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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미디어

“종이신문, 대중과의 협업에서 길 찾아야”

등록 2010-09-12 21:08

지난 6일 〈한겨레〉를 찾은 김민환 고려대 명예교수는 “신문이 생산자의 우월적 지위에 집착하면 희망이 없다”며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지적인 공중과의 협업을 통해 신문을 만들 때 미래가 보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종식 기자 <A href="mailto:anaki@hani.co.kr">anaki@hani.co.kr</A>
지난 6일 〈한겨레〉를 찾은 김민환 고려대 명예교수는 “신문이 생산자의 우월적 지위에 집착하면 희망이 없다”며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지적인 공중과의 협업을 통해 신문을 만들 때 미래가 보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한겨레가 만난 사람] 한국언론사 권위자 김민환 고려대 명예교수
* 대중과의 협업 : 매스소싱
인터넷의 기세에 많은 사람들이 신문의 위기를 말한다. 스마트폰·트위터와 같은 뉴미디어 기제들이 잇따라 등장하면서 기존 매체의 존재감은 갈수록 왜소해진다. 신문 스스로 위기를 자초한 측면도 있다. 편파·왜곡 보도에 지면 사유화까지 덧씌워지면서 신뢰도가 하락하고 있다.

올드미디어인 신문의 활로는 무엇인가? 어렵지만 찾아나가야 할 신문의 과제이다.

한국 언론사 전공자로 30년 동안 강단에 서온 김민환 고려대 명예교수에게 가장 듣고 싶은 것도 이 대목이다. 지난달 고려대 미디어학부에서 정년퇴임한 김 교수는 인터넷 시대, 신문은 대중과의 협업을 통해 활로를 찾아야 한다고 했다. 이른바 ‘매스소싱’이다. 협업 대상은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지적인 공중’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한국의 언론이 정파성의 늪에 빠져 있다는 비판과도 맥을 같이한다. 그가 보기에 한국 언론은 ‘패거리’의 선수들이다. ‘확보 가능한’이 아니라 ‘이용 가능한 최선의 버전’으로 기사를 쓰면서 여론을 왜곡하고 있다고 했다. ‘내가 결정한다’는 초월적 책임감을 가지고, 공존·타협 가능한 활동 공간을 찾을 때 언론의 미래도 열릴 것이라고 예측했다.

현 정부의 언론정책은 신랄한 비판의 대상이었다. 종합편성채널 정책은 얄팍한 정파적 생각에 기반하고 있는데다, 로드맵·매뉴얼도 없어 예정된 실패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 한국 언론사를 전공한 사람으로서 한국 언론의 특수성이라고 할까, 성격을 어떻게 규정하나?

“교수로 임용된 80년대에 우리 언론은 엉뚱한 이야기만 했다. 전공자로서 불만이 많았고, 과연 언론의 시대적 역할이 궁금했다. 그래서 개화기 언론을 살펴봤다. 당시엔 반제 반봉건의 시대적 과제가 있었다. 하지만 제국주의에 대한 인식이 지나치게 안이했다. 그것이 우리를 개화시킨다는 생각을 가졌다. 일본 제국의 일원이 되면 서구열강의 식민지를 면할 수 있다는 생각을 폈다. 또 민중을 철저히 배제했다. 이런 것들이 한국 사회에서 언론의 기본 인식틀로 굳어진 것 아니냐는 생각이다.


1909년 <대한매일신보>의 신채호가 ‘한·중·일 공영체제의 핵심은 일본 맹주론’이라고 비판했다. ‘일본 맹주’가 아니고 민족이나 국가 단위의 투쟁 체제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들어와 일본 중심의 아시아공영론이 <동아일보> <조선일보>에서 되살아났다. 일제 식민지배의 논리를 다시 받아들인 것이다. 우리 언론은 대단히 실용적이며, 제도권과 타협하는 데 익숙했다. 그 결과 친일지배의 큰틀이 유지되고 봉건적 요소가 온존됐다. 해방 후 박정희 체제에서도 처음엔 관계가 좋지 않았지만, 박정희가 관 주도로 자본가를 육성하고 신문 수를 철저히 통제하면서 언론사가 대자본으로 성장했다. 언론의 반민중화가 자연스레 이뤄졌다. 압축성장한 나라의 천박한 실용주의다. 압축성장을 거치면서 공론창출이 힘으로 이뤄지고 품격 있는 담론이 형성되기 어려운 풍토로 흘러가 버렸다.”

