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미디어

언론 ‘천박한 시장주의’에 포섭되나

등록 2007-12-25 21:53수정 2011-12-01 11:34

김재영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김재영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미디어전망대
배움의 목적은 세상의 이치를 깨닫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러나 현실은 이를 종종 배반한다. 배운 대로 현실이 존재하기보다 비뚤어진 현실 속에서 세상의 부조리를 절감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정직하라고 배웠다. 법과 상식을 지키는 게 만사의 기본이라고 믿었다. 우리 아이와 학생들에게도 그렇게 말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을 수 있음을 똑똑히 보여주었다. 그 탓에 해외연수 중인 제자가 건넨 물음에 선뜻 답하지 못했다. 그는 이렇게 길을 물었다. 정직이라는 가치가 성공이라는 신화에 포섭된 현실에서 ‘88만원 세대’인 자기가 남들보다 조금 더 잘 살아 보겠다고 애쓰는 게 옳은 거냐고.

냉혹한 현실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은 역사가 승자의 기록이라는 것이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게 강한 자라 했던가. 현실에서 사필귀정이 통용되지 않고 승자가 정의의 사도로 포장되어도 이젠 그러려니 할 참이다.

이념을 앞세운 무능한 좌파에서 실용적 우파로 권력이 이동했다니 사회전반의 개편은 불가피하게 됐다. 그 핵심기제는 시장이 될 전망이란다. 기업을 옥죄는 규제를 완화해 투자를 유발하고 경쟁 환경을 조성하는 것으로 성장의 동력을 삼겠다는 구상이다. 언론도 예외는 아닐 듯하다. 이미 신문·방송 겸업 허용과 공영방송 개혁이 우선과제로 거론되고 있다.

국민이 선택한 집권세력의 철학과 비전이 정책을 통해 현실화되는 건 시비의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정책의 고안과 집행이 시장에 대한 ‘천박한’ 인식의 소산이어선 안 된다. 언론이 여론과 문화에 직결된 영역이라 더욱 그렇다. 언론에 시장원리가 마찰 없이 적용되기 위한 세 가지 전제조건이다.

첫째, 시장 외적 요인이 변수로 작용해선 안 된다. 언론은 저널리즘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고 그 결과물의 품질에 따라 독자와 시청자의 선택을 받는 게 정상이다. 소유주나 경영진이 정치권력과 유착하고 이들의 이해관계가 편집과 편성을 좌우하는 비정상적 언론은 시장의 적이다. 이들이 퇴출되기는커녕 기세를 부리는 구조에서 시장논리는 설득력을 잃는다.

둘째, 시장원리가 여론 다양성을 위축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해서는 안 된다. 시장은 궁극적 목표가 아니라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일 뿐이다. 언론의 산업적 가치가 아무리 중시되어도 언론의 일차적 존재 이유는 여전히 여론 다양성에 있다. 신문·방송간 겸업을 허용하기 이전에 특히 곱씹어야 할 대목이다.

셋째, 시장의 힘이 닿을 수 없고 닿아선 곤란한 영역을 인지해야 한다. 미디어 산업에는 시장 너머의 영역이 엄존한다. 공영방송이 대표적이다. 시장이 담보할 수 없는 방송의 공적 가치를 포기할 작정이 아니라면 정치적 공세 이전에 유료방송 환경에 포획 중인 공영방송의 현실부터 진단하는 게 순서다.

아우슈비츠 수용소 입구에 이런 글귀가 적혀 있다고 한다. “아우슈비츠보다 더 무서운 건 한 가지뿐이다. 그건 인류가 그 사실을 잊는 일이다.” 인간이 망각의 동물이고 세태에 영합하는 속성이 있다지만 잊어선 안 될 것들이 있다. 언론은 공적 영역이고, 시장주의는 만능이 아니란 사실이다. 이마저 배반당하면 대체 배움은 무엇에나 쓸꼬.

김재영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작은 윤석열까지 몰아내자” 대학생들 극우 비판 시국선언 [영상] 1.

“작은 윤석열까지 몰아내자” 대학생들 극우 비판 시국선언 [영상]

“식사도 못 하신다”…인생의 친구 송대관 잃은 태진아 2.

“식사도 못 하신다”…인생의 친구 송대관 잃은 태진아

서부지법 이어 ‘헌재 난동’ 모의…경찰, 디시 ‘미정갤’ 수사 3.

서부지법 이어 ‘헌재 난동’ 모의…경찰, 디시 ‘미정갤’ 수사

노인단체 시국선언 “윤석열 지킨다는 노인들, 더는 추태 부리지 마라” 4.

노인단체 시국선언 “윤석열 지킨다는 노인들, 더는 추태 부리지 마라”

“윤석열 신속 처벌”…국책연구기관서도 첫 시국선언 5.

“윤석열 신속 처벌”…국책연구기관서도 첫 시국선언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