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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찾아서] 2·28 이후 신문 읽고 ‘어른 세계’에 눈떴다 / 이룰태림

등록 2014-01-06 19:11수정 2018-05-10 11:25

1960년 ‘2·28 대구 고교생 연합데모’ 당시 경찰은 200여명의 학생들을 연행한 뒤 그날로 곧 풀어줬다. 하지만 주동자인 경북고 이대우 학생은 구금했다가 이튿날 대구상고 등 학생들의 항의가 이어지자 뒤늦게 석방했다. <한겨레> 자료사진
1960년 ‘2·28 대구 고교생 연합데모’ 당시 경찰은 200여명의 학생들을 연행한 뒤 그날로 곧 풀어줬다. 하지만 주동자인 경북고 이대우 학생은 구금했다가 이튿날 대구상고 등 학생들의 항의가 이어지자 뒤늦게 석방했다. <한겨레> 자료사진
이룰태림-멈출 수 없는 언론자유의 꿈 ④
1960년 ‘2·28 연합데모’ 때 우리 경북고 선생님들이 적극적으로 말리지도 않았고 주동자 처벌에도 반대했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았다.

사실 2월27일 저녁 나는 우리 반 학생 몇 명과 ‘우리 담임선생님은 ‘일요등교’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실까’ 궁금해 담임 이효영 선생님 댁을 방문했다. 선생님은 곤혹스러워하시면서도 “자네들 소신대로 하게. 나는 언제든 사표 쓸 각오가 되어 있어”라고 말씀하셨다. 우리 학교 대다수 선생님들도 말씀은 안 해도 같은 마음이었다. 그때 쑥스러워 하지 못한 인사를 지금이라도 하고 싶다. “선생님들, 참으로 감사합니다!”

2월29일에도 대구상고 학생 40여명이 아침부터 수업을 거부하고 “구속 학생 석방하라”고 요구하며 데모를 벌였다. 자유당은 다급한 마음에 “구속자는 한 명도 없다”고 성명을 냈고, 경찰은 학생들에게 경찰서 유치장까지 보여주었다.

경찰이 2월28일 연행 학생을 다 풀어준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단 한 명의 예외가 있었다. 경찰은 이대우만은 29일까지 구금했다. 이대우는 이렇게 회고한다.

“나는 체포되어 경찰국에 끌려갔다. 경찰당국은 나를 조봉암씨와 레닌의 <이스크라>와 연관지어 빨갱이로 몰려 했다. ‘2·28 때문에 평양에선 군중대회를 열고, 성원하고 있다. 너희들 데모는 이적행위다. 징역 10년 감이다’라고 엄포를 놓았다.” “2월29일 오후 늦게는 치안국장 이강학이 불러서 갔다. 대뜸 뺨을 후려갈기면서 ‘이 빨갱이 새끼’라고 말했다.”(유고집 <2·28은 살아있다>에서)

2월29일의 대구상고생 시위 이후 대구 고교생 사회는 곧 조용해졌다. 그러나 나에게는 아무도 모르는 ‘조용한 변화’가 일어났다. 신문을 열심히 읽기 시작했다. 마침 그 시절 내가 기숙하고 있던 다섯째 숙부 댁에서는 <동아일보>를 구독하고 있었다. 나는 멋모르고 ‘2·28 데모’에 참가한 이후 ‘어른들의 세계가 우리 청소년 세계와 무관한 게 아님’을 느끼기 시작했다. 어른들의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려면 신문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만 해도 신문은 모두 국한문을 혼용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모르는 한자가 많았다. 그러나 자꾸 보다 보니 한문 읽기에도 아주 익숙해졌다. 신문을 매일 대하니 당시 정치상황 윤곽도 어렴풋하게나마 눈에 들어왔다. 신문을 보면서부터 고등학교 2학년에 불과했던 나에게도 정치상황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안목이 생기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 첫 느낌은 이승만 대통령이 “민심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것이었다. 이때부터 이승만은 내가 교과서에서 배운 ‘국부’(國父)가 아니라 ‘권력의 화신’으로 비쳤다.

나는 또 “대한민국 대통령의 집무실인 청와대가 산골짜기 외진 데 숨어 있어서는 안 된다, ‘민주주의 대한민국’의 대통령 집무실은 서울시내 한복판으로 내려와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50여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청와대는 여전히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 있지만.

또 하나 느낀 점은 어떤 정치인이나 정치집단도 장기집권을 하면 권력에 도취하고 부패에 빠진다는 것이었다. “절대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경구는 만고의 진리처럼 보이는데도, 왜 권력을 잡으면 누구나 그 권력을 내려놓기가 그렇게 어려운지 도통 알 수 없었다. 이승만과 자유당 일당도 이미 ‘절대권력’이라는 도그마에 중독되어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아 보였다.

성유보(필명 이룰태림·71) 희망래일 이사장
성유보(필명 이룰태림·71) 희망래일 이사장
이승만과 자유당은 이미 12년이나 권력을 쥐었다 폈다 하고 있었고, 민심은 이미 “못 살겠다 갈아보자”며 자유당을 떠나고 있었다. 그런데도 자유당은 영구집권을 하겠다고 덤비고 있었다. 그 터무니없는 욕심은 ‘불법선거, 부정선거’ 음모로 발전하였고, 심지어 선거권도 없는 학생들까지 경계하고 감시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었다. “2·28 일요등교 지시”가 그 단적인 예가 아닌가?

나는 어느새 나도 머지않아 들어가야만 하는 ‘어른 세계’의 관찰자가 되기 시작했다.

성유보(필명 이룰태림·71) 희망래일 이사장
정리 도움/강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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