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성유보)가 참여하고 있는 고양포럼의 대표인 서광선 박사는 일제와 한국전쟁의 와중에 조부와 선친을 잃는 비극적인 가족사를 넘어서 한반도의 통일을 위한 평화운동에 헌신해왔다. 사진은 서박사가 지난 8일 경기 고양평화누리 평화신년회에서 인사말을 하는 모습. 사진 고양평화누리 제공
이룰태림-멈출 수 없는 언론자유의 꿈 ⑮
2010년부터 고양포럼을 꾸려 이끌고 있는 서광선 박사에게는 남다른 인생사가 있다. 포럼에 참여하면서 와이엠시에이(YMCA)전국연맹 이사장인 안재웅 목사로부터 처음 전해들은 서 박사의 가족사는 너무나도 슬프고 충격적이었다.
서 박사의 할아버지는 일제강점기 의병으로 항일독립운동을 펼치다 감옥에 끌려가 죽음을 당했다. 그러자 할머니는 남편 없이 나라 잃은 세상에서 일본의 노예로 살 수 없다고, 막내아들 서용문만 남겨두고 나머지 아들딸과 함께 자결했다. 홀로 남은 서용문은 백두산 아래 강계의 고모에게 맡겨져 양치기로 자랐다. 학교는 다닐 형편이 못 되었다. 다행히 그는 ‘쪽 복음’이라고 하는 성경을 들고 다니며 전도하는 여전도사의 눈에 띄어 강계 고을로 보내졌고, 평양의 미국 선교사가 세운 학교에서 공부하게 되었다. 신학을 배운 그는 만주 봉천에서 공부를 마치고 태평양전쟁 동안 만주에서 선교 활동을 하다가 8·15 해방이 되자 북한으로 귀국해 공산치하에서 목회활동을 계속했다. 목사가 된 서용문은 4남1녀를 두었는데, 서광선은 그중 장남이었다.
1950년 ‘6·25’가 터지자 북한 정권은 정부 주도의 기독교도연맹 가입을 반대하는 목사들을 감옥에 감금하고 ‘전향’을 강요했다. 이를 거부하는 목사들은 대동강 강변에서 총살형에 처했다. 그해 10월 말 유엔군과 국군이 평양을 탈환하자, 서광선은 대동강변에서 오랏줄에 묶인 아버지 주검을 찾아 묻고, 월남 피난길에 올랐다.
부산에서 해군 소년통신병으로 입대한 서광선은 미 해군 종합학교에서 알게 된 미군 친구의 도움으로 미국에 유학 가, 뉴욕의 유니언신학대 대학원과 내슈빌의 밴더빌트대학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고 귀국한 뒤, 64년부터 이화여대 기독교학과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는 유신시절 학원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80년 신군부에 의해 해직당해 ‘기독자교수협의회’ 회장을 맡기도 했다.
86년 스위스 글리온에서 남쪽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대표들과 북쪽 조선기독교연맹 대표들이 만나 한반도의 분단을 극복하고 화해하고 협력하여 평화통일을 이룩하기 위한 기도와 대화 모임을 열었다. 그 회의에 참석한 서 박사의 고뇌는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아버지의 원수인 북한의 목사들과 악수를 하고 얼굴을 맞대고 화해를 말한다는 것은 순교자 아버지를 배신하는 것이 아닌가 고민하면서 밤을 새워 기도했다고 한다. 기도 끝에 남과 북의 화해와 평화를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버지의 ‘원수’를 올바로 갚는 길이라고 마음먹었다고 한다. 이를 계기로 그는 88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가 발표한 저 유명한 ‘88선언’을 기초했다.
그는 올해 84살 고령임에도 이화여대와 홍콩중문대학의 명예교수이자 남북평화재단 이사장, 고양포럼 대표로서 남북의 화해와 평화운동의 맨 앞줄에 서 있다.
3대째 가족사의 비극을 겪으면서도 남북의 화해와 평화, 그리고 통일운동을 위해 헌신하고 있는 서 박사의 포용력은 어쩌면 넬슨 만델라의 흑백 화합 정신을 넘어선다고 생각한다. 그를 만나면 저절로 옷깃을 여미게 된다.
시인 정희성은 최근 ‘창비 시선 368’로 나온 시집 <그리운 나무>에서 ‘스마트한 전쟁이란 없다’고 읊고 있다.
‘싸움이 정 하고 싶으면 장수들끼리 칼싸움을 하거나/ 말에서 내려와 팔씨름을 하면 된다/ 불안하니까 요즈음 이런 말도 안 되는 꿈만 꾼다/ 남과 북이 전쟁을 하면 누가 이길까/ 그야 물론 미국이 이긴다/ 설사 살아남은 자가 있다 해도/ 그는 다친 다리를 질질 끌며/ 거기 아무도 없소?/ 구석기시대로 갈 것이다.’
시인은 마치 광야에서, 남북한과 국외동포 모두에게 ‘평화운동’을 서두르라고 경고하고 있는 듯하다. 사실 지금껏 우리는 한반도 평화의 구경꾼에 불과했다. 한반도는 앞으로도 강대국 대열에 끼기가 어려울 것이다. 또 그렇게 될 필요도 없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강대국의 밥상 위에 오르는 생선 같은 신세는 거부해야 한다. 민족적 단결만 되면 그런 힘을 행사할 수 있을 만큼 ‘강소국’의 지위에 오르지 않았는가.
문제는 남북 분단이고, 분단된 민족의 대립과 대결이다. 이 적대적 남북관계는 서로가 상대방의 ‘흡수통일’이나 ‘공산 폭력혁명’을 경계하며 한 치도 좁혀지지 않고 있다. 또 정전협정 60년 동안 쌓인 상호불신은 ‘종북세력’이니 ‘종박세력’이니 하는 남남갈등으로 번져나가고 있다. 남한 내부에서조차 이처럼 대립하면서 어떻게 남북대화를 순조롭게 진행하겠는가?
이제 우리 국민들은 더이상 한반도 평화와 안녕을 보장해줄 ‘메시아’를 기다려서는 안 된다. 국민 각자가 ‘진정한 평화운동’에 나서면서 손을 맞잡아야 할 때다. 고양 시민들이 먼저 “우리가 평화다”라고 선언했듯이, 전국 방방곡곡에서 평화운동이 대세를 이룰 때, 마침내 모든 정치세력도 평화정책을 거부하지 못할 것이다.
성유보(필명 이룰태림·71) 희망래일 이사장
정리 도움/강태영
성유보(필명 이룰태림·71) 희망래일 이사장
정리 도움/강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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