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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찾아서] 좌절 끝에 접한 콘의 ‘민족주의론’ / 이룰태림

등록 2014-01-26 20:52수정 2018-05-10 11:34

1961년 봄 서울대 문리대(왼쪽 사진·동숭동 교정)에 입학하자마자 ‘5·16 쿠데타’를 겪은 필자(성유보)는 한동안 공황 상태에 빠져 있다가 한스 콘(오른쪽)의 ‘제3세계 민족주의론’에 심취해 63년 결성된 학내 서클 ‘민족주의비교연구회’에 가입했다. <한겨레> 자료사진
1961년 봄 서울대 문리대(왼쪽 사진·동숭동 교정)에 입학하자마자 ‘5·16 쿠데타’를 겪은 필자(성유보)는 한동안 공황 상태에 빠져 있다가 한스 콘(오른쪽)의 ‘제3세계 민족주의론’에 심취해 63년 결성된 학내 서클 ‘민족주의비교연구회’에 가입했다. <한겨레> 자료사진
이룰태림-멈출 수 없는 언론자유의 꿈 (18)
1961년 5·16 쿠데타 이후 서울대 문리대는 1년 동안 정신적 공황 상태에 빠졌다고 나는 생각한다. 정치학과 동기생이었던 송철원(현 현대사기록연구원 이사장)은 <아! 문리대>라는 연재 회고록에서 “1962년, 우리는 정말로 술을 많이 마셨다”라고 회고하기도 했다. 서울 출신 학생들은 그나마 형편이 나았다. 지방에서 상경한 학생들은 하숙비, 자취비 조달조차 여의치 않았다. 운 좋게 숙식 제공 가정교사로 들어가면 다행이었다. 대학 내에서 노숙하는 학생들도 적지 않았다. 서울대 문리대 <새 세대 신문>은 이들을 ‘칫솔부대’라고 불렀다.

61~62년 문리대생들은 크게 세 갈래로 흩어졌다. 한 갈래는 송철원이 말하는 ‘낭만파’였다. 나는 ‘막걸리파’로도 불리던 이들과 어울리려 해도, 술을 못 마셔서 자격상실이었다. 실은 신입생 환영회에서 선배들이 주는 술을 멋모르고 다 받아 마셨다가 사흘을 앓아누운 나였다. 또 다른 한 갈래는 이참에 병역문제나 해결하자면서 군대로 갔다. 당시 재학 중에 입영하면 ‘학보병’이라 하여 복무기간을 1년 반으로 단축시켜 줬다. 또 다른 부류는 나처럼 세월만 죽이고 있던 ‘어영부영파’라 하겠다.

대학 생활에 실망했다고 해서 고향으로 되돌아갈 수는 없었다. 8남매의 셋째인 나는 하루빨리 졸업해서 부모님의 교육비 부담을 덜어드려야 했다. 강의에는 별 흥미를 못 느끼고, 달리 시간 보낼 수단은 없고, 주머니는 늘 텅 비어 있고 해서 1학년 때는 주로 기원에서 바둑으로 시간을 죽였다. 수업 빼먹기를 밥 먹듯이 했다.

2학년에 접어들자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이 잘 돌아갔다면 애초부터 내가 왜 정치학과를 지망했겠는가, 자문했다. 그때 내 눈에 들어온 것이 체코 출신의 역사학자 한스 콘의 <민족주의의 이념>이었다. 아마도 어떤 선배가 나에게 권한 책일 것이다. 나의 사상적 수련기가 시작되었다. 대학 생활 동안 가장 열심히 들은 강의가 민병태(작고) 교수가 열강한 조지 세이빈의 <정치사상사>이기도 했다.

한스 콘에 따르면, 근대 민족주의는 17세기 청교도 혁명과 명예혁명을 경험한 영국에서 최초로 일어났다. 청교도 혁명은 양심의 자유와 사상의 자유를 신성한 권리로 확립시켰다. 영국에서 분리·독립한 미국의 혁명정신은 “만인은 평등하게 창조되어 다 같이 창조주에 의해서 일정한 불가양도의 권리, 즉 생명·자유·행복 추구의 권리를 부여받았다”는 이념 위에 기초하고 있었다. 1789년 프랑스 혁명은 근대 민족주의의 완성이자 새로운 출발이었다. 프랑스 혁명의 민족주의는 시민의 본분과 위엄이 정치 활동에 있으며, 그런 본분의 완수는 자기의 민족 국가와 완전히 일치하는 데 있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근대 민족주의는 서양 근대문명의 촉진제였다. 서구 근대문명은 산업혁명, 즉 에너지 혁명을 일으켰고 그들은 세계로 뻗어갔다.

하지만 나는 이 서구의 근대 민족주의가 두 가지 문제를 일으켰다고 생각했다. 하나는 애덤 스미스의 논리, 즉 ‘자유방임주의’로 사회 내에 새로운 부익부 빈익빈의 양극화를 초래하기 시작했고, 다른 하나는 아직도 전근대사회에 머물고 있던 여타 세계에 대해 제국주의적으로 침탈해 들어갔다는 점이다. 이 양대 현상은 서구 문명 내에서는 사회주의 사상과 공산주의 사상이 생겨나게 했고, 비서구 사회에서는 방어적 저항적 민족주의를 생겨나게 했다. 하지만 이 저항적 민족주의는 민주주의 사상 없이는 달성 불가능한 과제였다. 비 서구 사회는 원래의 봉건체제와 도래하는 제국주의 세력이라는 ‘이중의 적’에 부닥쳤다. 제국주의 중에서도 독일의 나치스나 일본 군국주의 같은 파시즘적 근대국가들은 노골적으로 “세계를 정복, 지배하겠다”고 나섰는데, 피식민지 민족을 노예화하려는 파시즘 국가들의 지배를 거부하기 위해서 침략 당하는 여타 민족들은 각자 민주화운동과 민족주의운동을 동시에 펼 수밖에 없게 되었다고 나는 생각했다.
성유보(필명 이룰태림·71) 희망래일 이사장
성유보(필명 이룰태림·71) 희망래일 이사장

더구나 50년대 중반부터 60년대 중반까지는 ‘아시아 아프리카 회의’, ‘비동맹 회의’가 국제적으로 큰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을 때였다. 55년 4월18일 인도네시아의 반둥에서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29개 나라 대표단이 처음 모였다고 해서 ‘반둥회의’라고 불리기도 한 이 회의는 2차 대전 후 세계를 양분하려 하던 미국과 소련의 양극체제에 대해 반기를 들고, 식민주의의 종식을 촉구했다.

내가 이처럼 제3세계 민족주의에 한창 경도되어 있던 63년 가을 문리대 정치학과를 중심으로 ‘민족주의비교연구회’(민비연)가 결성되었다. 나는 주저 없이 ‘민비연’에 가입하였다.

성유보(필명 이룰태림·71) 희망래일 이사장
정리 도움/강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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