한국 언론, 정파성에 빠져 ‘패거리’ 이뤄
‘이용 가능한’ 버전으로 기사 쓰며 여론왜곡
다양한 의견 수렴하는 타협 공간 있어야

- 최근 펴낸 저서 <민주주의와 언론>에서 한국 언론이 정파성의 늪을 빠져나와 객관주의를 추구할 것을 주장했다. 주관과 객관을 두부 자르듯 자를 수 있나?

“개발이냐 민주냐 양대 세력이 있다면, 이들은 논의 당사자가 아니라 패거리의 일원이다. 상대는 적이다. 물론 민중의 이익을 대변하거나 또는 개발 논리를 옹호하는 신문도 있어야 한다. 하지만 패거리를 지어 논의를 할수록 분열된다. 패거리에서 떨어져 이야기하면 좁혀진다. 다양한 의견을 수렴할 수 있는 타협 가능한 공간이 있어야 한다. 공영방송과 조·중·동이 다양한 의견 통합에 노력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방송은 권력 잡는 쪽의 앞잡이다. 조·중·동은 앞다퉈 보수파의 대표선수를 자임한다. 선수들을 다 쫓아내고 자기들이 선수를 하고 있다. 언론들이 거기서 빠져나와야 한다.

언론의 핵심은 팩트(사실)다. 미국의 ‘우수언론 프로젝트’를 보면 관점과 이해관계가 다른 넷 이상의 소스(취재원)를 취재해 보도해야 한다. 관점은 이데올로기, 이해관계는 계급을 뜻한다. 확보 가능한 최선의 버전으로 기사를 써야 한다. <워싱턴 포스트> 밥 우드워드의 이야기다. 하지만 한국의 신문들은 확보 가능한 최선의 버전이 아니라, 이용 가능한 최선의 버전으로 기사를 쓴다. 막스 베버가 미국에 가서 신문을 보면서 미국 신문은 사실의 창고라고 생각했다. 그 사실의 창고가 결국 이길 것이라고 했다.”

- 여러 관점과 이해관계를 반영하려면 기사 형식에도 변화가 있어야 할 것 같다.

“단신 기사는 형식적으로 할 수 없다. 꾼들은 안다. 이 정도면 소스가 몇개 정도 되겠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한국 신문의) 긴 기사일수록 이용 가능한 최선의 버전을 만들고 있다. 요즘은 끝에 다른 의견을 조그맣게 받아준다. 그쪽(반대쪽)의 대표성 없는 사람들을 잠깐 버무린다. 용산참사를 보자. 앞으로도 지속될 이슈다. 재개발은 계속 이뤄진다. 이럴 때 관점이나 이해관계가 다른 다양한 소스에 접근해 기사를 써야 한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 한쪽은 경찰, 한쪽은 철거민단체 욕만 하고, 그걸로 끝난다.

미국 언론은 ‘우리가 결정한다’는 자부심이 있다. 모든 걸 초월하는 존재가 언론이라는 것이다. 한국은 앞잡이 논리다. 열심히 하면 국회의원, <한국방송>(KBS) 사장 자리 준다. 기자나 언론학자가 되면 그걸 본령이라고 생각하고 지켜야 한다. ‘내가 결정한다’고 생각하면 상대가 있어야 한다. 현실과 이상을 조화시키고 타협 가능한 공간을 찾아야 한다. 이걸 제시해야 한다. 지식인과 언론인이 해야 할 일이다. 궁극적으로 내가 결정한다는 생각을 언론인과 지식인이 해야 한다.”

- 언론에 기대하는 바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듣고 싶다.

“엠비정부 집권 후반기 넘어가면서 ‘공정한 사회’를 캐치프레이즈로 내걸었다. 이 어젠다에 <한겨레>가 취할 수 있는 태도가 있을 것이다. 한겨레가 받아야 한다. 그러면서 평가해야 한다. 사정이나 권력누수 등 그렇게 삐딱하게 볼 것만은 아니다. 공정한 사회라는 목표를 지지하면서 도대체 뭐가 공정한 것이냐를 제기해야 한다. ‘공정성’을 사회적 담론으로 끌고 가야 한다. 하지만 우리 언론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조선일보>가 최근 한국 사회에서 ‘사다리가 사라진다’는 기획기사를 보도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 기사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한겨레>가 이걸 받았어야 했다. 그 기사에서 ‘어떻게’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걸 받아들여 기획 완결은 우리가 할 수 있다, 우리가 결정한다고 했어야 했다. 엠비의 공정사회를 그 사람들의 올가미가 되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타협 가능한 공존 가능한 공간을 창출해 가야 한다.

