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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세상 만들며 투자이익 올리세요”

등록 2007-05-14 17:41수정 2007-05-14 19:10

임대웅 에코프론티어 지속가능금융센터 센터장이 기업 분석 결과를 설명하고 있다. 장철규 기자 <A href="mailto:chang21@hani.co.kr">chang21@hani.co.kr</A>
임대웅 에코프론티어 지속가능금융센터 센터장이 기업 분석 결과를 설명하고 있다. 장철규 기자 chang21@hani.co.kr
[19돌 창간특집] 다른 금융 다른 사회
뜨는 직업 - 에코프론티어 지속가능금융센터장 임대웅
이 남자의 머릿속엔 국내외 주요 투자종목(기업) 정보가 빼곡히 들어차 있다. 기업의 주가 흐름표나 각종 재무제표도 이 남자의 눈을 늘상 피곤하게 만드는, 하지만 꼭 챙겨야하는 단골메뉴다. 여기까지만 본다면 영락없는 종목분석가(애널리스트)의 일상이다.

하지만 이 남자가 몸담고 있는 곳은 한국의 ‘월스트리트’, 여의도에 널린 불빛 반짝이는 증권사 리서치센터가 아니다. 일반인들에겐 아직 이름이 낯선 자그마한 벤처회사에서 투자종목(기업)을 분석하고 평가하는 일, 이 남자는 오늘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그 일에 매달리고 있다.

임대웅(38) 에코프론티어 지속가능금융센터 센터장. 그는 ‘색다른’ 종목분석가다. 현란한 수치로 뒤범벅된 기업의 회계장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는 사업계획서, 화려한 경력을 지닌 경영진…. 이 모든 정보를 그는 꼼꼼히 챙긴다. 모든 게 기업의 가치를 평가하는데 결코 소홀히 넘겨선 안될 정보 꾸러미들이다.

그러나, 그의 눈길은 여기에 머물지 않는다. 그는 여기에다 한가지 정보를 반드시 덧붙인다. 온갖 수치로 포장된 재무제표상에선 잘 드러나지 않는, ‘비재무적’ 정보야말로 그가 기업을 분석하고 평가해 등급을 매기는데 있어 가장 무게를 두는 그만의 비밀병기다. 환경·인권·사회·노동…. 뭉뚱그려 ‘지속가능성’이란 그릇에 담아낼 수 있는 정보야말로 그가 기업을 바라보는 가장 중요한 잣대다. “오로지 이윤에 초점을 맞춘 재무재표에만 의존해 기업을 분석하던 시대는 끝났죠. 눈에 보이지 않는 기업의 위험요소와 가치를 찾아내는 일이야말로 세계 금융시장의 주류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생김새만큼이나 야무지게 그가 한마디 던진다.

환경· 인권· 사회· 노동… 비재무적 정보 중요

“재무제표라는 빙산의 일각만 보지 말고

숨어있는 위험 찾아내 투자언어로 번역”

10여년 전, 그는 영국 스코틀랜드의 에딘버러대학으로 유학길에 올랐다. 그를 스코틀랜드로 이끈 인물은 테사 테넌트라는 이름의 중년 여성. 영국 금융가에서 이름을 날리던 테사 테넌트는 아시아 일대를 무대로 새로운 투자 바람을 일으키고 있던 중이었다. ‘사회책임투자’(SRI) 바람이 바로 그것. 홍콩에 근거지를 둔 아시아사회책임투자협회를 만든 장본인이 바로 테사 테넌트다. 에딘버러대학에서 그는 ‘지속가능성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 분야에선 아마도 국내 최초의 일일 게다.

귀국 뒤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과 에코프론티어라는 이름의 컨설팅 벤처회사를 차린 그는 ‘금융이 바뀌어야 사회가 바뀐다’는 믿음을 간직한 채, 그의 말마따나 ‘자본시장 무대 한복판으로 한발 한발 걸어 들어갔다.’ 최근 몇 년 사이 국내 몇몇 자산운용사들이 경쟁적으로 내놓은 사회책임투자 펀드를 탄생시키는 과정에도 그의 손길이 깊숙하게 작용했다. 사회책임투자 펀드의 성공 비결은 기존의 신용평가 방법과는 달리, 좀 더 다양한 잣대를 가지고 투자종목(기업)의 가치를 정확하게 분석하고 평가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왜 당신과 같은 애널리스트가 필요하죠?” 그는 빙산의 예를 에둘러 들며 기업환경이 근본적으로 바뀌었다는 얘기부터 꺼냈다. 기업이 맞닥뜨리는 위험 요소는 이제 단순히 재무적 차원 만의 문제에 머물지 않는다. 지역사회, 종업원, 환경 등 다양한 이해당사자와의 갈등을 원만하게 해결하지 못하는 기업은 언제라도 생존의 위협에 빠질 수 있다는 얘기다. 환경 사고로 무너진 유니언카바이드, 회계부정으로 사라져버린 엔론, 노동 착취가 들통나 곤욕을 치른 나이키 등 그 사례는 수없이 많다.

