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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찾아서] 부정선거 항의한 마산시민에게 총 겨눈 정권 / 이룰태림

등록 2014-01-09 19:06수정 2018-05-10 11:27

1960년 ‘3·15 정·부통령 선거’는 전례없는 불법·부정선거로 야당은 물론 마산을 비롯한 전국 곳곳에서 항의시위가 벌어졌지만 이승만과 자유당 정권은 ‘빨갱이’로 매도하며 당선을 기정사실화했다. 사진은 당시 서울 종로 청진동 자유당 중앙당사 앞에서 시민들이 ‘대통령 이승만, 부통령 이기붕’의 득표 결과 게시판을 보고 있는 모습. 사진 국가기록원 제공
1960년 ‘3·15 정·부통령 선거’는 전례없는 불법·부정선거로 야당은 물론 마산을 비롯한 전국 곳곳에서 항의시위가 벌어졌지만 이승만과 자유당 정권은 ‘빨갱이’로 매도하며 당선을 기정사실화했다. 사진은 당시 서울 종로 청진동 자유당 중앙당사 앞에서 시민들이 ‘대통령 이승만, 부통령 이기붕’의 득표 결과 게시판을 보고 있는 모습. 사진 국가기록원 제공
이룰태림-멈출 수 없는 언론자유의 꿈 ⑦
1960년 3월15일 정·부통령 선거일은 법정 공휴일이라 나는 고향 경산 집에 내려와 지냈다. 당시 대구는 알아주는 ‘야도’(野都)라서 그랬는지, 바로 남쪽 경산에서도 지역 국회의원은 민주당 박해정이었다. 그는 훗날 장면 정부 때 교통부 장관도 지냈다. 그럼에도 그날 경산에서 투표 열기는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이승만 단독 출마로 이미 대통령 당선이나 마찬가지여서인지 어른들이 투표에 큰 흥미를 가지지 못하는 듯했다.

그런데 이튿날 학교에 갔더니 오후 들어 학생들 사이에서 “어제 마산에서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큰 데모가 일어났고, 경찰이 발포해 여러 명이 죽고 많은 사람이 다쳤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나는 하교하자마자 신문을 찾아보았다. <동아일보>는 석간에서 ‘마산에서 3월15일 많은 학생 시민들이 내 표를 돌려 달라면서 오후 3시부터 밤늦게까지 종일 시위를 벌였고, 이날 밤에는 경찰이 가로등을 소등한 가운데 발포해 5~6명이 죽고 70여명이 다쳤으며, 시위대가 오동동·남성동 파출소와 자유당 허윤수 의원 집에 돌을 던지고, 북마산 파출소에 방화하여 전소되었다’고 보도했다. 기사에 뒤이어 3월15일 오후 민주당이 발표한 ‘3·15 선거 불법·무효’ 성명서도 실려 있었다.

3월16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이승만 대통령 당선(89%), 이기붕 부통령 당선(79%)’을 공표하고, 자유당은 “국민의 절대적 신임에 감사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하지만 국민들의 시선은 온통 ‘마산 시민 데모’에 쏠려 있었다.

‘마산 데모’ 이후 1주일 동안 신문의 정치면은 나의 눈을 아주 혼란스럽게 했다. 3월16일 조순 자유당 선전위원장은 “마산 사태는 폭동이며, 경찰은 진압에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했고, 치안국은 ‘민주당 중앙당부 간첩 적발’을 발표했으며, 자유당과 민주당에서는 각각 조사단을 마산에 파견했다. 민족주의민주사회당도 이날 ‘선거 무효’를 선언하고 나섰다.

마산에서는 사망자와 부상자 수가 자꾸만 늘어나고 있었다. 연행된 사람이 학생들을 포함해 200여명이라는 보도가 나오는 가운데, 경찰이 연행자들을 무자비하게 고문했다는 가족들의 항의 목소리가 신문에 실리기 시작했다. 가족들은 연행자들이 총대와 곤봉, 야전침대 각목으로 구타당했으며, 군홧발로 짓밟히기도 하고, 다리 사이에 나무막대기를 끼운 채 발로 밟히기도 했다고 폭로했다. 휴지를 말아 입에 재갈을 물리고는 수갑을 채운 뒤 천장에 매달기도 하고, 물고문을 하기도 했단다. 행방불명된 자녀를 찾으려고 병원이나 경찰서로 찾아온 가족들에게마저 “너도 빨갱이냐?”며 구타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이승만과 자유당은 ‘3·15 마산 시민 데모’에 대한 대응에서 치명적 과오를 저지르고 있었다. 이강학 치안국장은 3월17일 “마산 사건이 공산당과 유사한 수법에 의하여 일어난 증거가 있다”고 발표했다. 이기붕은 “총을 줄 때는 쏘라고 준 것이지 가지고 놀라고 준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해방 정국과 ‘6·25 동란’을 거치면서 당시 ‘빨갱이’로 낙인찍히면 일제강점기의 ‘불령선인’(不逞鮮人)처럼 죽거나, 감옥에 끌려가거나, 최소한 사회에서 완전 ‘왕따’가 되기 마련인데, 마산 시민과 학생 수만명이 그런 신세가 될 판이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3월19일 ‘3·15 선거와 마산 사건’ 담화에서 “비교적 규율 있는 선거가 실시되던 중 선거날 마산에서 지각 없는 사람들의 선동으로 다소 난동이 일어나 살상자가 나게 된 것을 국민과 더불어 유감으로 생각하는 바이다. 보고를 들으면, 특히 마산에서 철없는 어린아이들을 앞장세워 돌질을 하고 경찰을 습격하고 방화하며 가옥을 파괴한 것은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앞으로는 서로 자성 자계하여 두 번 다시 이러한 난동이 없게 하여야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민주당 마산사건대책위원회에 의해, 마산 시위 과정에서 반공청년단과 정치깡패들에게 카빈총 30정이 지급되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대화와 타협의 여지는 점점 더 사라져가고 있었다.

성유보(필명 이룰태림·71) 희망래일 이사장
성유보(필명 이룰태림·71) 희망래일 이사장

본질적 문제는 이승만과 자유당이 불법·부정선거에 대해 추호의 반성도, ‘마산 시민 데모’가 제기하고 있는 ‘선거 민주화 운동’에 귀를 기울일 의사도 전혀 없음이 명백해졌다는 점이었다. 그들은 ‘반공 구국 노선’ 일변도로 치닫고 있었다. 최인규 내무장관은 “마산 사태는 폭동으로, 소요와 내란을 일으킬 의도가 충분히 있었던 것으로 본다”, “민주당 중앙당부와 도당부의 배후조종 여부, 공산당의 개입 여부도 철저히 밝혀낼 것이다”라며 연일 몰아붙이고 있었다.

정치적 반대파를 ‘빨갱이’로 몰아 말살하고 도태시키는 수법, 이것은 이승만 이래 반공독재정권의 전형적 수법이었다.

정리 도움/강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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