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은 종합편성 및 보도전문채널 선정 방향을 언급할 때마다 “공정하게 하겠다”고 강조했다. 31일 최종 사업자 선정 결과를 발표하며 방통위도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나타난 정황은 정반대다. 종편 논의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정치적 작업’이란 지적들이 끊이지 않았다. 정권의 ‘친정부적 언론구도 재편 욕망’과 신문의 ‘방송진출’이란 오랜 목표에, ‘지상파 영향력 약화+광고시장 인위적 확대+사업자 선정 후폭풍 관리’ 따위 수식들이 더해지고 곱해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종편 선정 구도에 “<한국방송> 수신료 인상과 <와이티엔>의 진로, <오비에스> 역외 재송신 문제”까지 공공연히 거론했다.
종편 논의는 ‘1997년과 2002년 대선을 지상파방송 때문에 졌다’는 현 여권의 피해의식에서 출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나라당은 2003년부터 신문·방송 겸영 허용과 한국방송 2채널 및 <문화방송> 민영화, 한국방송 예산 승인권 국회 부여 등을 주장했고, 이명박 정부 출범 후부터 하나둘씩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애초 우호적 보수신문과 대기업의 지상파 진입에 초점을 맞췄던 정권은 2009년 7월 국회 날치기를 거치며 ‘종편 도입 올인’으로 선회한다. 실현가능성 약한 ‘지상파 민영화’ 대신 종편을 통한 ‘지상파 영향력 약화’를 선택한 셈이다. 결국 ‘신문·방송·통신의 조화로운 협력’(2008년 4월 이명박 대통령 ‘신문의 날’ 발언)으로 표현된 현 정부 언론정책은 3년의 지난한 논란을 통과하며 종편이란 ‘앙상한 뼈’만 남겼고, 정부는 ‘보수신문의 종편 진출 대행기관’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한나라당으로부터 ‘종편 선정 임무’를 넘겨받은 방통위의 이후 행보도 철저하게 정치적이었다는 평가다. 노골적으로 방송사업권을 요구하는 신문들을 상대로 ‘허용’ 혹은 ‘불허’가 가져올 유·불리를 저울질하며 종편 도입 시기와 개수 발표를 미뤄왔다. 지난해 7월 “연내 선정하겠다”던 최 위원장은 ‘올 초→올 하반기’로 계속 시기를 늦췄고, “1~2개 도입 후 3개까지 허용”이란 애초 발언도 “다 주고 사업자끼리 인수합병하면 된다”는 말로 바뀌었다. 최종 선정 시점까지 사업자 수를 공개하지 않는 방법으로 종편 희망 신문사들의 정부 비판을 최대한 유예시키려 한다는 비판이 일었다.
방통위는 ‘국내 광고시장이 수용할 수 있는 종편 개수’ 시뮬레이션 결과도 내놓지 않았다. 방송환경에 엄청난 변화를 초래할 중대 결정을 앞둔 정책 당국의 태도라 보기엔 납득하기 힘든 부분이다. ‘몇 개 허용할지’를 밝히지 않으니, ‘몇 개 허용 가능한지’도 공개할 수 없는 딜레마 상황이다. 실무진이 전체회의에 올린 ‘사업승인 기본계획안’은 동일 방송시장을 두고 극(종편 ‘2개 이하’ 선정 이유, “다수 사업자 진입에 따른 경쟁 과열 부작용”)과 극(‘3개 이상’ 허용 근거, “활발한 시장경쟁을 통해 방송산업의 경쟁력 향상”)의 진단을 내리기까지 했다.
한국방송 수신료 인상마저 ‘종편 먹거리’ 마련 차원으로 추진되면서 더 큰 반발을 불렀다. ‘2채널 광고의 종편 전이’를 염두에 둔 최 위원장이 지난 1월 ‘5천~6천원’(현 납부액의 200~240%)을 인상액수로 제시했을 땐 한국방송 내부에서조차 ‘과하다’는 불만이 터져나왔다. 최근 내년도 대통령 업무보고에선 종편 지원과 지상파 반발 무마를 위한 광고규제 완화책을 한꺼번에 쏟아내며 ‘방송시장을 급격한 상업주의로 몰아넣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종편 허용이 ‘정치적 특혜사업’처럼 비춰지면서 사업 동참을 망설이던 기업 사이에서도 아우성이 분출했다. 대기업들이 지분 참여를 꺼리자 컨소시엄 구성에 난항을 겪은 신문사들이 재계를 저인망식으로 훑으며 투자를 압박한 까닭이다.
방송계에선 사업권을 딴 신문사들의 다음 요구는 ‘종편을 줬으니 이젠 먹여 살릴 지원책을 내놓으라’는 데 맞춰질 것이란 시각이 파다하다. 종편 선정이 끝났어도 정권과 사업자간 ‘물밑 거래’는 계속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 MB표 종편 동시 개국…여론·민주주의 대재앙 시작됐다
■ 안철수연구소 ‘사회공헌팀’ 만든다
■ ‘벤츠 여검사’ 의혹 규명, 특임검사에 맡겨
■ 법륜 “더이상 안철수 멘토라 부르지말라”
■ “왕도 정년제가 필요해”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 MB표 종편 동시 개국…여론·민주주의 대재앙 시작됐다
■ 안철수연구소 ‘사회공헌팀’ 만든다
■ ‘벤츠 여검사’ 의혹 규명, 특임검사에 맡겨
■ 법륜 “더이상 안철수 멘토라 부르지말라”
■ “왕도 정년제가 필요해”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