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한표 언론인·전 <한겨레> 논설주간
미디어전망대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관련해 이명박 정부가 이해할 수 없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정부는 미국이 ‘강화된 동물사료 조치’를 공포했다면서 오는 15일 30개월 이상 된 미국산 쇠고기 수입까지 허용하는 장관고시를 공표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사실은 미국이 동물사료 조처를 강화한 것이 아니라 완화한 것으로 드러났다.
치명적인 과오를 시인한 이상 정부는 쇠고기 시장 개방의 속도를 조정하는 것이 당연하다. 쇠고기 고시를 연기하고, 30개월 이상 된 쇠고기 수입의 전제인 동물사료 조처의 강화가 이뤄지지 않았음을 미국 정부에 통보해야 한다. 미국이 실제로 공표한 동물사료 금지조처는 지난 2005년에 미국 정부가 발표한 입안 예고 내용보다 훨씬 완화시킨 것이기 때문에 정부가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럽다.
그런데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은 정부의 과오가 영문 번역을 거꾸로 한 ‘실무적 실수’이며, 국민에게 ‘불필요한’ 오해와 심려를 끼친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런 치명적인 과오가 어떻게 ‘실무적인 실수’일 뿐이며, 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을 무슨 근거로 ‘오해’라고 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다.
하지만 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이와 같은 상황 변화에도 불구하고 15일의 장관고시를 기정사실화하려는 <조선일보>의 태도다. 13일치 조선일보 사설은 “미국 쇠고기 수입위생 조건 고시는 예정대로 오는 15일 발효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설은 쇠고기 고시는 아직 정부가 공표해야 하는 절차가 남아 있으며, 미국이 동물사료 금지조처라는 약속을 지키지 않음으로써 쇠고기 고시의 전제조건이 충족되지 않았다는 주장이 강력히 제기되고 있다는 사실을 무시하고, 흡사 시간이 흐르면 고시가 저절로 발효되는 것처럼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
국가적인 주요 의제에 대해 ‘조중동’으로 불리는 일부 신문이 무조건 보수적인 정부를 편드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번 광우병 쇠고기 파동처럼 ‘확인된 사실’과는 상관없이 일방적인 주장으로 시종하는 경우는 드물다. 쇠고기 파동 보도에서는 가장 기본적인 자료조차 확인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정부는 얼마 전 국내 일간지에 일제히 “3억 인의 미국인과 96개국의 세계인들이 즐겨 먹는 바로 그 쇠고기가 수입됩니다”라는 광고를 냈다. 이것은 미국 쇠고기에 대한 정부의 일관된 주장이다. 이에 대해 특히 인터넷 신문을 중심으로 이미 상당히 설득력 있는 반론이 제기되어 있다. 요지는 대략 이렇다.
“한국은 일본, 멕시코에 이어 세 번째 대량 수입국이다. 대량 수입국 8개국의 수입량이 미국 쇠고기 수출량의 97%를 차지한다. 이 8개국 중 30개월 연령 제한을 해제한 나라는 한국과 캐나다뿐인데, 캐나다는 광우병 발생 국가다. 미국에서는 30개월 이상 된 쇠고기가 거의 시장에서 유통되지 않으며, 미국인들도 광우병 걱정을 하고 있다.”
언론이 광우병 논란과 관련한 모든 주장과 해석의 기본이 되는 이와 같은 사실의 확인을 소홀히 하고 있는 것이 이번 광우병 논란의 두드러진 특징이다. 특히 일부 신문들은 자기 주장과 맞지 않는 사실들을 ‘괴담’으로 몰아버리면서 정부의 방침을 기정사실화하려고까지 한다. 주장을 펴기 전에 기본적인 사실 확인부터 철저히 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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