“이젠 투자자 스스로 똑똑해져야 할 때에요. 재무제표라는 빙산의 일각에만 시야를 두지 않고 숨어있는 또 다른 위험을 찾아내 투자의 언어로 번역해내는 일, 그 일이야말로 제가 해야할 일입이다.” 투자자 스스로 당장 눈 앞에 보이는 회계 수치에만 현혹되기보다는 경제·사회·환경 세 개의 잣대를 고루 들이밀 때 비로소 기업도, 시장도, 그리고 우리 사회도 좀 더 건강해지리라는 믿음이야말로 그의 알짜배기 경쟁력이자, 오늘도 그를 움직이는 힘이다.

최우성 기자 morgen@hani.co.kr


‘사회적 회계사’ ‘사회적 감사’ 아시나요


세계 사회적 벤처기업 경연대회에 참가한 ‘디라이트’ 팀이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등유램프를 쓰며 수입의 3분의 1을 기름값에 사용하는 캄보디아 가내수공업자의 사례를 설명하고 있다.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장
세계 사회적 벤처기업 경연대회에 참가한 ‘디라이트’ 팀이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등유램프를 쓰며 수입의 3분의 1을 기름값에 사용하는 캄보디아 가내수공업자의 사례를 설명하고 있다.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장
시대 흐름에 뒤처지지 않는다고 자부하는 기업들이라면 너도나도 한마디씩 입에 올린다. 배출권 거래, 탄소펀드, 기후협약시대의 새로운 시장 …. 모두 맞는 말이다. 이젠 이산화탄소(CO₂)도 엄연히 기업의 자산이 될 수 있는 시대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드는 의문 한가지. 이산화탄소를 도대체 기업 회계장부에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사회적 책임과 지속가능성이 국제 금융시장의 새로운 화두로 떠오르면서, 직업 세계에서도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지속가능성의 잣대를 이용해 기업을 평가·분석하는 신용평가사나 종목분석가는 지속가능성 시대를 맞아 등장한 대표적인 새로운 직종이다. 현재 지속가능성 평기기관의 간판 격인 스위스의 서스테이너빌리티애셋매니지먼트(SAM), 미국의 이노베스트 등엔 수십명의 색다른 신용평가사와 종목분석가들이 즐비하다.

기업의 자산과 부채를 회계 처리하거나, 이를 감사하는 영역에서도 새로운 직종이 등장했다. 이른바 ‘사회적 회계사’나 ‘사회적 감사’라고 이름붙은 사람들이다. 아직은 우리에겐 낯선 이름이지만, 해마다 한자리에 모여 새로운 회계기법이나 감사기법 정보를 교환하기도 하고, 새로운 기준을 가다듬기도 한다. 해마다 가을께 유럽에서 열리는 티비엘아이(TBLI) 컨퍼런스가 대표적이다.

사회적 책임, 화두로 떠오르며 직업세계에 변화

유럽· 미국 대학에 ‘지속가능성 강좌’ 잇단 개설

이밖에 기존의 벤처캐피털에 ‘사회적’ 색채를 더해 사회적 벤처캐피털을 지향하는 사람들도 있다. 창업기업에 도움을 주면서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가치도 북돋는, 두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겠다는 얘기다. 세계 곳곳에선 이제 사회적 벤처 창업대회란 이름의 행사가 속속 열려 관련 분야의 최신 정보 교환의 마당이 되고 있다.

새로운 바람은 제도권 교육기관에도 몰아치고 있다. 이들 교육기관은 금융과 사회적 가치의 접목을 이론과 실증 연구로 뒷받침하거나, 새로운 직종의 금융전문가들을 양산해내는 일을 떠맡고 있다. 시장 흐름에 가장 민감한 경영학석사(MBA) 과정에서 변화의 바람은 먼저 느껴진다.

유럽의 대학들은 지속가능성이나 사회적 책임이라는 분야에 특화된 엠비에이 과정을 마련해 인기를 끌고 있다. 영국 노팅엄대학의 국제 기업사회책임센터(nottingham/ac.uk/business/ICCSR)나 케임브리지대학의 지속가능성과 기업사회책임센터(execdev.group.cam.ac.kr/scsr.html)는 영국 정부의 지원을 받아 해당 분야의 전문 인력을 양성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유럽연합의 지원을 받는 네덜란드 에라스무스대학의 지속가능경영센터(eur.nl/fsw/english/esm)에서도 최신 금융 흐름을 파악할 수 있다. 이밖에 전통적으로 주류 금융시장의 논리에 충실했던 미국의 하버드비즈니스스쿨이나 버클리대학에서도 최근 들어 지속가능성이란 주제를 끌어들인 강좌가 속속 개설해 변화를 이끌고 있다.

최우성 기자 morg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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