해 보인다. 이때의 미해결이 오늘날 다시금 한-일 긴장의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아베 정권에 들어와 본격적으로 군국주의로 회귀하고 있는 일본은 한국 쪽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독도는 일본 땅”이라고 점점 더 생떼를 쓰고 있다. 그러나 독도 문제는 일본 사회의 총체적 군국주의화 추세에 비하면 지엽적이다. 일본의 군국주의화는, 최근 중국이 만주 하얼빈에 일본 최초 군국주의자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살해한 ‘안중근 의사 기념관’을 개관하자,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안중근은 테러리스트”라며 한·중 양국에 항의할 정도로 심화되었다.

65년 한일회담 때 한국은, 양국의 새로운 수교가 아시아인의 평화와 공존을 위한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일본에 확실하게 심어줄 필요가 있었다. 그런데 그때 이를 소홀히 하는 바람에 이후 ‘아시아의 평화에 기여하는 일본’이 아니라, ‘새로운 아시아 패권국으로서의 일본’의 야욕을 키워가게 되었다.
성유보(필명 이룰태림·71) 희망래일 이사장
성유보(필명 이룰태림·71) 희망래일 이사장

‘한일회담 반대운동’이 좌절한 데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으나, 나는 무엇보다 ‘6·25 전쟁’으로 민족적 에너지가 너무 소진해버려, 기성세대들이 운동에 동참하는 시기가 너무 늦었다는 점을 꼽고 싶다. 야당 세력이 턱없이 열세인데다 그나마도 박순천 세력이 열에서 이탈하는 바람에 국회조차 무너진 것이 또 하나의 원인이라 할 것이다.

글 이룰태림

정리 도움/강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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