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 ‘3·15 정·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자유당 정권의 부정선거 운동이 노골화하자 이를 규탄하는 고교생들의 시위도 전국적으로 퍼졌다. 필자(성유보)는 마치 일제에 맞선 항일 학생운동의 재현을 보는 듯 흥분했다. 사진은 3월11일 <동아일보> 1면에 실린 수원농고생들을 비롯한 학생과 시민들이 수원 북문 앞에서 경찰과 대치하는 모습.
이룰태림-멈출 수 없는 언론자유의 꿈 ⑥
자유당이 드러내 놓고 관권선거에 나서는 상황에서, 민주당의 집권 노력은 내 눈에도 ‘계란으로 바위 치기’ 같아 보였다. 어린 마음에 ‘사전에 이미 결과가 다 결정된 선거’에 민주당이 왜 그렇게 열심히 선거운동을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였다.
이런 일방적인 선거 공세에 허우적대던 민주당에 응원군이 나타났다. 1960년 3월5일 서울 동대문운동장에서 열린 장면의 선거 유세 직후 학생 1000여명이 1시간 동안 종로 일대를 행진하며 시위를 벌였다.
이튿날인 3월6일에는 대전고 학생들 1000여명이 “학원의 정치도구화를 배격한다”, “우리의 주장이 관철되지 않으면 동맹휴학도 불사한다”는 결의문을 채택하고 시내 곳곳에서 시위를 했다. 시위 진압에 소방차가 물대포를 사용했다고 보도된 것으로 보아 이날 시위는 매우 격렬했던 것으로 보였다.
3월10일에는 대전(대전상고 300여명), 충주(충주고 300여명), 수원(수원농고 200여명) 등 3곳에서 고교생 시위모가 일어났고, 3월12일에는 부산 해동고 학생 150여명이 광복동에서, 3월13일에는 서울시내 여러 곳에서 고교생들의 연합시위와 시위 기도가 있었고, 경기 오산고 학생 100여명도 시위에 나섰다.
투표일 하루 전인 3월14일에는 서울에서 10여개 야간고교 학생들 1000여명의 연합시위가 밤 9시부터 2시간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중동고·대동고·균명고·경문고 등의 학생들이었다. 부산에서도 6개 고교 학생 600여명이 저녁 6시부터 9시까지 산발적 시위를 계속했다. 동래고·부산상고·항도고·북부산고·영남상고·데레사여고 학생들이었다. 포항고(200여명), 원주고(100여명), 인천 송도고(50여명)도 시위에 나섰다.
당시 전국 각지에서 꿈틀대기 시작한 고교생들의 시위를 주목한 사람은 별로 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즈음 누구보다 열심히 신문을 들여다보던 나는 고교생들의 시위 구호가 바뀌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었다. 3월에 들어서면서 “학생들이여 총궐기하자”는 구호가 등장했다. 우리의 ‘2·28 데모’ 때는 구호가 “권력의 횡포를 중단하라”, “학생들을 정치도구화하지 말라”는 아주 소극적인 요구에 그친 데 반해 3월 이후에는 “부정선거 배격하자”, “권력의 횡포를 바로잡기 위해 총궐기하자”며 ‘민주화운동에 참여할 것’을 호소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즈음 우리 경북고 학생들은 “이제는 대학생 형님들이 나설 때가 되지 않았나”라고 기대하면서 겨울방학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 기대에 부응이라도 하듯, 학생들의 정치의식이 급진전하고 있었다. 3월7일 부산에서 ‘공명선거 호소 학생위원회’의 이름으로 “부정선거는 학생의 피를 보게 한다”, “공명선거 사수하여 민주주의 수호하자!”는 구호가 적힌 전단이 뿌려졌다는 보도가 나왔다. 신문 지면의 분위기로는 어른들의 공기도 심상찮은 것 같았다.
하지만 자유당은 오히려 고교생 시위를 “빨갱이들의 선동”이라거나, “철부지 아이들이 민주당의 선동에 놀아나고 있다”고 몰아붙이면서, 젊은 세대들에 의해 생겨나고 있던 정치의식의 변화를 철저히 외면했다. 그뿐만 아니라 “민주당이 자신들이 패배할 것임을 예감하고 그 패배를 남 탓으로 돌리려고 하는데 국민들은 아무도 속지 않을 것”이라고 흰소리를 한 것으로 보아 집권세력은 시대 변화를 전혀 실감하지 못하거나 의식적으로 외면하는 것 같아 보였다.
이승만 정권과 자유당은 기왕의 선거권 도둑질이 들통나자 오히려 더욱 뻔뻔해졌다. “3인조·9인조는 자유당 기본 조직이다”, “3인조·9인조가 투표소에 함께 가는 것은 아무 법에도 저촉되지 않는다”고 강변하고, “3인조·9인조 투표를 중소 도시로 확대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심지어 신문공론사 사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주간신문 발행인 정·부통령 선거 추진위원회’를 만들어 “주간신문들이 대통령에 이승만, 부통령에 이기붕 선생을 당선시키는 데 전력을 다할 것”이라는 성명을 발표하게 하고, 전국접객인협의회·전국고학생육영회·전국극장문화단체협의회·남선전기노동조합 등을 동원해 이승만·이기붕 지지 성명을 내도록 했다.
정치와 종교의 분리가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임에도, 천주교 신자인 장면 부통령에 대한 반대편을 부각시키기 위해 심지어 일부 신자들로 하여금 ‘천주교 신자들에게 고함’이라는 성명을 내게 하고 이를 신문 광고로 퍼뜨렸다. 괴청년들이 전국 곳곳에서 민주당 선거운동원을 테러하고 있다는 폭로도 잇따라 보도되었다.
나는 어린 마음에도 ‘3·15 선거’ 투·개표 과정에서 무언가 심상치 않은 사건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흥분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꼈다. 그렇게 ‘3·15 선거 날’이 밝아왔다.
정리 도움/강태영
성유보(필명 이룰태림·71) 희망래일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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