미국의 대중지 시대에 <뉴욕타임스>는 뉴욕에 거주하는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지적인 공중’을 겨냥했다. 거기서 우리가 결정한다는 자부심의 원천이 마련됐다. 공정보도를 지향하지만 의견은 진보적이다. 뉴욕타임스는 중도좌파, <워싱턴포스트>는 중도우파에 가깝다. 여기에 근접한 언론이 한겨레다. 하지만 한겨레가 중도 지식인 쪽으로 가는 데 거부감을 갖고 있다. 스스로 쳐놓은 담 때문에 못 가고 있다.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지적 공중을 대상으로 신문 만든다고 생각하면 우리가 결정한다는 그런 위치에 오르지 않느냐.”

- 거대 신문들의 강한 정파성은 역으로 우리 사회에 중립적인 지적인 공중이 그리 두텁지 않음을 반증하는 것 아닌가?

“대중지 시대에 뉴욕타임스가 지적인 공중을 독자층으로 삼는 게 초기엔 쉽지 않았다. 한국에는 아직까지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지적인 공중이 두텁진 않다. 하지만 지식인 사회를 보면 특정 정파에 끼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이념과 상관없이 정권에 대한 평가를 제대로 하고 이에 기반해 투표하려는 층들이 늘어날 것이다. 통계적으로도 좌우를 제외한 중간층을 74%로 잡는다. 이들과 손잡아야 한다. 한국의 정치적 담론은 그 아래 지역정서가 강하다. 경상도패 전라도패 그렇게 할 수 없어, 좌패 우패 하는 것이다. 이걸 허무는 것도 신문이 해야 한다.”

현 정부 언론정책, 로드맵·매뉴얼도 없어
‘조·중·동’ 중 어디에 종편 줄까 고민만 해
타격 입을 지역방송 위한 대책도 만들어야

- 신문의 위기를 말한다. 신문의 미래를 어떻게 보나?

“인터넷이 발전하면서 일반 독자들이 뉴스의 수용자가 아니라 사용자가 됐다. 하지만 종이는 영원하다. 신문의 미래가 끝난 것이 아니라 생산에서 배급에 이르는 그 일방성이 끝났을 뿐이다. 지금은 상호작용의 시대다. 종이신문이 생산자의 우월적 지위에 안주하는 한 희망이 없다. 협업을 통해 신문을 만들어야 한다. 아웃소싱이 아니라 매스소싱이다. 대중이 참여하게 해야 한다. 이게 아고라 정신과 통한다.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지적인 공중을 협업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이 사람들 의견을 끌어내어 같이 만들어야 한다.”

- 정보홍수 시대다. 신문이 왜 필요한가?

“정보든 의견이든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신문은 다른 매체가 따라오기 힘든 장점이 있다. 복잡한 게이트키핑 시스템과 우수한 인력이다. 신문에 나오는 다양한 정보를 보면 사실의 전체적 윤곽을 확인할 수 있다. 가장 궁극적으로 사실관계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신문이다. 하지만 달라진 시장 상황에서 신문의 전략적 접근이 미흡하다는 생각이다. 새로운 모형을 찾아야 한다.

미국에서 대중지 시대에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와 조지프 퓰리처는 전혀 다른 생산체제를 갖췄다. 기자를 경찰서와 법원에 보내, 남의 부인과 재산을 빼앗는 그런 뉴스를 상품으로 생산했다. 인터넷이 기존 패러다임으로 장사할 수 없게 하는 이 시대에 허스트가 나왔다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해야 한다. 지금도 기존의 출입처 제도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대중과의 협업시대다.”

- 방송통신위원회는 연말까지 종합편성채널 선정을 완료한다고 한다.

“현 정부의 언론정책은 로드맵도 매뉴얼도 없다. 과거에 언론산업은 진입장벽이 있어 몇개의 언론사가 광고시장을 분점하면서 현상유지하거나 성장을 했다. 하지만 민주화 이후 진입장벽이 허물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종합편성채널을 허가하겠다는 것이다. 일반 기업들은 종편이 수익성이 없다는 걸 안다. 신문은 그래도 방송을 하면 산업적 위기를 타개할 것 같아서 하려고 한다. 종편 심사가 아니라 신문사에 방송겸영을 허가해주는 것이다. 거기에 모순이 내재되어 있다. 내가 보기에 종편이 수지타산을 맞출 가능성은 거의 없다. 한국 자본주의 역동성으로 광고가 늘어나 괜찮을 것이라고 하는데, 역동성은 내수가 아니라 해외시장에서 온다. 종편을 허용하기 이전에 케이비에스 광고 없애고 시청료를 대폭 올려야 했다. 지금은 거꾸로 가고 있다. 연말까지 시청료 인상은 불가능하다. 또 종편이 도입되면 작은 신문과 지역 방송이 타격을 입는다. 이들은 엎어져도 되나? 이들을 살릴 종합대책도 내놓아야 한다.

전체 매체 정책 차원에서 자원 배분을 어떻게 할 것인가 고민해야 하는데, 정부의 최대 고민은 조·중·동 3개 신문 가운데 어디에 종편을 줄 것인가이다. 언론사들은 학자들 대상으로 공작하고 학자들은 앞잡이가 되어 있다. 연말까지 결론이 나지 않을 것이다.

현 방통위는 통신 쪽 사람들이 틀어쥐고 있다. 옛 방송위 쪽 사람들은 심의하는 곳에 있거나 아예 쫓겨났다. 그래서 매뉴얼이 없다. 정책은 개발로 밀려나는 쪽을 보듬는 안도 만들어야 한다. 그게 공정사회의 기본과제다. 하지만 이런 대책은 전혀 없다. 어젠다에도 없다. 정책 실패가 예비되어 있다. 종편은 가능하지도 않고 해서도 안 된다. 큰 그림을 그려야지 얄팍한 정파적 생각으로 해서는 안 된다.”

- 현 정부 들어 방송장악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최시중 방통위원장을 임명한 이명박 대통령에게 할 이야기가 있다. 언론정책은 과학적이고 공정해야 한다. 정말로 정보·문화정책을 펼 수 있는 사람에게 일을 맡겨야 했다. 최시중씨는 여론조사 일을 했다. (방송통신) 비전문가다. 문화부 장관에 콘텐츠 정책과 담 싼 사람을 임명한다. 공정언론을 해갈 사람은 (대선) 캠프에 부르지 말아야 했다. 끌어들였더라도 정부에는 들여보내지 말아야 한다. 학자들도 캠프에 들어가야 뭐 하나라도 차지할 수밖에 없다 보니, 전부 앞잡이가 될 수밖에 없다. (언론) 행정을 담당하는 사람들도 공정한 사람들이 아니다. 이러니 뭐가 되겠나. 실패밖에 안 보인다. 다시 짜야 한다. 어디 이게 언론뿐이겠나.”

인터뷰/강성만 미디어팀장 sungman@hani.co.kr


한국언론사 권위자 김민환 고려대 명예교수
한국언론사 권위자 김민환 고려대 명예교수
■ 김민환 교수는 누구

김 교수는 중학 시절 전남 장흥의 집에서 30리를 걸어 통학했다. 그래서 중학교만 마치면 다시는 학교 문턱도 가지 않으리라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인생 항로는 달리 흘러갔다. 고려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전남대와 고려대에서 30년 가까이 교수 생활을 했다. 대학에서 퇴임한 뒤 지금은 보길도에서 영화 시나리오 창작에 힘을 쏟고 있다. 또다른 반전이다.

전공은 한국언론사이다. 1980년대 개화기 신문의 특성과 한계를 다룬 저서 <개화기 민족지의 사회사상>을 펴내 주목을 받았다. 조용수가 발행한 <민족일보>에 대한 체계적 연구서인 <민족일보 연구>를 펴내기도 했다. ‘치우치지 않고, 자리 욕심이 없고, 합리적 성향’의 학자라는 평이다. 칼럼니스트로도 이름이 높다. 명쾌한 주장과 튼실한 논거 그리고 뛰어난 전달력을 갖춘 그의 글들은 폭넓은 독자들의 지지를 받았다. <실미도>(2003년) 이후에만 개봉관에서 300편의 영화를 봤을 정도로 영화 마니아다. 일본에 간 담징을 소재로 풀어낸 영화 시나리오 <욕(慾)>(가제)은 이미 임권택 감독의 손에 넘겨진 상태다. 11월 이후 제작 여부가 결정된다. 다산연구소 대표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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